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0:30 (금)
[동향쟁점]전쟁의 진실과 지식인
[동향쟁점]전쟁의 진실과 지식인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0.11.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0-11-25 12:29:10
전쟁을 “모든 구시대의 유물을 쓸어버리는 창조적 파괴행위”라 찬미한 것은 세계대전 전야의 미래파들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전쟁을 목격했다면 그들의 진술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의 희열? 그런 건 없다.

발칸전쟁 "얻은 것은 야만이요 잃은 것은 비판의식"

충일된 애국주의의 대결장도 아니다. 철저한 음모와 기계적인 살육만 존재할 뿐. 물론 이것은 폭력수단에 대한 통제가 근대의 산업주의와 결합된 결과 초래된 비극이다. 알려진 대로 기든스는 근대성이 초래한 파괴적 위험 가운데 하나로 ‘전쟁의 산업화’를 꼽은 바 있다.

2000년, 진행중인 분쟁은 83개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공개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00년 2월말 현재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분쟁은 83개에 달한다. 이를 지역별로 보면, 남북아메리카 4개, 흑아프리카(사하라 이남) 22개, 북아프리카(사하라 이북) 5개, 중동 12개, 아시아 18개, 독립국가연합(CIS) 9개, 유럽 13개 등이다. 최근 2년 사이만 하더라도, 체첸분쟁, 코소보 전쟁, 동티모르 내전, 팔레스타인 전쟁 등 대규모 무력충돌이 줄을 잇고 있다. 이 가운데 99년 3월 NATO군의 유고공습으로 시작된 발칸전쟁은 참여국 수(9개국)나 병력 수(약 3만) 면에서, 최근에 벌어진 분쟁 가운데는 가장 대규모의 분쟁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 전쟁은 역사상 최초로 ‘인도주의’를 내걸고 수행된 대규모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이래 국제법의 골간을 형성해온 주권존중의 원칙이 무시된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쟁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전쟁이었다. 당연히 전쟁을 둘러싼 시비와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10월말 이화여대에서 열린 인권영화제에서는 미국의 MTM 필름이 제작한 ‘판단’이란 기록영화가 상영됐다. 영화는 코소보 사태 당시 서방의 무력개입 여론을 촉발시킨 한 컷의 뉴스화면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의 상업방송사 ITN이 보도하여 전세계 미디어에 배포된 이 화면에는, 수용소 철조망 너머로 분노에 이글거리는 시선을 던지고 있는 알바니아계 회교도와 퀭한 눈빛의 깡마른 사내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이 철저하게 조작된 화면이었음이 동일한 장면을 촬영한 유고공영방송에 의해 뒤늦게 밝혀졌다. 영화는 ITN의 화면조작을 계산된 거짓말과 이미지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발칸전쟁의 실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의 번역으로 국내에도 소개된 ‘전쟁이 끝난 후’(이후 刊)는 전쟁의 스펙터클에 가려진 비극적 진실에 관한 보고서다. 집필에는 ‘신좌파평론’편집장으로 있는 타리크 알리 외에도 지오반니 아리기, 앨릭스 캘리니코스, 로빈 블랙번, 노엄 촘스키 등 당대의 쟁쟁한 좌파들이 참여했다. 이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는 “발칸 전쟁은 ‘이미지와 여론의 호도’ 속에서 인도주의의 승리를 위한 聖戰으로 미화되었으며, 그 속에 감추어진 ‘미국과 나토의 진정한 목적’은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편집자 타리크 알리는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는 세르비아계, 집시, 유태인들을 코소보 보호령에서 인종청소한 것”이라 일축한다.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내건 전쟁이 오히려 더욱 심각한 인권의 침해를 낳게된 역설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데케르트는 전쟁당시의 유럽사회를 “정치와 사유가 사라진 사회”, “지식인과 인도주의자, 군인들 모두가 똑같은 어휘를 사용하는 이상한 시기”로 간주한다.
발칸전쟁을 “인도주의적 제국주의가 역사적 단계로 들어서는 순간”이라 묘사한 캘리니코스의 비판은 코소보 사태 당시 무력개입을 부추겼던 유럽의 사민주의 지식인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들 지식인 가운데는 영국 ‘가디언’지의 수석칼럼니스트인 휴고 영,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 등이 포함돼있다. 영과 하버마스는 인도주의적 명분을 내건 발칸전쟁을 각각 “국제적 가치를 위한 전쟁”, “고전적인 국제법에서 세계 시민사회의 세계주의적 법률로 향해 가는 도상의 한 단계”라 변호했던 인물들. 캘리니코스는 발칸전쟁이 이들의 주장대로 “세계시민사회를 향한 움직임을 표상하기는커녕 강대국들의 군사력 사용이 소국들을 위협하여 굴복시키는 야만적 상황으로의 뒷걸음질에 불과했다”고 비판한다.
캘리니코스의 주문은 “전쟁을 초래한 경제적·정치적 역학관계를 직시하라”는 것이다. 그가 볼 때, 사태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유럽지역에서의 주도권을 보존하려는 미국의 패권전략이다. 물론 그는 이러한 현실주의적 분석이 인권보호 같은 규범적 호소와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규범적 호소가 “사태의 기초를 이루는 힘의 구조를 규명하려는 시도”와 결합되지 않을 경우 “상이한 이해관계에 의해 지배되는 정책들의 단순한 장식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지식인들의 배반과 도덕적 파산

진실은 좀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법이다. 일군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발칸의 진실도 이제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규명되는 진실은 극동의 끝자락에 위치한 한국의 지식인들에게도 무거운 성찰을 주문한다. 지난해 봄, 우리는 “인권은 모든 권리에 선행한다”는 대의만을 되뇌며, 명분과 수사에 가리어진 전쟁의 진실을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던가. 현실의 전쟁을 외면한 채 ‘인권과 주권의 딜레마’라는 사변적 논쟁에 열을 올렸던 것은 아닐까.
발칸을 회고하며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한다. “애국주의와 도덕적 관심으로 변장한 유창한 민족주의가 비판적 의식을 지배해왔다. ‘민족’에 대한 충성을 모든 것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식인들의 배반과 완전한 도덕적 파산만이 있을 뿐이다”. 1차세계대전 전야,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추악한 제국주의 전쟁에의 협력을 거부하라”고 호소했던, 한 러시아 혁명가의 ‘혁명적 패배주의’는 여전히 설득력을 상실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