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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보다 ‘수호자’ 늘어나는 사회 꿈꾼다
‘수포자’보다 ‘수호자’ 늘어나는 사회 꿈꾼다
  • 김재호
  • 승인 2023.05.1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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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학기술인 이야기 ㉓ 권오남 서울대 교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 여성과학인 소개 캠페인 ‘She Did it’을 펼치고 있다. <교수신문>은 여성과학기술인이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경력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동으로 소개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교수 사회에 진심을 담아 전달되길 기대한다. 스물세 번째는 권오남 서울대 교수다.

 

수학 박사학위 한 후, 교육학 석사학위도 취득
한국 수학교육의 국제화 개척하고 이끄는 소명

권오남 서울대 교수(수학교육과)는 수학교육자들의 교육자이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 수학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수학교사들을 육성하는 일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수학교육 국제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제화에 노력했다. 특히 지난해 4월, 아시아권에선 최초로 스웨덴 스톡홀롬대에서 수학·과학교육 혁신을 이끈 이들에게 주는 ‘스벤드 페데르센 교육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귀류법이라는 증명 방법을 접하면서 수학에서 사실을 정당화해나가는 과정이 무척 논리적·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극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무한 개념을 다루는 것이 무척 도발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권 교수는 감수성 많은 어린 시절부터 수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며 결국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길에까지 나아갔다. 

 

권오남 서울대 교수(수학교육과)는 이화여대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하고, 서울대에서 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인디애나대 블루밍턴에서 복소해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했다. 사진=WISET

 

수학-젠더-창의성을 개척하다

권 교수는 1990년대 초,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참석자 500여 명 중 여성은 20명 정도였다. 강연자도 자신 한 명뿐이었다. 그는 “수학에서 여성의 자리가 턱없이 적다는 것과 한국 유학생들의 창의적인 논문 집필의 어려움이라는 두 사실을 직면했을 때 이것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문제로 인식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권 교수는 박사학위 취득 후, 교육학 석사학위를 따로 취득했다. 수학과 젠더, 창의성은 권 교수가 개척하는 분야다. 

권 교수의 주요 연구 분야는 대학의 수학교육이다. 교수 방법뿐만 아니라 교수-학습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해왔다. 창의적 사고 계발을 위한 교육환경, 교육내용, 교육방법 등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크리스 라스무센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교수와 공동으로 20년 전에 미분방정식 과목에서 탐구 지향 교수법을 개발했다. “보통 수학 학습은 ‘정의-개념-응용문제’ 순서가 전통적이다. 탐구 지향 교수법은 수학적 현상에서 수학적 아이디어와 개념을 개발하는 접근이며 전통적인 방법의 역순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수학적 현상이 담긴 맥락을 통해 정의와 개념을 재발명(혹은 재발견) 하는 과정이다.”

탐구 지향 교수 방법에 관한 일련의 논문은 2000년 초반부터 꾸준히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다. 선형대수학, 현대대수학, 해석개론 등 대학 수학 교과목까지 전 세계 여러 연구자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권 교수와 라스무센 교수의 공동연구 논문이 탐구 지향 교수법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권 교수는 한국 수학교육학계의 국제화에 힘쓰고 있다. 그는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연구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논문의 인용 횟수가 중요하다”라며 “인용 횟수를 높이는 방법은 국제적인 학술대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과 함께, 국제적인 학자와 공동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권 교수는 “서구 중심의 수학 이론이 아닌 우리만의 이론을 만들기 위해선 결국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라며 “지도 학생들과 해외 학술대회에 참석할 때 나를 따라다니지 말고 공동 연구할 인연을 만들어 오라고 권유한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권 교수는 2000년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제9차 국제 수학교육대회(4년에 한 번 열리는 수학교육의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초청 강연자로 선정됐다. 2002년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개최된 ‘국제 학술대회’에서 기조 강연자로 초청됐던 적도 있다. 기조 강연자 5명 중 유일한 여성이며 최연소였다. 2008년 ‘국제수학위원회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150명 중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초청되기도 했다. 그때 동양에서는 일본인 2명, 중국인 2명뿐이었다. 

하지만 수학교육자로서 ‘수포자’라는 말이 너무 안타깝다. 수포자라는 말이 유행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수학을 시험 문제만으로 평가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수학은 암기가 아니라 사고하는 학문이다. 권 교수는 “탐구 지향 교수법 등이 학교 현장에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평가내용과 방법도 교수 방법과 일관성 있게 변화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절실하다”라며 “‘수포자’ 보다 ‘수옹자(수학을 옹호하는 사람)’나 ‘수호(好)자’와 같은 긍정적인 단어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국제적 네트워크 구성과 도전하는 수학자 양성

권 교수는 우리나라 수학교육계의 차세대 학자들이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하는 데 온 힘을 다해 도와주고 싶어한다. 국제적으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국 학자들의 네트워크 구성에 힘쓸 생각이다. 구체적으로는 2025년 서울대에서 열리는 ‘제9차 동아시아 수학교육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이 안에서 젊은 학자들이 네트워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 계획이다. 수학교육의 연구가 우리나라 교육 정책에 반영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권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은 경우가 꽤 있다. 도전하는 수학교육학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나라 수학교육계가 크게 발전하리라 기대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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