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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아내와 애인
[학이사] 아내와 애인
  • 함영준 단국대
  • 승인 2006.09.01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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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단국대·희곡

문학을 전공하다 보면 참으로 많은 유혹을 받게 된다. 푸쉬킨을 외우면서 그의 불같은 사랑에 유혹을 느끼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다보면 어느새 철학에 빠져 들어간다. 톨스토이를 찾아가면 저 먼 어린 시절 꿈꾸었던 종교에로의 귀향을 생각하기도 한다. 젊을 적 고리키를 읽으면서 혁명의 유혹을 받았고, 자먀찐을 툭 건들면서 유토피아 건설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 유혹은 유혹일 뿐, 타고난 소심함으로 대부분 유혹의 변방만 건들뿐 쉽게 스쳐지나갔다. 현실에서 난 그저 이 유혹의 언저리를 학생들에게 조금씩 잘라 팔면서 근근이 먹고 살 뿐이다. 오, 맙소사! 이들이 없었다면 난 어찌 되었을까?

이런 내게 딱 한 가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연극에의 유혹’이다. 전공이 희곡 문학이니 어찌 보면 유혹이라 말 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학문 분류가 다르고, 그야말로 ‘노는 물’이 다르니 연극이 내게 유혹은 유혹인 셈이다.

사실 연극에 대한 열정은 어린시절로 돌아가야 되겠지만 유학시절 공부를 핑계로 보았던 러시아의 치열한 연극과 연극 정신에 기인한다. 연극을 ‘흉내내는 것’이라고 믿던 나에게 연극은 ‘사는 것’임을 알게 해준 배우들, 세미나 시간에 누구 보다 더욱 명쾌한 분석을 가해 주던 연출가들과의 만남. 난 귀국 후 어떤 식으로든 연극을 내 학문과 접목시키고자 내심 결심했었다. 그러나 그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문학의 언어로 말하는 나는 연극인들 사이에 이방인이었고, 내 언어는 공허한 변방의 북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유혹은 유혹으로 끝나는가 보다 라고 생각하던 순간 기회가 왔다.

체홉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체홉의 ‘갈매기’공연에 참여하면서 내게 연극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운명처럼 다가왔다. 문학의 언어로는 담아 낼 수 없는 감동을 무대는 보여주고, 체홉의 가장 깊은 곳 까지 내려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연극은 알게 해 주었다. 오, 하느님! 내게 연극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언어가 연극의 언어로 바뀌어 갈 즈음 주위에서 성화가 그치질 않는다. 대체 돈 안되는 연극이 뭐 그리 좋으냐고, 연극이 무엇이 길래, 극단까지 만들어 가며 연출을 하느냐고...사실상 감정의 문제를 말로 설명하기란 힘이 든다. 궁색한 대답을 찾던 중 내 사랑하는 작가 체홉이 또 답을 준다. 알다시피 그는 의사였다. 문학은 그에게 당시로선 생계를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작가로서 삶을 영위하고, 작가로 삶을 마치면서도 체홉은 생의 마지막 순간 까지 자신이 의사였음을 잊지 않았다. 시골에서 병원을 개원하여 평생 무료 진료를 하였던 체홉에게 사람들은 물었다. 의사와 작가 중 당신은 무었입니까? 체홉이 대답한다. “내게 의학은 아내죠, 그리고 문학은 애인이구요!”

체홉의 말은 내게 위로와 정당성을 준다. 주위에서 오늘도 묻는다. 문학과 연극에 대한 나의 정체성을, 난 체홉을 흉내낸다. ‘문학은 내 아내이고, 연극은 애인이지요!’ 그리고 아내와 애인을 동시에 주신 신께 감사한다고, 둘을 다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한다고 웃는다. 오늘도 난 아내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애인이 있는 극장으로 간다.

이제 난 유혹의 언저리를 맴돌지 않고 그 유혹에 푹 빠져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멋진 경구를 노래하며...  ‘난 유혹을 제외한 모든 것에 저항 할 수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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