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9:10 (토)
‘명성·순위’에 목매다는 대학…경쟁력은 어디에 있을까
‘명성·순위’에 목매다는 대학…경쟁력은 어디에 있을까
  • 김재호
  • 승인 2023.05.08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_『대학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존 V. 롬바르디 지음 | 윤영섭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352쪽

“대학 랭킹(순위 매김)은 전염병 수준이다.” 존 V. 롬바르디 전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역사학과)는 최근 번역·출간된 『대학은 어떻게 운영되는가』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고도로 경쟁적인 대학 비즈니스가 각 대학이 자신을 최고라 선전하고 뛰어난 질을 홍보하며 많은 색다른 성취물들을 전시하게 만든다”라고 비판했다. 롬바르디는 플로리다대 총장, 메사추세츠대 에머스트 캠퍼스 총장, 루이지애나대 총장, 존스홉킨스대 부총장 등을 역임하며 체험한 대학경영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남겼다. 

 

전 세계 학생들이 미국의 대학에 모여든다. 하지만 대학 순위에 목매는 건 매한가지다.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 <포브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대학 랭킹의 상업적 가치를 경쟁적으로 좇는다. 롬바르디는 대학 랭킹에서 주된 이슈는 바로 순위를 결정하는 방법론이라고 꼬집는다. “미국에서 대학 랭킹은 주로 입학생의 질, 대학의 부, 그리고 확인 가능한 통계적 특성을 고려하는 명성-기반의 설문조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들은 매년 대학 랭킹 설계하는 방법을 조금씩 바꿔서 순위를 조정한다. 

롬바르디는 “명성-기반의 평가는 단지 역사적 권위와 연관된 ‘입에서 입으로’의 개념”이라며 “랭킹이 동문과 정치가에게 가치가 있기 때문에 대학들은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미국에서 랭킹은 누구나 즐기는 게임이고, 거의 모든 대학이 방법론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좋은 랭킹 결과를 웹사이트에 올린다”라며 “대학은 명성의 원천이 어디에 있든지 권위 있게 보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라고 일갈했다. 정작 중요한 건 티칭·연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학 경쟁력은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흔히 어떤 좋은 학술지에 얼마만큼의 출판물을 출간했고, 논문 인용 수가 어떤지를 측정한다. 하지만 롬바르디는 “학술지에 출판된 모든 논문이 같은 가치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때로는 어디에 인용이 되었는가의 이슈가 중요해진다”라며 대학 경쟁력 평가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한 건 ‘글로벌연구벤치마킹시스템(GRBS)’이다. 이 시스템은 250개 이상의 세분화된 주제를 영역별로 측정해서 창의적 연구 평가의 방법을 제시한다. 글로벌연구벤치마킹시스템은 유엔대학과 미국의 대학성과측정센터가 협업해 개발했다. 다른 대학과의 비교가 아닌 국제적 표준에 따라 연구성과를 측정한다. 

롬바르디는 “대학경영은 언제나 과학이라기보다 예술로서 창의성과 책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날이 갈수록 교육의 수요가 증가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속적 연구와 성장이 필요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고임금 일자리 제공과 지역 경제의 발전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은 ‘질(質) 엔진’으로써 작동해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학의 목적은 외부에 연구성과물·졸업생·공공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은 최고의 교수진과 최고의 학생, 최고의 학술환경 등의 자원을 확보해서 최고 수준의 교육과 연구, 그리고 최대의 질을 끊임없이 빠르게 몰고 가는 ‘질 엔진’이다. 그런 면에서는 상업활동을 수행하는 일반기업과 같다.” 예를 들어, 디즈니월드는 단순히 오락프로그램이 아니라 오락과 관련된 최고의 질을 판매함으로써 가치를 높이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다. 

 

대학은 학술기업으로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한다. 대학의 경영원리는 돈-성과-시간으로 압축된다. 사진=픽사베이

대학의 핵심 경영원리는 돈-성과-시간으로 압축된다. 대놓고 “이 책은 돈을 좇는다”라고 적었다. “대학 리더들이 영감을 줄 목적으로 잘 표현한 전략계획과 사명 헌장보다 돈 배분의 기준이 훨씬 더 강한 인센티브를 창출한다.” 교수들의 연구는 한마디로 “본질적으로 돈 잃는 사업”이기도 하다. 물론 교수들의 연구에서 언젠가 세상을 바꾸는 좋은 기술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정말 어렵고 흔치 않다. “대학들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를 가지고 가치를 실행한다. 대학인들은 돈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 대신 가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 대학생활의 기본적 구조는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돈을 요구한다.”(147쪽)

다음의 대화는 연구가 대학의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교수들이 하는 연구라는 거 정말 쓸데없는 일이에요. 연말에 잘 되면 전 세계에서 단지 10명 정도가 이해하는 논문을 쓰겠지만 프로젝트가 끝나면 보통 보여 줄 것이 없어요.”, “만약 연구를 안 했더라면, 우리 같은 나이 먹은 사람들은 지금 살아 있지도 못하고, 아이폰은 존재하지 않고, CD 플레이어는 작동하지도 않을 겁니다.”, “네, 그래요. 몇 개는 건져요. 그런데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바보 같고 괴상한 아이디어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낭비해요.”, “그럴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상은 연구란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한 것이고, 또 우리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리 알 수는 없지만 맞을 때는 세상을 바꿉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