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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의 신화에 둘러싸인 ‘가족’…실체 직면할 때다
겹겹의 신화에 둘러싸인 ‘가족’…실체 직면할 때다
  • 함인희
  • 승인 2023.05.3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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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_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5월 뒤엔 ‘가정의 달’이 후렴처럼 따라붙는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아동의 탄생 』을 통해 아동은 “발견”되었다는 주장을 폈고,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벡 게른스하임은 『모성애의 발명』을 통해 모성은 “발명”되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고 보니 건강가정이라 칭하고 다문화가족이라 부르는데, 이 미묘한 차이는 어디서 연유하는지 새삼 궁금하다.

가족 연구자들은 가족을 정의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숨겨진 다채로운 이면(裏面)을 드러내는데 시선을 돌리고 있다. 와중에 연구자가 규정하는 ‘가족’ 자체가 심리학의 롤샥 테스트에 해당된다는 주장도 나왔고, 가족을 “미친 제도”(mad institute)라 명명한 정신분석학자도 등장했으며, 가족이야말로 “고통의 세계”(worlds of pain)임이 분명하다는 사회심리학자도 나타났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을 “문화적 음모”(cultural conspiracy)라 부른학자도 있었다.

가족은 진정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말해서는 안 되는가’에 관한 규범이 보다 정교하게 발달돼 있는 제도임이 확실하다. 덕분인가, 가족은 “신비화(mystified)”된 제도이자 겹겹의 신화(神話)에 둘러싸인 제도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여기서 신화라 함은 과학적 증거나 객관적 탐색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통념이나 믿음을 의미한다.

지금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네 가족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표적 가족신화를 살펴보면, 먼저 전통사회 가족은 안정되고 조화로운 집단이었으리란 믿음이 있다. 그러나 가족의 황금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족사(史)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오히려 산업화 이전의 가족은 높은 신생아 사망률과 전쟁·전염병·기근 등으로 인해 누군가의 사망이 일상화되어 있었고, 어린 자녀의 유기 및 아내 구타 등 가족폭력도 빈번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특별히 출산은 여성에게 죽음과 직결된 경험임을 보여주는 사료도 발굴되고 있다. 전통사회의 가족을 이상화하거나 미화함은 현대사회 가족을 위기 및 해체로 보는 정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두 번째 가족신화로는 ‘정상가족’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들 수 있다. 가족의 정상성을 둘러싼 견고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비정상적이거나 부끄러운 문제 상황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1인 가구나 한 부모 가족의 증가와 다양한 복합가족의 등장은 물론, 동거, 선택적 무자녀 가족, 동성 부부, 공동체 가족, 초국적 가족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정상가족 신화에 도전하는 가족양식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상가족에 대한 신념 및 이미지가 비교적 강하게 남아 있음은 유감이다. 하지만 ‘정상가족’은 자연스러운 형태도 아니요 보편적인 형태도 아니다. 문제는 정상가족 규범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누구에 의해 강화되고 있는가이며, 정상가족 규범에 의한 피해자가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상가족 대 비정상가족의 이분법은 정상가족에게도 상당한 압력이 된다. ‘무늬만’이라도 정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 내부의 균열과 갈등을 위장하는 “요새가족(fortress family)”이나 “빈 조개껍데기 가족”이 출현하고 있음은 정상가족을 향한 압력이 낳은 부정적 폐해의 실례라 하겠다.

세 번째 가족신화로는 부부와 부모자녀 사이엔 공통의 욕구와 삶의 양식 그리고 경험의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으리란 가정을 들 수 있다. 가족 간에는 이타적 사랑이 우러나오며 가족 내 의사결정은 조화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미지는, 실제 상존하는 가족 내 권력관계, 부모 형제 친족 간 경쟁관계, 가족생활의 정서적 측면에 내재한 부정적 측면을 부인하거나 애써 숨기는 기능을 한다. 사랑과 헌신, 배려와 결속을 이상화하는 가족 감정의 이면에는 경쟁과 갈등, 증오와 이기심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음에도, 어느 한 면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 가족신화로는 ‘가족-사적영역’, ‘사회=공적영역’으로 영역으로 이분화하거나, 가족과 사회가 분리된 것인 양 개념화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가족과 사회를 분리된 영역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성 역할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함이요, 가족과 일터 사이의 스필 오버(spill over) 효과를 감추기 위함이다. 공사영역의 이분법은 가족과 사회를 좌우대칭에 둠으로써, 가족은 무자비한 세상 속의 천국이요, 가족관계는 사회관계와 달리 이타적이고 비경쟁적이라는 착시에 빠지도록 한다. 동시에 가족은 자족적 집단이요, 독립적 실체이며, 사회와 무관하게 고고함을 유지해갈 수 있는 제도로 간주하도록 한다. 그 결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가족은 불건강하고 부적절한 가족으로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 겹겹으로 둘러싸인 가족 신화를 벗어버리고, 가족의 오롯한 실체에 솔직하게 직면할 때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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