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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위기의 본질과 이름 바꾸기
국립대 위기의 본질과 이름 바꾸기
  • 안상준
  • 승인 2023.04.24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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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안상준 논설위원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논설위원

부경대가 공식적으로 ‘국립부경대’가 된다. 강릉원주대·공주대·군산대·금오공대·목포대·목포해양대·순천대·안동대·창원대·한국교통대·한국해양대·한밭대 등 12개 국립대도 공식 명칭 앞에 ‘국립’을 추가한다. 교육부가 국립학교설치령을 일부 개정하여 개명 신청을 허용한 것이다. 

그러자 언론들은 앞다투어 신입생 충원에 비상이 걸린 국립대가 개명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려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기사를 쏟아냈다. 국립대마저 지방대의 벚꽃엔딩과 무관하지 않다는 기사를 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지난 3년간 일부 국립대의 신입생 미충원률이 적게는 5~6%에서 많게는 27%를 기록했다. 경북지역 4년제 일반대 가운데 입학률 꼴찌는 국립대였다. 

중소도시의 중소규모 국립대의 처참한 현실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당연히 학령인구의 절대 수치 감소와 청년의 수도권 쏠림 현상 심화와 같은 외부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국립대와 사립대를 획일적인 평가 기준으로 줄세우며 국립대의 개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교육부의 재정지원정책과 국립대의 저렴한 등록금의 이점을 몰수해버린 국가장학금 제도의 시행 등 정책적인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 국립대의 무사안일주의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적당주의도 국립대 경쟁력 추락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렇다면 교명에 ‘국립’을 덧대면 사정이 나아질까? 실제로 중소규모 국립대의 경쟁력 위기는 낮은 브랜드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 안동에 대학이 있는지, 그 대학이 국립대인지는 경북지역을 벗어나면 국민 대부분이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현재의 인구감소 속도, 신입생 미충원률 및 재학생 이탈률을 고려하면 속수무책의 상황이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자연스레 국립대 통·폐합의 논의가 잦아지자, 개명 조치와 함께 교육부는 통·폐합의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최근 급격한 학생 수 감소에 따라 국립대학 간 통·폐합 논의가 늘어나고 있으나, 현행 법령상 국립대의 통·폐합 근거 규정이 없는 상황임. 이에 따라 국립대 통·폐합 추진의 근거를 마련하고 세부적인 사항을 교육부 고시에 위임하고자 함.” 지금까지 국립대의 통합은 교육부 통·폐합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장관 승인을 받아 이루어졌지만, 이와 관련된 법적 근거는 고시로만 되어 있었다.

부산대와 밀양대의 통합 등 2006년부터 2008년 사이 이루어진 국립대의 통합 사례나 최근의 경상국립대 통합까지 모두 법률적 근거 없이 고시로만 진행된 셈이다. 스스로 국립대를 국가기관으로 규정하고 개명조차 함부로 하지 못해 법령을 개정한다고 밝히면서도, 국가기관의 통·폐합은 근거 규정 없이 진행했다는 교육부의 해명은 참으로 기묘하고 해괴하다.

그럼, 이제는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 마음껏 국립대의 통합을 유도하거나 강제한다고 읽어도 좋을까?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우려된다. 현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철저한 시장주의자다. 1995년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설계한 실무진으로서, 또 2011년 실용주의적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대학을 시장에 내던지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대통령의 강력한 후원을 받아 기필코 그 꿈을 이룰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학의 관리 권한을 지자체로 넘기겠다는 교육부의 선언은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구축과 글로컬대학 사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대학의 존재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쓰나미를 맞아 고작 ‘국립’을 붙여 지명도를 높이려는 대학의 몸부림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들에게는 대학 본연의 연구와 교육을 강화하려는 특단의 대책도, 기초학문 진흥과 국가적 어젠다 실현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비전도, 나아가 국민으로부터 따가운 지적을 받아온 국립대의 무사안일주의를 타파하려는 과감한 혁신을 위한 비책도 보이지 않는다. 대학다운 대학으로써 국립대를 향한 기대를 이제는 접어야 할까?

안상준 논설위원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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