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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逸의 기품으로 문인 사로잡아…간략 소박한 陶器
淸逸의 기품으로 문인 사로잡아…간략 소박한 陶器
  • 강경숙 동아대
  • 승인 2006.09.1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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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 분청사기와의 비교

백자청화어조문호, 높이 28.2㎝, 元 14세기,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분청사기의 박지기법은 11세기 중국 송대 이래 금대를 거쳐 원대까지도 계속 사용한 기법이다. 예컨대 북송의 자주요, 요대의 건와요 등에서는 백지 바탕에 선으로 조각을 한다든지, 혹은 면으로 조각을 한 도자기가 있는데 이들은 조선시대 분청사기 박지기법보다 일찍이 앞서 있다.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소장의 14세기 원 경덕진요에서 제작된 ‘백자청화어조문호’는 대표적인 중국의 분청사기라 할 수 있다.

주 문양은 연지와 물고기이다. 상하 종속문에는 화문과 연판문이, 구연부에는 파도문으로 구성되어 전체가 청화로 장식되었다. 사실적인 연꽃과 물고기의 표현은 뛰어난 기량을 가진 화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항아리로서 원대 청화백자를 대표한다.

이처럼 도자기에 그리는 길상도는 14세기 원대 청화백자의 제작과 더불어 원·명대에 크게 유행했다. 길상도에는 흔히 세한삼우, 사군자, 국화 등이 있지만, 연은 세속의 풍요를 상징함과 동시에 진흙물에서 피어나는 꽃이므로 청향이 있는 淸逸의 기품을 보여주어 일찍부터 문인들이 좋아했다.

북송 주돈이의 ‘愛蓮說’ 중에 목단은 세속의 부귀, 국은 세속을 떠난 은일, 연은 세속을 떠난 君子로 찬양하고 있다. 중국 청화백자에는 연지백로, 연지어, 연지원앙 등 복합적인 도안으로 풍요와 번영, 부부화합, 자손번영, 과거급제 등의 길상의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불교적인 종교의 의미도 담고 있다.

중국의 분청사기는 조선시대 장인들도 접했을 것이지만, 그러나 ‘분청사기박지연어문편병’은 중국과 직접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상감청자에서 백자제작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고안된 기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연꽃과 물고기라는 길상무늬는 공통된 것임을 알 수 있다.

鼠志野蓮文平鉢, 높이 5.7㎝ 입지름 25.3㎝, 16~17세기, 동경 ?山기념관.

일본의 요업은 임진왜란 전까지는 도기제작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이들 도기 가운데는 조선의 분청사기의 모방품이 제작되거나 혹은 도쿄의 하타케야마 키낸칸 박물관 소장의 쉬노(志野) 자기(분청사기와 비슷한 자기 종류)의 하나인 ‘鼠志野蓮文平鉢’과 같은 그릇이 제작되었을 뿐이다. 이 평발은 넓은 사발 안바닥에 연잎, 연밥, 얼기설기 묘사된 연줄기를 간략히 배치시키고 있다. 백토를 일부 사용하고 그 위에 유약을 씌워 초보의 자기 제작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본격적인 자기요업은 임진왜란 이후 끌려간 조선의 장인들의 기술 위에서 17세기 중국의 수입자기에 힘입어 백자와 청화백자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 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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