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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즈, 국가 역할 따라 갈림길에 섰다
라이즈, 국가 역할 따라 갈림길에 섰다
  • 강일구
  • 승인 2023.04.26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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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사의재, ‘윤석열 정부 1년 교육정책’ 집중진단
반상진 교수, “‘사립대구조개선법’, ‘사립대학법’ 제정으로 대응해야”
포럼 사의재와 국회 교육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5일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을 진단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오마이TV

“고등교육의 지방분권을 통한 지역·대학의 동반 성장이냐 아니면 대학의 지자체 예속을 통한 준 시장주의적 구조개편이냐.”

홍창남 부산대 교수(교육학과)는 25일 민주당 교육위원회가 주최한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을 진단하는 토론회에서 라이즈(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가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무성 강화 여부에 따라 두 가지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국가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충하고 대학의 자율적 혁신을 유도하면 지역·대학의 동반 성장이 가능하지만, 현 수준의 재정 지원 규모를 유지한 채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면 준 시장주의적 구조개혁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홍 교수는 먼저 라이즈의 대학 관할 범위가 비효율적이라고 진단했다. 가령 같은 광역단체 단위이지만 대구에는 4년제 대학이 2곳밖에 없고 경북에는 20곳이 있다며 “대다수 대구 출신 학생들이 다니는 대학의 소재지는 경북이다. 학생들의 거주지와 대학이 많은 곳을 분리해 라이즈를 운영하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과 맞지 않다”라고 짚었다. 홍 교수는 라이즈를 광역이 아닌 초광역단위로 설정하고 생활경제권, 지역의 특성, 규모의 경제 등을 고려해 전국을 6대 혹은 8대 권역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라이즈의 거버넌스 문제도 짚었다. 중앙 부처의 지역인재정책관과 라이즈센터, 광역지자체의 라이즈센터와 라이즈 추진단, 지역고등교육위원회 등 라이즈 관련 기관이 많아 그 관계가 모호해 거버넌스가 역할을 못 할 것이라고 봤다. 대표적으로 지역고등교육위원회와 라이즈센터 간 관계가 가장 모호하다며 라이즈센터는 독립된 특수법인으로, 지역고등교육위원회는 센터의 이사회로서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부산이나 충북은 여전히 지자체가 관계 기관이 라이즈센터를 맡고 있다. 이를 법적근거와 재정 기반을 갖춘 특수법인으로 전환해 독립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라이즈 구축으로 인해 대학의 자율적 변화 추진 동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기존 대학의 산학협력단회계로 편성됐던 RIS, LINC3.0, LiFE, HiVE 등의 사업이 라이즈 법인으로 편성돼 산학협력단회계가 대폭 축소된다”라며 대학 자율성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창남 부산대 교수(교육학과)는 이날 토론회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무성 강화 여부에 따라 라이즈가 두 가지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사진=오마이TV

홍 교수는 정부가 라이즈를 통한 지역 문제 해결을 기대하고 있지만, 지자체가 관할하는 대학 수가 적으면 보다 촘촘하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대학 운영에 관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교육의 역할을 산업 인재 양성으로 규정한 대통령 방침에 따라 지자체가 대학을 지역산업 발전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대학 구조가 지역 수요 중심으로 재편되면 해당 지역의 산업 수요가 낮은 학과 분야는 소외될 수 있어 기초학문 보호도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라이즈와 연계된 글로컬대학은 ‘글로벌’보다는 ‘로컬’의 역할이 강조될 것이라며 지역국립대의 위상 저하와 지역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도 약화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 교수는 단기적인 대안으로는 △권역별 라이즈 체계 구축 △법적 지위와 재정 기반을 갖춘 라이즈 센터의 특수법인화 △국립대와 사립대로 이원화 한 글로컬대학 선정 등을 제안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한시적 사업 기반 지양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국가균형발전회계 8조 원 확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00억으로 세계적 대학 만들라는 것은 립서비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과)는 윤석열 정부의 지방대 정책에 대해 “지역 대학 살리기가 아닌 대학 구조조정과 경쟁 구도를 가속화 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반 교수는 글로컬대학 사업에 대해 ‘언 발에 오줌누기 식 대처’라고 비판했다. 그는 “서울대 1년 예산이 9천억 원이고 서울 주요 사립대는 5천~6천억 원, 국립대는 3천억 원이다. 반면, 하버드나 스탠포드는 1년 예산이 10조 원이고 도쿄대도 3조 원은 된다. 200억 원으로 세계적 대학을 만들라는 것은 립서비스다”라고 비판했다.

현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이 실효성 없는 사업기반 정책이라고도 비판했다. 반 교수는 “고등교육 관련 국정과제 9개 중 교육부 단독 과제는 4개이고, 나머지는 과기정통부(2개), 산업부(1개), 중기부(1개), 국토부·금융위·고용부·중기부·교육부·국방부·국조실(1개)에서 벌이고 있는 것은 사업기반의 정책”이라며, “이 정책은 정권이 끝나면 사업이 일몰되기에 큰 실효성이 없다는 게 과거 정부에서 입증이 됐다”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예고한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에 대해서는 규제완화로 대학의 시장화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했다. 특히, 겸·초빙 교원 비율을 늘려 교수의 질 저하와 대학의 미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익용기본재산에 대한 기준 완화에 대해서는 “사학법인이 건물과 땅을 자유롭게 상업 시설로 전환하거나 법인·사학소유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짚었다. 

반 교수는 ‘대안 법안’을 마련도 제안했다. ‘사립대구조개선법’에 대한 대안으로 ‘사립대학법’을 제정하고, 지방대 지원 계획수립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하는 관련 법령 개정에 대응해 ‘대학균형발전을 위한 지원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라이즈 연착륙 위해 시범지역 7곳 분석해야

전국교수연대회의 공동대표인 신정호 목포대 교수(중국언어와문화학과)는 홍 교수의 발제 내용에 동의하며 정책들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등교육 재정이 확보되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했다. 또한, 신 교수는 지자체에 대학 재정 지원 권한 이양은 한계 사립대의 퇴출 시기를 늦추고 공공재정 지원의 감소나 역차별로 국립대와 건전한 사립대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봤다. ‘사립대구조개선법’에 대해선 국가와 지자체의 고등교육 관련 공공재원이 부실 대학과 한계 대학의 구조개선과 자산 매입 등에 과도하게 투입되는 길을 열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 소장도 라이즈에 대해 의견을 보탰다. 백 소장은 라이즈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7곳을 통해 라이즈의 문제점과 장점을 분석해 라이즈를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컨설팅과 자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라이즈 수행 과정에서 지자체 내의 고등교육기관들의 역할분담도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미국 대학들이 커뮤니티 컬리지, 교양중심대학, 연구중심대학 등으로 그 역할을 분담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원활하게 이동하며 교육을 받듯이 우리도 라이즈 내에서 전문대와 일반대, 연구중심대와 교육중심대학 간 역할분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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