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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한국 멸종위기종
[진단]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한국 멸종위기종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9.09 0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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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보다 ‘서식지’ 챙겨야 … 좀 길게 못 보나

황새
동·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7월말 환경부는 2015년까지 10년간 사향노루, 장수하늘소, 미선나무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존속시키기 위한 ‘멸종위기종 증식·복원 종합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이 같은 환경부의 움직임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희귀동식물에 대한 우려가 반영돼 일단 환영할 만하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하지만 환경부의 대책은 개체수 증가에만 맞춰져, 정작 중요한 서식지 문제를 밑에 감추고 있어 전시행정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교수신문은 현장에서 동식물들과 함께 생활하다시피 하는 학자들과 과연 동식물 멸종을 막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산야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민들레를 조사했던 선병윤 전북대 교수는 연구를 진행해 나가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도시에 분포한 민들레가 거의 대부분 서양민들레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척박한 서식지인 도시에서 적응력이 강한 서양민들레가 퍼지면서 이렇게 됐다는 것이 선 교수의 견해. 서양민들레는 환경오염과 관계없이 시멘트 틈새로 자랄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또한 자생민들레보다 종자 수나 개화 기간이 매우 길다. 결국 자생민들레는 생식력이 떨어져 자연스럽게 개체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자생민들레의 유전자를 검사해보면, 조잡이 많이 일어나 서양화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곰팡이 등 번식해 서식지 파괴

볕이 드는 초지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애기수영 역시 알고 보면 외래종이다. 목초에 묻혀 비의도적으로 들어왔을테지만, 이들 외래종은 번식력이 상당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50년대 미국의 구호물자에 묻어 들어와 한반도 전역에 퍼지는 외래종 중에는 독성을 지닌 열매가 땅에 떨어져, 토양을 강산성으로 변화시켜 다른 식물의 성장을 막는 것도 있다.   

전문가들이 짚는 동·식물 멸종위기 원인은 크게 7가지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환경오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농약 및 농사기술 발전 △외래종 유입으로 인한 토종 급감 및 개체 간의 경쟁 △불법 남획 등이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양서류감소대책위원회’ 공동의장직을 맡고 있는 박대식 강원대 교수(행동생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양서류를 위협하는 곰팡이균 등 질병원이 점점 커진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박 교수는 “참개구리는 농사철에 번식을 하는데, 예전에 소로 경작할 때는 알이 밀리고 말았지만, 경운기는 알 전체를 완전히 파괴하고, 장마철에 번식하는 청개구리는 비온 뒤 살포되는 농약으로 몰살하다시피 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농사를 짓지 않는 기간에도 논에 물을 받아놓고, 늦게 땅을 갈아엎는 등 전통 유기농법이 멸종 위기에 빠진 곤충이나 양서류, 조류까지 자연 증식시킬 수 있는 토대라는 것이다. 농약살포 지역 양서류의 알을 채집해 부화실험을 한 결과 기형율이 자연 그대로의 것에 비해 10배 이상 차이났다는 정선우 창원대 교수팀의 연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선병윤 전북대 교수(식물분류)는 “토지개발을 통한 서식지 파괴, 관상·식용을 위한 불법 남획·채집 등 인간간섭이 가장 큰 요인이다”라고 분석한다.

한번 훼손되면 엄청난 복구비용이 따르는 환경은 한 세대의 소유가 아닌 후손의 것임을 강조한 유정칠 경희대 교수(동물생태)는 “영국의 경우 막았던 곳도 터서 습지로 돌리곤 하는데, 우리나라는 동경강 만경강이 합쳐지는 새만금을 간척해 생물서식지를 없애고 있다”라고 비판한 뒤 “독일은 지하수를 20~30미터 이상 파지 않기 운동을 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3백미터를 파고 물이 나오지 않으면 대충 메워버려 지하수를 망가뜨린다”며 현명한 토지이용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언론매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김용식 영남대 교수(환경생태)는 “TV에서 동식물이 몸에 좋다는 내용의 많이 내보내는데, 생태계 파괴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라며 관상과 약용차원으로 훼손되는 식물을 막아야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울릉국화’와 ‘섬개야광나무’를 들었다. 울릉국화는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는데도 사람들이 한 두 뿌리씩 가져가 정작 울릉도에서는 보기 힘들어졌다.
정선우 창원대 교수(발생생물)는 “거제도에 고란초가 발견돼 방송된 적이 있었는데, 채취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린 적이 있다”며 희귀종에 대한 언론보도 자제를 요구했다.

