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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박정희기념관 건립과 도덕적 해이
[풍향계] 박정희기념관 건립과 도덕적 해이
  • 교수신문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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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6:05:50
박영근 / 주간·중앙대

50년만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국민은 변화와 개혁을 다잡고 경제위기를 빨리 해결하라고 표를 주었다. 그런데 수십년간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왔던 김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정치 지향점이 사뭇 다른 유신 본당과 연대하면서 내각제를 약속했으며 반민주적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영입했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행태는 그의 임기 동안에 아킬레스 腱으로 줄곧 남을 게 뻔하다.

이런 태생적 한계를 지닌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지도 2년6개월이 흘렀지만 전방위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정부에는 국민이 없다는 말이다. 어느 저널리스트는 “말이 좋아 준비된 정권이지, 실제로는 海圖조차 없이 폭풍우 속으로 뛰어든 선박과 다를 것이 없는 정권이다”라고 꼬집었다.

이런 와중에서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않은 대통령의 기념관을 짓겠다는 웃지못할 일마저 벌어졌다. 공론화 과정은 커녕 객관적인 평가도 없이 박정희기념관을 세우자는 안이 확정됐다. 지난 7월19일 청와대에서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신현확 회장, 부회장 권노갑, 최인기 행자부장관, 고건 서울시장 등이 박정희기념관을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조성되는 공원부지에 세우기로 했다. 5천평의 부지를 정부가 제공하고 여기에 연건평 2천~3천평의 기념관을 건립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더더욱 기가 차는 일은 건립에 드는 비용이 자그만치 7백억원이고 2백억원을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국정운영을 다잡아야 할 청와대에서 그것도 내로라하는 인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념관 건립 계획안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다. 이인화의 ‘인간의 길’,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일부 보수논객과 조선일보가 부추긴 박정희 신드롬의 약발이 청와대를 비껴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회장 이수성)는 지난 99년 2월 총회를 열어서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의 고문으로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 등 ‘살아 있는’ 전직 대통령을 추대했다. 12·12 사태와 5·18 민주항쟁에 대한 역사적 증언을 마다한 덩치 값도 못한 ‘무능한 대통령’, 동족을 죽였고 천문학적 비자금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2천여억원의 추징금도 내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2명의 ‘훈장까지 받은 전과자 대통령’, 텃밭주의에 빌붙어서 헛말하고 다니는 ‘대도 대통령’, 그들을 전직 대통령이란 이유만으로 고문직에 참여시키는 것은 분명 백범을 욕되게 하는 짓이다. 그런데 이수성 회장의 변명이 가관이다. 대한민국이 백범의 임시정부 법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도 살아 있으면 고문으로 추대하겠다는 맹랑한 논리다. 게다가 이 회장은 발기인 명단에 친일파와 극우보수세력까지 끌어들였다.

백범기념관 건립과정의 문제

이처럼 몰골이 사정없이 망가진 백범기념관 건립은 흐지부지되고 있는 반면에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부랴부랴 팔을 걷어부치고 발의했던 장본인은 바로 총선을 의식한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었다.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의 명예회장인 김대통령은 지난 해 5월 대구로 내려가서 전국정당화를 겨냥한 TK 끌어안기의 정략적 결과물로 셈쳐진 이 기념관 건립계획을 발표했다. 선거철만 되면 앞 뒤 안가리고 표를 모으는데 혈안이 된 집권당의 품새가 사납다. 그러자 역사를 전공하는 교수-강사-연구원-대학원생-교사 등 1천여명이 즉각적으로 반대했고, 뜻있는 많은 인사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그런데 비명횡사한 박정희 대통령, 그는 누구인가. 신경군관학교에 자발적으로 입대한 이 일본육사생도는 졸업식에서 대동아 공영을 이룩하기 위해 신명을 다 바치겠다고 맹세까지 했던 인물이다. 창씨개명까지 한 그는 다카기 마사오라는 일본식 이름을 즐겨 사용했다. 그는 독립군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전형적 사무라이였다. 이같은 그의 소갈머리 없는 친일 전력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우리 현대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얼룩졌다.

특히 그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헌법전문에 나타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깡그리 훼손한 장본인이다. 반민족주의자 다카기 마사오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유린했고, 독재자 박정희는 4·19혁명의 민주이념을 짓밟았단 말이다.

따라서 설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문제인물’의 기념관을 세우는 일에 나라가 나설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정희씨를 숭앙하는 팬들의 ‘몫’일 뿐이다. 특히 김대통령은 국민혈세를 박정희기념관을 짓는데 써서는 안된다. 민심으로부터 따돌림당하고 三獨皇帝로 회자된 김대통령이 연초에 “국민은 하늘”이라면서 취임이후 처음으로 독단, 독선, 독주를 거두고 고개 숙였다. 민심을 샅샅이 훑겠다는 김대통령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미 도덕적 해이가 임계점에 다달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더이상 어영부영하지 말고 결자해지 차원에서 기념관 건립을 거두어야 한다. 그리고 국회도 여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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