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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조옥라 / 서강대·사회학
[만파식적] 조옥라 / 서강대·사회학
  • 교수신문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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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6:13:38
중고등학교의 교실이 붕괴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대학입시에 모든 가치를 두고 학생들을 몰아온 우리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학생들이 진학한 대학사회가 담당해야할 몫이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이 부재해왔다는 것이 대학사회의 이기적 측면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매년 더 좋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모든 대학은 사력을 다하고 있는데 교육적으로 이러한 경쟁이 타당한지, 왜 대학의 신입생유치 작전이 대학의 생존에 그렇게 핵심적인지에 대한 대학사회 내 토론은 많지 않다. 물론 교실붕괴의 현실을 논하는 중고등학교에서도, 대학 입학처에서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점수’로 환산되는 ‘우수성’과 ‘성과’를 최대로 높이려고 매진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측면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대학은 정보화사회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교육환경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론 속에서 우수한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는 결의에 차있게 됐다.

대학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바로 이러한 ‘우수한 인재’들이 될 재목들인데, 이들 학생들은 공식 교육이란 이미 중고등학교에서부터 그냥 스쳐가야되는 것이고, 입시 등의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선생은 그냥 자신들의 개인적 욕구와는 관계없이 정보를 주고 있다는 인식을 고정관념으로 확고하게 갖고 있다. 그래서 강의내용과 관계없이 책을 보거나, 휴대폰을 통해 문자메시지를 교환하고 심지어는 자는 것조차 ‘익숙하게’ 됐다. 모든 총력을 다해 ‘공부’를 해 들어온 대학에서 비싼 등록금을 내고 듣는 강의실에서 완전히 따로 노는 학생들을 향해 인간이란, 사회란, 문화란 하고 떠드는 나 자신도 완전히 제도 속의 ‘꼭두각시’가 돼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지 걱정스럽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상담을 위해 연구실을 찾고, E-mail을 통해 ‘접속’을 시도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즉 개별적인 조언을 받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강의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려는 경향이 미미하지만 늘고 있기도 하다. 이들 학생들은 개인적 이야기에서부터 학문적 궁금증까지 함께 논의하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학생들의 다양한 질문들을 강의실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음을 반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교실의 붕괴’라는 현상이 모든 영역에서 교육의 가능성을 파괴하고 있지는 않다는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한다. 실제 학생들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 측면에서 알 수 있다. 강의실에서 ‘따로 노는’ 학생에서부터 개인적인 취향을 학문적 관심과 연결시키려는 학생, 학교 들어온 다음 바로 취업에 대한 준비로 정신이 없는 학생들까지 실로 ‘여러분’이라는 통칭으로 불리어지기에는 너무도 다르다.

학생들 간의 다양성에 우리 대학의 현실은 준비돼 있지 않다. 나는 중고등학교의 ‘교실 붕괴 내지 교권의 위기’라는 상황이 대학사회에 미치는 영향 중에 가장 큰 것이 더 이상 강의실이나 교수의 권위가 먹혀 들어가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강의실에서 규범적인 분위기는 사라져 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교수되는 ‘지식, 정보’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취직과 같이 현실적 필요성에 부응하거나 개별 개인의 욕구와 연결된 지식만이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게 하는 강의는 골치 아프고, 즐겁게 해주는 ‘재미있는’ 강의가 각광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냥 자는 강의에서부터 열심히 참여하는 강의까지 있게 된다. 이러한 경향에서 성(gender)에 따른 차이는 거의 없다. 여학생들이 더 착실하게 강의 듣고 노트필기 잘 하고 학점 좋다는 통념은 적어도 내 강의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대학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한 대학생들에게 강의태도에서의 성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다양화된 학생들 자신이 ‘대학’을 ‘수단시’하면서 대학에 참여하는 방식을 멋대로 하고 있는 데 이제 대학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가 됐다. 이 시점에서 대학이 변해야 되는 면과 변해서는 안 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선 변해서는 안되는 측면은 지식전달이 이루어지는 강의실에서 진지함과 집중성이다. 교수나 학생 모두에게 때우기식의 강의는 있어서는 안 된다. 변해야 되는 면은 강의의 내용에서 충분히 현실적인 고려를 한 생동성을 가져야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의 감각에 맞는 방식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통념, 교수와 학생간의 거리, 남녀 학생들에 대한 고정관념, 성적 농담을 학생들이 재미있게 생각하리라는 편견 등은 없어져야 한다. ‘성희롱 금지’ 규정이 이러한 차원에서 더욱 철저하게 실천돼야 하는 곳이 바로 대학사회이기 때문이다. 변하는 여학생들에 대한 고려가 대학사회의 변신에 크게 도움을 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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