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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탐사와 뉴욕시의 쥐
달 탐사와 뉴욕시의 쥐
  • 김소영
  • 승인 2023.05.29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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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지구에서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왜 달에 가나. 1969년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발사 전날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기지에 몰려간 흑인 시위대가 던진 질문이다.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위대한 나라가 어떻게 슬럼과 마약 범죄, 극심한 기회 불평등, 열악한 의료보장에 시달릴 수 있을까? 혁신이론의 대가 리처드 넬슨이 1977년 『달과 게토』에서 제기한 질문이다. 세계 최강의 나라가 눈부신 과학기술 혁신에도 불구하고 사회 문제에 관한 한 최빈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오랜만에 뉴욕시에 출장을 갔다가 이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카이스트 미래정부리더십센터 연수과정의 일환으로 카이스트-NYU 공동캠퍼스 방문 중 뉴욕시 소상공인 담당 커미셔너가 갑자기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이 센터에는 현재 20여 개 부처와 공공기관의 중견 관리들이 10개월간 교육을 받고 있는데, 뉴욕시의 비즈니스 진흥 정책을 토론하던 커미셔너가 갑자기 한국은 어떻게 쥐를 박멸했냐고 물었다. 

베테랑 경찰관 출신인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문제가 바로 뉴욕시에 들끓고 있는 쥐의 퇴치라는 것이다. 급기야 쥐퇴치 전문관리직을 신설하고 무력 17만 달러(약 2억 원)의 연봉을 내걸었다. 자격요건에 “쥐 소탕 동기가 충만하고 피에 굶주린(highly motivated and bloodthirsty)”이라는 위트까지 덧붙였는데, 900명이나 지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뉴욕시의 모든 주민마다 쥐 한 마리씩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뉴욕시의 쥐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뉴욕시가 갑자기 쥐 난리를 겪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사람만큼이나 쥐도 뉴욕시의 오랜 구성원(?)이다. 뉴욕시에 쥐가 살기 시작한 것은 대략 250년 전부터였지만, 개체 수가 현저하게 늘어난 것은 1950년대 이후였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의 급격한 도시화와 난개발로 쥐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된 탓이었다. 

그런데 지난 코로나19 시기에 갑자기 쥐가 더 늘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실내 취식 불가 정책으로 식당들이 보도에 테이블을 내놓으면서 길거리에 음식 냄새와 찌꺼기가 늘어나고, 재택근무로 빌딩과 지하철역이 한산해지면서 쥐들이 땅위로 더 많이 기어 올라왔다. 우연의 저주인지 지난 두 해는 뉴욕시 평년보다 유난히 더웠던 탓에 쥐가 번식할 수 있는 기간이 크게 늘어났다. 

대체로 뉴욕의 쥐퇴치 전문가들은 음식물이나 플라스틱을 분리하지 않고 한꺼번에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서 버린다. 길거리에 그런 쓰레기 봉지가 쌓여 있는 한 쥐를 완전히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뉴욕시에서는 이번에 쓰레기를 딱딱한 상자에 담아서 버리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려는데 이게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단다. 우리처럼 쓰레기를 분리하지 않기 때문에  뉴욕시의 수많은 식당에서 쓰레기를 상자에 넣어서 버릴 경우 모든 거리가 쓰레기 상자로 채워질 수 있다. 상자의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소상공인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찾아보니 이처럼 쥐박멸을 전담하는 전문관리직을 선발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줄리아니 시장 시절에 초대 쥐박멸 전문담당관을 임명했고, 블룸버그 시장 때는 시공무원 대상으로 3일간‘설치류 아카데미’라는 속성 코스를 열어 쥐잡기 노하우를 가르쳤다.    

인간을 다시 달에 보내겠다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비롯해 여전히 과학기술의 프런티어를 열고 있는 미국이 어떻게 일개 도시의 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나. 달에 가는 것보다 지구에서의 문제가 더 해결하기 어렵다는 반증이 아닐지. 뉴욕시 커미셔너는 한국이 어떻게 1970~1980년대에 쥐를 몰아냈는지 비법을 꼭 알려달라고 했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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