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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후손이 펼치는 저항…여성주의적 공동체 꿈꾼다
‘마녀’ 후손이 펼치는 저항…여성주의적 공동체 꿈꾼다
  • 신지영
  • 승인 2023.06.02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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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신지영·김정연·김예나·문현 옮김 | 갈무리 | 224쪽

라틴 아메리카·인도·아프리카와 한국의 지금 여기
자본에 의해 착취·전유 당하는 혐오·박해의 현재

마녀사냥, 공동체 파괴에 저항하며:입에 재갈이 채워진 그/녀/들이 전해준 마법들
(이 글은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의 옮긴이 후기 「마녀사냥, 공동체 파괴에 저항하며:입에 재갈이 채워진 그/녀들이 전해준 마법들」을 바탕으로 수정 및 가필했음을 밝혀 둔다. 글 속의 페이지는 번역본의 페이지를 의미한다.) - 역자들을 대신하여 신지영 씀

 
# 3월 8일 여성의 날, 출현하는 마녀들과 함께 출간된 책

배제와 조롱이 담긴 호명을 저항의 슬로건으로 바꾸는 빛나는 예들이 있다. 게이, 퀴어, 장애, 홈리스, 반골……. 폭력과 차별이 상식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차별당한 바로 그 위치에서 변화를 꿈꾸는 힘이 그 빛남의 원천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여성들의 손에 힘차게 들려진 슬로건은 ‘마녀’이다. 

2017년 2월 4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는 트럼프 정권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저항하는 시위가 열렸고, 한 여성의 손에는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라고 쓴 피켓이 들렸다(104쪽). 2018년 3월 8일, 스페인 카탈로니아의 국제여성의 날 시위에도 이 슬로건은 다시 등장한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Witches, Witch-hunting, and Women』(Pm Press, 2018)을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갈무리, 2023)로 제목을 바꿔 붙여 3월 8일 여성의 날에 번역 출간한 것은, 스스로를 기꺼이 ‘마녀’의 후손이라 명명하는 활동에 함께 한다는 의미를 띤다.  

페데리치에 따르면 마녀사냥은 한번 일어나고 사라지는 역사 속 ‘전근대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형태가 변화하는 순간마다 새로이 평가절하되는 존재들에 대한 박해의 ‘현재’다. 여성, 자연, 동물, 난민·이주민, 장애인, 가난뱅이 등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삶을 전유당하는 존재들에 대한 혐오와 박해 말이다. 이 책에서 페데리치는 주된 박해의 대상이 여성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마녀=여성이라는 공식을 넘어 다양한 마이너리티의 투쟁과 접속할 여지가 충분하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녀사냥의 다양한 양상을 선명히 비추는 책이며, 그 폭력·배제·위계의 원인을 날카롭게 드러냄으로써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논리와 새로운 관계에 대한 상상을 주는 책이다.  

『Witches, Witch-hunting, and Women』(Pm Press, 2018)의 표지

# 『캘리번과 마녀』의 대중적인 소책자 혹은 미래를 향한 제스처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는 실비아 페데리치의 대표작인 『캘리번과 마녀의 ‘대중적인 소책자’로 기획됐다. 그런 만큼 읽기 쉽고 설명은 친절하다. 동시에 페데리치 스스로 “마녀사냥의 정치·경제적 발생 원인을 보다 깊이 짚어보고 싶었다”고 쓰고 있듯이 각 주제들은 깊이와 넓이를 획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새로 착수해야 할 연구주제의 초안”을 제시하려 했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듯이, 군데군데 번뜩이는 영감과 미래를 향한 요청이 담겨 있다. 1부에서는 마녀사냥의 정치 경제적 발생 원인을 구체적인 예들과 함께 깊이 짚어 주며, 2부에서는 라틴 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급증하고 있는 현재의 마녀사냥의 양상을 선명히 부각시킨다. 따라서 현재 전개되고 있는 마녀사냥과 그에 대한 저항적 활동을, 역사적 경험과 연결시킬 수 있는 연구 방법론으로서도 가치를 지닌다.  

