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5:55 (금)
[대학정론] 부끄러움에 대하여
[대학정론] 부끄러움에 대하여
  • 강신익 논설위원
  • 승인 2006.09.09 2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신익 / 논설위원·인제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교수 사회의 윤리 논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난자의 채취를 둘러싼 생명윤리 문제에서 출발한 논쟁은 엉뚱하게도 논문 조작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비화되더니 결국은 연구비 횡령 등 범법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 특히 지식인 사회의 현실을 다양하고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백화점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후 몇몇 대학에서 교수윤리헌장이 제정되는 등 자정노력이 있었고 연구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이런 와중에 불거진 교육부총리의 논문 파동은 이 사건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일깨워준다. 이 일을 계기로 교수사회는 또 한 차례 홍역을 앓고 있는데, 이 논쟁이 마무리되고 나면 우리는 아마도 표절 등의 관행을 규제하는 구체적 지침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무척 바람직하고도 합리적인 해결책이다. 그래서 현대의 윤리는 스캔들을 통해 성장하고 절차로 완성된다고도 한다. 옳고 그름의 객관적 기준을 정하고 구체적 행동의 지침으로 삼는 是是非非는 현대사회의 필수 덕목이다.

하지만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에서 출발하지 않고 오로지 남의 잘잘못만을 따지는 태도(是非之心)는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절차가 아무리 완벽하고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그런 절차를 통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이끌어낼 수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윤리가 실현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두 사건의 결말은 모두 무척 실망스럽다. 한 사람은 ‘인위적 실수’라는 신조어를 만들면서까지 그리고 자신의 연구원들을 방패막이로 삼으면서까지 책임을 피하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관행이란 이름으로 끝까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겉으로는 사과를 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억울해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모르기는 황우석 영웅 만들기의 주범이면서도 매몰차게 돌아서 그에게 돌을 던진 언론이나 잘못된 정책으로 국민을 큰 혼란에 빠뜨리고도 반성하지 않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수준에 못 미치는 논문을 심사하면서 적당히 합격점을 주거나 전혀 기여하지도 않은 논문에 슬그머니 자기 이름을 끼워 넣는 우리들 자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복잡한 절차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지키는 것만이 윤리의 모든 것이라는 절차주의에 매몰되어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학자의 품위와 양심은 진정으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가짐에 있는 것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