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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100세 위한 치매 전문 과학자…‘K-바이오’ 꿈꾼다
건강한 100세 위한 치매 전문 과학자…‘K-바이오’ 꿈꾼다
  • 김재호
  • 승인 2023.06.14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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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학기술인 이야기 ㉕ 묵인희 서울대 교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 여성과학인 소개 캠페인 ‘She Did it’을 펼치고 있다. <교수신문>은 여성과학기술인이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경력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WISET과 공동으로 소개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교수 사회에 진심을 담아 전달되길 기대한다. 스물다섯 번째는 묵인희 서울대 교수다.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 대학원에서 치매·퇴행성질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부회장, 여성생명과학기술포 럼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퇴행성신경질환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사진=WISET

묵인희 서울대 교수(의과대학 생화학교실)는 건강한 100세를 연구하는 치매 전문 과학자이다. 그는 국가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 단장으로 치매 없는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다. 고령화사회의 가장 큰 걸림돌인 치매의 원인을 찾아 그 치료제를 개발하고, 조기 진단을 위한 바이오마커 등을 연구하고 있다. 바이오마커는 단백질이나 DNA, RNA(리보핵산), 대사 물질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지표다. 

묵 교수는 치매의 발병기전, 조기진단·예측, 예방·치료기술 개발 등을 치매 연구의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묵 교수는 뇌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가 알츠하이머병에서 기능을 상실하는 치매의 원인을 규명하고 면역기능을 회복시켜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로써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는 전 세계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는 포용성을 갖춘 여성 리더십이 주목받는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여성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회의 참여와 의견 개진, 직책 수행 의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묵 교수는 오로지 뇌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학부를 마치고 나니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궁금해졌다”라며 “그 당시만 해도 이러한 것을 알려주시는 교수님이 없어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박사과정 때 신경과학의 기본이 되는 시냅스 형성 과정을 연구했다.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을 때 노년의 복병인 치매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의사 출신 아닌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에 의사 출신이 아닌 여성 생화학교실 주임교수는 묵 교수가 처음이다. “기초연구자이지만 치매라는 증상을 이해하고 원인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병인기전 연구가 절실하기 때문에 늘 임상교수들과 소통하며 공동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치매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알츠하이머병이다. 유전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가족성 알츠하이머병은 1~5% 정도이고, 대부분은 65세 이상에서 나타나는 산발성 질환이다. 묵 교수는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병인을 찾아가는 방법도 다양해서 원인 치료제가 나온다고 해도 칵테일 요법이나 맞춤형 치료제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묵 교수는 현재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혈액에서부터 뇌를 모사할 수 있는 ‘뇌 오가노이드(Organoid; 성체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 혹은 유도만능줄기세포 등으로부터의 분화과정을 거쳐 형성된 세포 집합체)’도 만들고, 장과 뇌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장뇌축을 모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것을 활용하면 환자 그룹별로 발병 원인을 파악하고 각 원인에 맞는 치료제 개발도 가능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기초연구를 하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의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해 나갔던 것이 좋은 논문으로도 이어지게 됐다.” 묵 교수는 마크로젠 여성과학자상, 과학기자협회 선정 ‘올해의 과학자상’, 로레알 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학술상, 한림원생리의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여러 논문 중 뇌 내의 면역세포 병인에 작용하는 기전을 면역대사 관점에서 규명한 것을 가장 자랑스러워했다.

한국에서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퇴행성 뇌질환 분야는 연구자도 많아졌고, 연구방법론과 환자데이터 수집 및 영상분석기술 등도 세계적 수준이다. 하지만 연구자의 국제학회 네트워크가 강하지 못해 실력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묵 교수는 “K-컬처가 어느 날 갑자기 뜬 게 아니듯이 우리 과학자도 역량을 축적하고 있어서 조만간 바이오 분야도 세계 속에 우뚝 설 날이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여성과학자로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묵 교수는 “이제는 여성과학자도 본인의 아이디어나 발전 방안을 스스럼없이 얘기해야 한다”라며 “남들이 어찌 생각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대화에 참여하고 직책이 주어진다면 적극적으로 맡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이를 위해 일과 시간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벽에 부딪혔을 때는 좌절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자신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선배 여성과학자로서 묵 교수는 자신의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의 적용이 본인의 연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비책이 될 수 있다”라며 “함께 해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항상 열린 마음으로 가족이나 주변 사람과 소통하면 본인도 성숙해지고 연구에도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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