광릉요강꽃
그런가 하면 이석우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원(산림유전)은 “서식지 내에서 다른 생물종과 경쟁이 안되는 것”을 가장 큰 위기요인으로 본다. 이 박사는 “인간간섭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은 복구가 가능하지만, 다른 생물종과의 경쟁에 밀린 위기생물 복구사업은 성공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런 생물은 다시 서식지에 증식·복원한다해도 지속적으로 살 수 있을지 불투명해 식물원 등으로 별도 관리를 하는 게 낫다는 것.

호랑이, 광릉요강꽃 등 20종의 유전자 분석·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기중 고려대 교수(식물분자계통)는 “국제적으로 볼 때 하와이나 호주 등 섬생태계에서 외래종의 침입으로 토종 개체수가 급감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에는 정확한 모니터링이 없어 언급하기 힘들다”라고 말하며 멸종위기종 복원과 함께 정확한 조사 병행이 가장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희귀종 보도되면 사람들 몰려 역효과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어떤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까. 김용식 교수는 “70년대 지리산에 가보면 텐트를 아무 곳에나 치고, 나무를 꺾으며 취사를 했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라며 여전히 환경교육이 가장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국내로 유입·유출되는 식물이 많은데, 유입경로와 유전자 등 기록을 함께 보존해야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선병윤 교수는 “복원한답시고 지역특성을 무시한 채 해외에서 같은 종을 들여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라고 일깨운다. 절멸됐다고 보고된 동식물이 우리 땅에서 완전히 없어졌는지 확인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보존에는 인위적 간섭도 포함된다는 이석우 박사는 “종자도 모른 채 정부나 시민단체에서 이벤트성으로 국내에 유입하면 더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하며, “陽樹인 소나무의 발화를 돕기 위해 하층베기(편집자주: 소나무 근처에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가 성장해 소나무의 종자에 닿는 볕을 차단해 발아를 막는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참나무류를 베어내는 것을 말한다)를 해야하는데, 극단적 환경론자들이 막는다”라고 말한다. 일부 단체에서 ‘인위’적인 것을 무조건 막아 번식을 저해시킨다는 것이다.

유정칠 교수는 “군사보호 시설이나 갯벌지대에 대한 민간의 개발압력이 큰데, 정부가 주변을 매입하는 것이 복원보다 훨씬 예산을 아끼는 것”이라고 전한다. 멸종 위기에 처했을 때 증식·복원도 중요하지만, 개발이 가속화될 경우 잠재적 멸종 위기종이 상당히 많아질 수 있다는 것.

국제적 아젠다 허겁지겁 뒤쫓는 수준

풍란
정부의 상황인식이 약하다고 언급한 박대식 교수는 “객관적 기준없이 풍문으로 멸종종을 규정하는 등 정부는 정밀하게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한 뒤 “환경부의 증식·복원사업은 많이 길러서 야외로 내놓자는 것이다. 서식지 보호, 증식 이후 사회적 공감대 등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멸종종을 복원 방사한다는 것은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지난해 말에 나왔던 환경정책평가원 박상원 박사팀의 연구보고서 ‘멸종위기야생동식물종의 선정평가기법’을 살펴보면 이 같은 문제가 지적돼 있다. 즉, 정량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일부 전문가들의 설문과 자문에만 의존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것. 박 박사는 범주를 세분화해서 명확한 기준 및 조사지침을 개발하고, 주기적으로 생물종을 조사할 전담 부서인‘멸종위기야생동·식물종 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박희천 경북대 교수는 “서식환경이 좋은 우포나 주남저수지 등 생태가 잘 보존된 지역이 극히 제한적인데,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박 교수는 “멸종종 복원은 논문이나 실험과는 달라 현장에서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지는 만큼 연구자의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수도권 지역의 한 교수는 “국제환경기구 등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다가 국제적 아젠다가 던져지면 그때부터 공부하느라 서두르는 정부가 안타깝다”라며, “장기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연구해야 하는데, 단기프로젝트와 급박한 용역과제에 연구자들이 몰려 아쉽다”라고 말한다. 

이 밖에도 ‘농약에 절대 의존하고 있는 농사를 유기농으로 대체’해야 하고, ‘한 대학에 의지하기보다 국가 차원에서 식물표본을 종합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환경부의 연구과제가 일부 연구자들이 독식하고, 학제간 연구가 중요한데도 해당분야에 매몰되거나 비전문가들로 구성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또한 연구결과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아 공유가 안되고 논의도 일어날 수 없다. 연구가 현장에서 장시간 이뤄지는 데 반해, 대학에서는 기간 내 논문을 제출해야 연구업적평가를 높일 수 있어 기초조사부터 논문완성까지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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