이 책의 일차적인 매력은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분석함으로써, 여성 신체에 대한 인클로저(시초축적)가 바로 마녀사냥이었고 그것이 현재에도 끊임없이 심화·확대되고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이처럼 ‘마녀사냥’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여성주의적으로 전환할 때 드러나는 것은, 자본주의 시초축적의 폭력이 곧 공동체의 파괴를 그 핵심으로 했다는 점이다. 마녀사냥은 공동체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여성, 여성의 신체, 여성주의적 공동체에 대한 역사·현재적인 통제·관리·파괴이다. 페데리치는 이를 공동체의 역능에 대한 강조로 한층 더 전진시킨다. 현재 마녀사냥이 잔혹한 형태로 확대되는 것은 자본이 바로 이 통제불가능한 역능(재생산 능력, 공동체적 관계 형성 능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국 마녀사냥에 대한 비판을 통해 선명해지는 것은 자본의 힘이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존재들의 이 통제불가능한 역능이다. 

이러한 관점은 실비아 페데리치가 왜 연구와 함께 공통장을 만드는 활동에 관심을 기울여 왔는가를 이해하게 한다. 번역서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에는 이러한 페데리치의 활동과 네트워크에 독자들이 활발하게 접속하길 바라는 역자들 및 출판활동가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원저에는 없는 풍부한 역주, 페데리치의 연구 활동을 담은 사진, 최근 전개된 여성주의 집회 사진, 마녀사냥에 비판적인 작품 사진 등이 다채롭게 수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부록 「실비아 페데리치의 삶과 실천」 및 「실비아 페데리치의 주요 저작 목록」은 연구와 활동 사이에서 고군분투한 페데리치의 궤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그중에서도 페데리치가 최근 벌이고 있는 활동의 세 가지 양상은 주목할만하다. 첫째로, <폭력에 대한 페미니스트 연구 플랫폼(https://feministresearchonviolence.org/ Feminist Research on Violence / Plataforma Feminista sobre Violencias)을 만들어, 마녀사냥에 저항하는 전지구적 연구활동 네트워크를 만들고, 마녀사냥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예들을 모아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로, 마드리드에서 2022년 10월 28일에 열린 <마녀로 고발당한 여성들을 기억하기 위한 캠페인:식민주의 채굴주의,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http://memoriadelasbrujas.net/en/)을 통해 마녀사냥을 식민주의 및 채굴주의와 연결시켰다. 최근에는 러시아 푸틴의 전쟁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반전저항>의 <전쟁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저항선언>(http://spectrejournal.com/feminist-resistance-against-war)에 참여한 바 있다. 

이러한 페데리치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본주의에 의해 무가치하다고 여겨지고, 평가절하되고, 생산성이 없다고 간주되는 모든 비/인간 존재들이 여러 방향에서 격렬하게 전개하고 있는 싸움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공동체를 만들고 지키기 위한 투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준다. 

# 마녀사냥에 저항하는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질문들 
  
첫째, 왜 마녀사냥은 폭력과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가? 국가와 자본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저지르는 폭력을 묵인하고 심지어 합법화/정당화시키는 메커니즘이 가부장제를 등에 업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이란 “궁극의 소외, 배제, 혐오의 메커니즘”이라고 말한다. 왜 마녀사냥은 그렇게까지 잔혹하고 폭력적으로 행해질까? 공동체를 재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한 관계의 핵심에 여성이 존재하며, 마녀사냥은 그 힘을 빼앗고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 속의 이 질문들은 ‘여성’들이 겪는 고통, 폭력, 피해의 원인을 인식할 수 있는 무기를 주는 동시에 그/녀/들에게 자본주의를 넘어설 공동체적 역능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둘째, 마녀사냥을 부추기는 위로부터의 선동과 혐오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위로부터의 혐오발언이라고 할 수 있는 마녀사냥은 여성의 신체·자연·타인을 묶는 연결망을 관리·통제한다. 여성 사이의 연대·우정·공통의 지식을 의미하던 ‘가십’은 불화의 씨앗이나 한심한 말로 평가절하되었다. 여성의 공통장이었던 선술집은 폐쇄되었고, 권력 편에 선 미디어들은 마녀에 대한 잔혹한 (성)폭력을 부추기며, 여성들 사이를 분열시킨다. “모든 마녀사냥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간에 이웃·친구·애인이라는 가면 아래에 권력, 섹스, 부를 갈망하는 혹은 그저 악행을 저지르고 싶어하는 또 다른 인격이 숨어 있다는 의심을 주입함으로써 공동체적 관계를 파괴하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164쪽) 이에 대항하여 페데리치는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되찾는 중”이며, “마법이란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87쪽)라고 말하며, 여성들 사이에서 전수되어 온 앎, 공동체적 관계, 서로 간의 신뢰와 믿음을 강조한다.  

