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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교수 자녀 교육 생활백서
[딸깍발이] 교수 자녀 교육 생활백서
  • 김용희 평택대
  • 승인 2006.09.01 13:41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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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편집기획위원, 평택대, 문학평론가

하긴 그녀들과의 인연은 이미 오래된 일인 것도 같다. 내가 제도권에서 학위를 받고 고독한 흑표범처럼 지방 곳곳을 떠돌아다니던 강사시절. 그해 겨울 나는 어느 조그만 사립대 전임원서를 내고 면접통보를 받아 총장 면접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면접 대상자는 두 명으로 축약되어 있었다.

 때가 때인지라 나는 단골로 가던 미장원에 들렀다. 단골 미용사가 내 머리를 만지고 있는 동안 나는 거울 속에 긴장해 있는 창백한 한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때 모피코트를 입은 뚱뚱한 중년 여성과 부모의 부에 값할 듯 향수를 풍기는 젊은 그녀의 딸이 미장원으로 들어왔다.

내 단골은 화들짝 놀라 반기며 그네들을 맞았다. 단골은 내 머리를 만지고 있었고 이미 나의 올림머리는 머리의 반 정도가 올라가 있던 차였다. 단골은 나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 하더니 곧바로 귀부인과 그 딸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그녀들도 시간이 없고 바쁘다 말했다.

나는 마음이 다급해져, 올림머리가 채 되지못한 채 한 쪽 어깨로 축 쳐져 내려와 있는 두개골 반쪽 나머지 머리를 내 손으로라도 핀을 꽂아 올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저 여자들은 뭐야, 나는 속으로 외쳤다. “저 중요한 일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뚱뚱한 모피코트가 말했다. “우리도 급한 일이 있어서.....”

드디어 그녀들의 머리가 완성되었다. 단골에게는 두툼한 팁이 주어졌다. 그리고 기분좋고 높은 비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이 멋진 머리를 가지고 누구라도 만나야 하는데 약속이 없네. 어떻게 하지~” 윽, 마귀할멈같으니라고. 나는 그녀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작아작 씹어먹고 싶었다. 나는 뚱뚱한 모피코트가 새단을 타고 가면서 스스로의 미모에 도취되어 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죽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죽지 않고 내 삶의 곳곳에서 출몰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들은 말했다. “저 아이들의 엄마는 맞벌이여서 우리얘들과 같이 놀게 해서는 안돼요. 관리되지 않은 아이들이니까요.” 그녀들은 담임선생을 자주 찾아가 무언가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늘 내 공부에 빠져 담임선생의 이름조차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학년은 알았지만 몇 반인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담임은 생각했겠지. ‘같은 동업자끼리 이래도 되는거야?’ 공식서류를 받을 일이 있어 담임을 찾아갔을 때 담임은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단 한마디의 말도 해주지 않았다. 담임은 내가 우리 아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결코 속죄받지 못할 짓을 한 것을 알았다. 나는 어떤 상품권도 선물도 가져가질 않았다. 나는 자본주의 상거래에서 어긋난 명백한 계약위반을 한 셈이다. 인간 사이에 순수한 교환이란 없는 것이다. 교환은 모두 불순하다.

나는 늘 교육정보가 늦었다. 학원 수강신청은 어머니 설명회가 있는 날 마감되었다. 그녀들은 교육정보를 나와 공유하지 않았다. 나는 지불비용을 치루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내 아이들은 공부가 늦됐다. 지들이 알아서 공부라도 좀 잘 할 것이지. 나는 내가 낳은 원수들을 내려다 보았다. 저 아이들은 내가 낳지 않았을지도 몰라.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는지도. 적어도 나는 박산데. 현대의 우생학과 유전학은 완벽한 허구라고 통탄했다. 줄기세포는 없는 것이다. 오, 이 웬수들......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신입생의 40%가 강남에 산다고 한다.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신입생의 90%가 전업주부의 자녀라고 한다. 학원강사의 자녀들은 학원식으로 가정에서 관리된다. 교수의 자녀들은 자율적 대학식으로 가정에서 방목된다. 나는 늘 그녀들보다 늦었다. 속도와 생존의 자본주의에서 나는 언제나 그녀들을 이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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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동업자 2006-09-14 01:41:15
나도 국문과 교순데, 우리 딸이 전 과목 고루 낮은 성적 중에서도 국어 과목이 가장 낮을 때 어이없는 웃음이...담임은 이렇게 묻는댑니다. "니네 아빠 국문과 교수 맞냐?" 알 수 없는 것이 애들...너무 상심하지 마시기를...

진짜 동업자 2006-09-08 15:29:05
열심히 공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이려니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정말 열두번씩 바뀌게 됩니다. 공부하면서 아이를 기르는 엄마의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몇번이고 공감을 하게 됩니다. 진짜 동업자들끼리 도와가면서 격려하면서 살아가고 싶네요. 함께 힘을 냅시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나그네 2006-09-08 10:57:54
이 글은 자기 생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리 읽힐 것같다.
댓글이 지워진 것은 필자 자신이 쓴 댓글이라 지워진 것같다.
두번씩이나 댓글을.

그래요 2006-09-07 23:49:40
'부모가 모두 박사라서 아이들은 얼마나 머리가 좋겠어요? 다 알아서 할텐데...'이 말을 듣는 날에는, '그렇지 않아요' 나 또한 '그러면 좋겠어요' 라고 받아치게 됩니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자식에 대해 언제나 자유만을 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며, 방목에 대한 미안함을 뒤로한 우리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써 준 김용희 교수의 글에 같은 마음임을 전하고 싶습니다.

참신해 2006-09-07 22:59:41
악성 리플도 아닌데 제가 쓴 글이 자꾸 지워지네요. ??? 오후에 썼던 '공감되는 글'이란 댓글을 기억을 더듬어 다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