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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名과 實이 부합하는 대학
[문화비평] 名과 實이 부합하는 대학
  • 류동민 충남대
  • 승인 2006.09.09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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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옌칭도서관

대학교수 출신의 교육부총리가 정치적인 문제도 아니고 학문적인 문제로 낙마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의 정치적 입장이나 학문적 변명에 동의하고 안하고를 떠나,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안쓰러운 일이었다. ‘어떤 이유로도 변명이 불가능한 파렴치함’에서부터 ‘누구든 죄 없는 자는 나와서 돌을 던지라’에 이르기까지 반응도 다양했던 듯하다. 참으로 외람된 말이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다보니, 굳이 따지자면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그 결과 적어도 정치적인 의미에서 입신출세하고 싶은 교수는 훨씬 높은 수준의 학문적 엄격함을 갖추어야 하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역사는 발전한 것이고 헛소동으로 끝나지는 않은 셈이다. 

그나저나 그 소동이 연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무렵, 나는 마침 여름방학을 일본의 어느 대학에서 지내고 있었다.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일본의 대학교수들은 강의도 안 하고 방문한 대학에 특별한 기여를 하지 않으면서, 혼자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외국의 대학에서 머무는 경우, ‘교환교수’로 어디를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학’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섣부른 문화비평-그러고 보니 이 칼럼의 제목이 문화비평이다!-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마 일본어와 한국어의 어휘나 표현상의 차이가 작용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환교수’에 끼어 있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거품이 ‘유학’에서는 사라지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한때 외국에서 한국에 관해 연구해가지고 박사학위논문 받아 오는 사람들을 경멸한 적이 있었다. 예컨대, 독일의 대학으로 유학 가서 ‘한국의 경제발전에 관한 연구’따위의 논문으로 박사가 되어 와서 대학교수나 연구원 하면서, 한국에서는 독일전문가로 행세하는 등속의 예를 너무도 많이 보았는데, 그들 대부분은 속된 말로 ‘뽕꾸라’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 믿음은 상당 정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은 10여년 전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 글자 그대로 ‘놀러’ 갔을 때, 동양관계연구센터인 옌칭도서관에 가보고 나서이다. 한국· 중국· 베트남어를 해독할 수 있는 사서들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좁은 철제계단을 타고 올라간 한국관련문헌서고 한 모퉁이에서 사회구성체논쟁에 관한 한글논문을 발견했을 때의 묘한 기분이란! 정말 한국연구에 필요한 기본적인 문헌은 심지어 대학논문집이나 북한에서 출간된 문헌까지도 대부분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본의 지방국립대학(!)의 인문사회계 도서관에서, 비좁아 터져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없는 철제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박사논문을 쓰던 10여년 전 찾다 지쳐 포기하고 말았던 독일의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저널을 불과 5분 만에 찾았다. 아, 그 허탈함과 기쁨이 뒤섞인 기묘한 기분이란! 대학시절 중요한 서양고전의 대부분은 식민지시절 일본인들이 구비해놓은 것이라는 사실 앞에 느꼈던 그 묘한 기분을 다시금 느껴야 했다. 우리나라 대학의 훨씬 크고 화려한 시설, 통신회사 간판이 반짝거리는 인터넷검색실의 쾌적함에도 불구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도서보유현황 앞에서 절망했던 기억까지 겹치면서.

결국 교육부총리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대학이 처한 문제의 축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캠퍼스 안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자부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한 쪽 옆에서, 전공공부를 제쳐놓고 토익에 고시공부로 밤을 지새우며, 대출순위 1위는 무협판타지 소설인 ‘독서실’을 도서관이라 불러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아이들 영어 가르치면서 골프 치러 가는 것은 ‘교환교수’이고, 학교논문집은 각종 프로젝트 보고서의 재탕요약본 정도 되는 현실. 이 정도만으로도 역설적으로 이제 명과 실이 서로 부합하는 대학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식과 준비는 충분히 성숙된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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