셋째, 왜 마녀사냥은 페미니즘의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는가? 이 질문은 인종주의(식민주의)와 마녀사냥의 접점을 발견함으로써, 제국적 페미니즘이나 백인 페미니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페데리치는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긴급하게 심판해야 하는 집단은 유엔”(119)이라고 이야기한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말만 앞세우면서 아프리카와 세계 곳곳에서 나이 든 여성들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일을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많은 페미니스트 단체들 또한 “‘유엔 여성 10년’을 기념”할 뿐 그 기간 동안 아프리카에서 화형당한 마녀들의 절규를 듣지 않았고, “여성의 힘”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연구 및 활동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특히 페데리치의 비판은 제국적 페미니즘에 한정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페미니스트들도 마녀사냥을 언급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마녀사냥을 언급하는 것이 아프리카인은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식민주의적 고정관념을 조장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녀사냥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범세계적 증가 양상의 일부”(123-124)인 만큼, 특정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비문명화의 증표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페데리치는 한 마을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을 다른 마을의 경우와 연결시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페데리치의 이러한 요청이 페미니즘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페데리치가 페미니즘에 거는 높은 기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데리치는 저널리즘적으로 이슈를 쫓거나 방관자적 위치에서 이뤄지는 연구 모두와 거리를 두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인권운동이나 사회정의 단체와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녀/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분노하는 것이 연구와 활동의 시작이며 새로운 앎과 관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페데리치의 말은, 페미니즘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만큼 담백하고 솔직하다.    

2014년 실비아 페데리치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 채굴주의가 향하는 새로운 프론티어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는 마녀사냥에 대항할 무기를 쥐어주는 위의 질문들을 통과하여 채굴주의(extractivism)에 대한 비판으로 끝난다. 채굴주의란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제3세계의 천연자원을 고갈시킬 정도로 뽑아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환경오염, 지형변화, 생태계의 파괴, 그리고 원주민 공동체의 파괴와 강제 이주를 낳는다. 공동체가 파괴되자, 이웃하고 있던 존재들은 세계자본의 이간질에 의해 서로를 적대시하고 이윤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이러한 채굴주의가 현재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새로운 프론티어, 그것이 곧 ‘여성’의 신체라고 페데리치는 이야기한다. 

채굴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로서 ‘여성의 신체’. 이 화두는 한편으로는 『혁명의 영점』에서 언급된 재생산노동의 이중적 성격을 상기시킨다. 페데리치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노동을 보면서 “막대한 양의 유급가사노동 및 부불가사노동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임을 어렴풋이 알았고, 여성주의자가 된 후에는 “어머니가 투쟁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혁명의 영점』, 갈무리, 2013년, 15-16쪽.) 어머니가 투쟁한다는 말의 의미는, 신비화되고 소외된 부불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과는 그 방향이 다르다. 오히려 모든 공동체적 역량─서로를 돌보는 따뜻함과 신뢰 같은 것들─을 자본으로 가치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볼 때, 한사코 자신의 가사노동을 가치화하길 거부했던 어머니의 투쟁은 “혁명적 실천을 위한 영점”이 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채굴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인 여성의 신체라는 화두는,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이후에 출간된 『Beyond the Periphery of the Skin』과 연결된다.(Silvia Federici, Beyond the Periphery of the Skin, PM press, 2020.) 이 책에서는 ‘여성’이라는 정치적 싸움의 범주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적 화두와 함께, ‘여성 신체’에 대한 기술과 의학을 여/성/들의 지식으로 되찾기 위한 저항운동을 모색하게 한다. 즉 기술혁신과 의학에 의한 ‘신체 재구성─성형수술, 대리모, 성전환 등─’에 맞서, 재생산의 권리를 어떻게 전문가의 권력과 특권을 넘어서 ‘여성’의 것으로 되찾고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또한 산업노동 및 재생산노동 전 분야에서 ‘자연화된 신체(여성, 동물, 무생물 등)’를 분리 혹은 결합시키는 실험이 가속화되는 상황─복제, 유전자 편집, 유전자 도입 등─을 초점화한다. 이런 논점들은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양식 속에서 ‘자연화된 신체’가 어떻게 재구성되고 활용되는가를 폭로하며, 이 과정에 페미니즘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묻는다. 

