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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진단] 시간강사의 수입과 생활실태
[집중진단] 시간강사의 수입과 생활실태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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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8:06:50
인문학을 전공한 K씨(38세)와 O씨(36세)는 강사부부다. K씨는 지난 98년 2월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강사생활 4년째로 접어들었다. 이번 학기에는 서울과 춘천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12시간 맡았다. K씨가 받는 강사료는 서울에서 3시간 1강좌에 월 24만원, 춘천에서는 교통비를 얹어줘 3시간 1강좌당 28만원씩이다. 그러나 춘천으로 강의를 나갈 때는 지하철과 기차요금, 점심값으로 하루에 2만원씩 써야 한다. 한달 강사료 1백8만원중 20만원은 차비와 점심값으로 고스란히 나간다.

지난해 박사학위를 받은 부인 O씨는 이번 학기에 강의를 2시간밖에 맡지 못했다. 학부에서 수학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바꾼 O씨는 교수들이 알음알음 소개하는 강사자리도 제대로 얻지 못했다. O씨의 한달 강사료는 16만원.

부부의 한달 강사료를 모두 합해도 1백30만원이 채 안된다. 그나마 강사료 수입이 있는 것은 여섯달 중 넉달 뿐이다. 이들의 넉달 강사료를 여섯달로 나누면 한달에 83만원도 채 안된다. 여기에서 차비와 점심값 이외에도 교재개발을 위한 강좌당 10만원을 뺀 나머지가 이들 부부의 생계비와 연구비다.

결혼생활 7년째인 이들 강사 부부는 여섯살, 세살된 아이가 있다. 두 아이들은 유치원을 다닌다. 비록 올해 O씨의 강의가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강의 나가는 날을 생각하면 두 아이 모두 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지역자치단체에서 세운 유치원을 다닐 경우 매달 여섯살된 아들은 16만5천원, 3살난 딸은 18만 5천원이 지출돼 유치원비만 한달에 35만원이 든다. 사설 유치원의 경우는 이보다 많이 들어간다. 연구와 강사생활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통신료와 전화요금, 휴대폰 요금만도 한달에 10만원이니 더 이상 이들의 의·식·주와 수입을 맞춰보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계절학기 강의나, 연구내용과 관계된 단체의 프로젝트, 잡지의 원고 쓰기, 번역 등 연구를 계속하면서 돈이 될 수 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한다. 그래도 이들 부부의 가계부는 언제나 마이너스다. 지금까지는 O씨가 과외를 해서 모아두었던 것으로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왔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바닥났다.
국민연금 납부 통지서가 집으로 날라 왔을 때 O씨는 돈을 낼 수 없었다. 몇 번의 독촉장을 보내다 끝내 집까지 찾아왔던 국민연금 담당자는 강사료 수입이 있는 달만이라도 내라고 했지만 최저생계도 잇기 어려운 처지에서 연금을 내기는 어려웠다. ‘전국민’ 연금시대에 적어도 이들은 제외되고 있다.

1년에 한자리 날까 말까하는 상황에서 교수직의 꿈은 애당초 버린지 오래지만 그래도 이들 부부는 십년이 넘도록 공부해온 전공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인 O씨는 “대학교육에서 강사의 강의가 필요하다면 국가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인류학을 전공하고 경북지역에서 10년째 강사생활을 하는 Y씨(40)는 이번 학기에 12시간을 강의한다. 대구와 안동지역의 대학에서 강의하는 Y씨는 그나마 강의하는 대학 중 국립대가 있어 월 강사료가 1백20만원이다. 그러나 강의에 필요한 영상자료와 외국서적을 구입하는데 강좌당 20만원 정도가 든다. 또한 Y씨의 경우 안동까지의 강의를 위해 800cc 경승용차를 이용해 이동하는데 기름 값, 고속도로비와 기타 차량유지비로 월 평균 30만원 가량이 소요된다. 점심 값과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사고 나면 부인과 7살 난 아들을 위해 생계비로 가져다 줄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

집안 생계는 전적으로 포항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 전에는 주말마다 가족을 만나러 갔으나 이제는 이것마저 어려워 졌다. Y씨는 주변에서 학원강사나 택시기사를 하는 강사들도 있으니 자신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장으로의 역할을 생각하면 종종 자괴감이 든다. Y씨는 “10년 동안준비해서 자격을 따고, 10년의 경력을 쌓아도 가족의 생계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직업은 강사밖에 없다”고 한탄한다.

현재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육의 질과 교수의 연구시간을 위해 주당 9시간의 강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법령으로 교수들의 수업은 주당 9시간으로 정해져 있으나 이보다 많은 강의를 하는 강사는 최저생계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책임지고 있는 국립대의 강사도 마찬가지이다. 국립대 시간강사가 주당 9시간을 강의할 경우 방학기간을 포함하면 월평균 소득은 65만원이 채 안 된다. 결국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은 시간강사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의 법정 전임교원확보율은 지난 95년 77%에서 99년 57%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대학의 강의에서 시간강사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전국강사노조는 대학강사 수가 94년 3만여 명에서 99년 5만 7천명으로 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정된 수요에 공급이 늘었으니 시간강사로 보내는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한문학을 전공하고 4년째 시간강사생활을 하고 있는 정 아무개 강사(33세)는 “전국에서 1년에 한명이나 뽑으면 다행인 상황에서 교수가 된다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강사 또한 대학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구활동과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국사를 전공하고 15년째 강사생활을 하고 있는 김아무개 강사(44세)도 “강사도 직업인만큼 준비와 노동에 따르는 반대급부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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