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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역사계간지 가을호 주요 내용 소개
[학술동향] 역사계간지 가을호 주요 내용 소개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9.01 0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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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연구 붐...지식인 위기론 재연

역사분야 계간지들이 가을호 특집을 안고 찾아왔다. ‘역사비평’(역사비평사), ‘내일을 여는 역사’(서해문집), ‘한국사 시민강좌’(일조각)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내일…’이 마련한 ‘대학과 지식인을 위한 성찰’이다. 제목만 보면 그 역할과 권위를 눈에 띄게 잃어가는 ‘지식인’의 좌표에 정면으로 육박하는 듯하다.

하지만 대부분 과거 지식인들이 이러이러했다는 내용이라 다소 실망스럽다. “바야흐로 혼돈의 시대다”라고 시작하는 홍덕률 대구대 교수(사회학)의 ‘신자유주의시대의 대학과 지식인’에는 윤리적 무게가 실려있다. “역사적 전환과 이행의 본질 및 그 방향과 의미를 먼저 통찰해내고, 실체를 앞서서 분별해내는 것”이 홍 교수가 강조하는 지식인의 역할이다.

그는 이런 전언에 맞게 현대사회의 이행기적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위기의 현실을 진단한다. “학생 미충원의 위기, 재정위기, 경쟁력의 위기가 논의되지만 정작 그런데서 대학의 위기를 찾는 인식론적 한계가 중요한 위기”라며 “우리 사회의 위기 또한 전환기의 혼돈과 불확실성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혼돈과 불확실성의 실체를 정확하게 통찰해내지 못하는 지적 혼돈에 있다”는 지적은 온갖 핑계와 합리화만 난무하는 상황을 시원스럽게 질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자신의 지적 역할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적 지식환경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인데 마침 이와 연관된 움직임이 살펴지기 시작한다. 대학이, 높은 연구실적 요구에 걸맞은 연구환경을 만들어주는가 하는 항명의 움직임이다.

‘내일…’은 특집에 이어 식민지시대 민족주의 사학자들, 사회경제사학자들의 역사인식을 두편의 논문으로 짚고, ‘인물 바로보기’ 코너에서도 세조, 이상룡, 조병옥 등의 역사인물이 당시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전반적으로 지식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논쟁적 독서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사 시민강좌’는 ‘고려시대의 역사인물’을 전면적으로 불러들였다. 국왕, 귀족관료, 장군, 승려, 향리, 농민, 노비, 화가, 문인, 여성 등으로 범주화해 그 전형적 인물의 삶을 재구성하는 각각의 글을 그 분야에 가장 정통한 전문가에게 받아 특집을 꾸민 것. 흥미와 관심을 충분히 자아낼 만한 구도이다. 인물의 삶을 통해 한국사의 변방으로 인식돼 온 고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 편집진의 의도는 고려가 신라와 조선을 잇는 교량이 아니라, 조선사회의 기본 틀이 다져진 발전을 이룬 독립적인 시기라는 점에 있다. 이어지는 도현철 연세대 교수의 ‘한국의 역사가-권근’도 여말선초를 다루고 있으며, ‘나의 책을 말한다’에서는 에드워드 슐츠가 자신의 박사논문 주요내용과 집필내력을 밝히는데, 고려 무인사회에 지속되었던 문인적 전통을 강조함으로써 역사의 연속성과 발전을 보여주고 있어, 함께 읽어보면 이 시대에 대한 지적, 학문적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듯 보인다.

편집진의 세대교체를 이룬 ‘역사비평’은 ‘한국인의 동아시아 인식과 구상:역사와 현재’라는 특집을 선보였다. 김성보 신임 편집주간은 여전히 “민족의 현실에 중심을 두겠다”는 편집의도를 밝히고 있는데, 이번 특집은 유길준과 안중근, 최남선, 이승만, 박정희, 노무현 등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지도자들의 동아시아 정세판단과 전략을 분석하고 있다. ‘역사비평’은 향후 신채호, 김구, 김일성, 노태우, 김대중, 리영희 등을 계속 다룸으로써 한국 동아시아인식과 구성에 대한 계통적 정리를 하고자 한다. 이는 그간 인문학이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사회과학이 정책과 전략 위주로 다뤄 학문적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는 형국을 탈피해보고자 하는 기획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뒷부분에 실린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의 ‘기억의 정치학을 넘어 기억의 문화사로’는 최근 구술사·일상사 연구업적의 학문적 의미와 장단을 꼼꼼히 정리해주고 있다. 특히 기억의 정치성을 애초에 부정하는 흐름과 후기구조주의적 재현론에 갇혀 재현의 불가능성만 확인하려는 경우를 질타한다. 여기에 ‘한국사 시민강좌’에 실린 안병직 서울대 교수의 ‘서양사에서의 일상사 연구’를 읽어서 보태면 동서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최근 역사연구의 동향과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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