# 번역 기간을 관통한 마녀사냥들 속에서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의 번역은 #MeToo 당사자에 대한 마녀사냥이 몰아치던 시기에 “탈진실 시대의 진실연대자들(truthcommoners.net)”의 활동에 참여하며 시작됐다. 

이후 번역이 진행된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팬데믹 기간과 겹쳐졌다. 팬데믹의 발생 원인에 기후위기, 인간중심주의. 비인간 동물에 대한 착취가 있음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2년간의 팬데믹 상황은 외국인 보호소에 갇힌 이주민·난민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 및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페데리치가 새로운 채굴주의의 대상으로 초점화한 ‘여성의 신체’에 대한 성찰은 온갖 비/인간 동물들이 착취당하고 구금된 장소들─공장식축산, 도살장, 수산물시장, 살처분─로 향하게 했다. 자본과 국가에 의한 공동체의 파괴가 ‘여성’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더 나아가 여성의 신체와 비/인간 동물의 신체가 새로운 인클로저와 마녀사냥 속에서 어떻게 연속되어 있는가를 보게 된 것은, 번역과정이 팬데믹 상황과 만나는 지점에서 품게 된 미래를 향한 앎이다. 

번역을 마무리 지을 무렵인 2022년 12월에는 ‘유산유도제 도입신청철회’에 대항하는 <셰어>를 중심으로 한 저항 활동 소식을 접했다. 유산유도제 도입을 위한 활동은,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에서 “기억의 방직공”이라고 묘사된 여성 공동체의 경험과 앎의 현재적 형태 중 하나다. 낙태 유도식물을 알려주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집단적 앎과 기억을 전달해주는 그/녀/들의 마법적 앎 말이다. 

책 출간을 위한 역자 후기를 쓸 무렵에는 장애인권리예산입법 및 이동권확보 투쟁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확산됐다.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투쟁은 장애인들의 교육권·노동권·건강권과 직결되는 기본권에 대한 요구이며,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권리들을 상징한다. 장애인을 온갖 권리로부터 승차 거부하는 상황은 22년 전과 변함없이 지속되어, 현재에도 장애인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 미디어 및 정치권은 전장연이 시민들을 볼모로 잡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처럼 호도했다. 

번역과정에서 목도하고 공감했던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 모든 마녀의 후손들에 의해, 어쩌면 이 책은 현재에도 새롭게 쓰여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는 현재에도 심화·증폭되고 있는 마녀사냥의 역사적 메커니즘을 규명함으로써, 인클로저의 새로운 프론티어로 부상한 여성의 신체와 재생산 능력, 더 나아가 비/국민 및 비/인간 동물의 신체와 재생산 능력에 대한 새로운 박해를 예고한다. 동시에 그 새로운 박해에 저항하는 여성과 비/국민 및 비/인간 동물들이 공동체 안에서 유지해 온 경험과 지혜, 그리고 앎의 기술들을 풍부하게 제시해 준다. 

재갈이 채워진 채로 전해진 그/녀/들의 이야기가, 신체에 재갈이 채워지려는 순간들을 거부·거절하는 여성·비/국민·비/인간 존재의 힘과 용기와 지혜를 북돋는 앎이 되길 바라며, 기꺼이 마녀의 후손이 되고 싶다.  

 

 

 

신지영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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