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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이 산이라면 주은래는 물이고, 등소평은 길이다”
“모택동이 산이라면 주은래는 물이고, 등소평은 길이다”
  • 이중 前 숭실대
  • 승인 2006.08.26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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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중국산책12

중국 대학생들 앞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존경하는 인물로 모택동을 거론했다 해서 한때 국내에서 시비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모택동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수많은 인명피해를 주었고, 눈앞에 둔 통일을 결정적인 순간에 수포화시킨, 우리의 공적인데 어떻게 그를 존경할 수 있는가가 시비의 초점이었다. 당시 그런 뉴스를 보고 얼른 생각났던 것이 있다. 이왕이면, 모택동을 존경한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 살면서 오늘의 중국을 일으켜 세운 주은래, 등소평의 역사적 공적도 높이 평가한다는 말도 첨가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택동과 함께 등소평도 존경한다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단순히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하면 모택동 개인에 대한 인물평가가 되겠지만, 주은래, 등소평과 한데 묶으면 역사에 대한 평가 속에 모택동이란 존재가 안주할 수가 있다.

모택동은 확실하게 우뚝 솟은 존재임에는 틀림없지만, 주은래를 징검다리로 하여 등소평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이 없었더라면 그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쩌면 한 시대를 누볐던 위대한 반란자나 폭군쯤으로 폄훼되거나, 혁명을 위한 혁명, 파괴를 위한 파괴를 한 사람으로 모택동 자신과 함께 그 시대조차도 몽땅 부정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모택동과 그 시대에 대한 부정은 중국공산당에겐 치명적인 비극이다. “모택동이 산이라면 주은래는 물이고, 등소평은 길이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을 만든 것이 오늘의 중국이다”라는 나의 말은 그 세 사람을 한데 묶어야 오늘의 중국이 바로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경의 홍기출판사가 펴낸 ‘모택동을 통하여 리더십을 배운다(毛澤東學領導)’란 책이 있다. 劉峰과 路杰 두 사람의 공저다. 두 사람 다 중국에서는 알아주는 리더십 연구가들이다. 유봉과 노걸은 국가행정학원의 領導科學 교수로 있는 학위 소지자들이다. 중국에서는 리더십 연구가 학문의 한 장르로 정착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들 두 사람의 저서도 만만치 않다. ‘영도이론과 영도방법’, ‘영도과학 신론’, ‘決策學’은 유봉의 것이고, 노걸은 ‘21세기 영도의 새 추세’, ‘등소평 영도이론 학습요강’을 썼다.

일본인 竹內實은 모택동에 대해서 적지 않은 글을 썼다. 그의 글이 유봉과 노걸의 저서에 많이 인용되어 있는데 그의 글을 원문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긴 하다. 竹內實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4대 인물로 진시황과 공자, 모택동과 등소평을 꼽았다. 明君과 賢者, 수많은 영웅  호걸이 중국 역사 속에서 명멸했지만, 중국 역사의 발전방향과 개혁에 가장 이바지한 사람을 찾는다면 단연 위의 네 사람이라는 것이 竹內實의 주장이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천하를 이룩한 권력정치의 제1인자가 진시황이라면, 공자는 중국 문화와 정신세계를 개척한, 또 다른 제1인자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중국의 역사에서 권력정치와 정신세계를 절묘하게 배합시켰고, 양자 간의 균형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아주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를 훑어보면 하나의 특징적 줄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 漢族과 이민족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참담한 전쟁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만리장성도 알고 보면 줄기차게 이어진 비극적인 전쟁의 산물일 뿐이다. 공자라는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중화민족은 하나의 문화적 유기체로 응집될 수 없었음은 물론, 중국이란 땅덩어리는 여러 종족이 서로 죽이고 죽는 한낱 싸움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원 나라, 청나라는 몽골족과 만주족이 세운 나라이다. 한족은 자기 자신을 세계의 중심, 즉 中華라고 존대하면서, 그들을 둘러싼 동서남북 여러 민족을 모두 오랑캐로 치부했다. 南蠻, 北狄, 東夷, 西戎이라 하여 사방의 타 민족을 야만시하였다. 따지고 보면 중국의 역사란, 이러한 변방세력과 한족들과의 물고 물리는, 처절한 침략과 정복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중국은 원 나라, 청나라마저 자기네 王朝史 속에 녹여버렸지만, 몽골족 시각에서 보면, 원나라 역사는 어디까지나 중국대륙에 대한 몽골족 통치의 역사일 뿐이다. 원나라가 망하고 나서도 몽골족은 명나라, 청나라를 가리지 않고 계속 변방을 괴롭혔다. 한족의 처지에서는 괴로운 外侵이지만 몽골로서는 자기네 조상이 통치했던 광대한 땅을 되찾는 고토회복이었다. 오늘의 몽골은 외몽골(몽골공화국)과 내몽골(중국 영토)로 쪼개져 옛날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어디까지나 힘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 드라마를 보면, 중원을 회복하겠다는 몽골인들의 의지가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마저도 계속 괴롭혀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청나라 개국공신들은, 우리 만주족은 왜 중원을 다스릴 수 없는가, 다스리면 안 되는가, 한족만이 중원을 다스려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고 끊임없이 외쳐 왔던 것을 볼 수 있다. 청나라가 북경의 자금성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명 왕조 말기의 부패와 환관정치 등에 의한 자살골의 측면도 강하지만, 만주족의 원대한 비전과 꿈, 힘의 비축과 중원 통치를 위한 충분한 준비의 소산이기도 하다. 청나라가 명나라로 대체되는 것은 천하의 대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성들 편에서 생각한다면, 한족이 천하를 다스리느냐, 만주족이 중원을 평정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권이 더 백성을 위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청 왕조의 멸망과 더불어 청나라 지배계층이었던 만주족은 급진적으로 한족에 동화되어 버렸다. 현재 13억 중국 인구 중에 만주족은 2백만이니, 또는 그 미만이니 하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미미한 존재이다. 청 왕조 280여년의 역사에서 만주족과 한족은 권력과 문화를 주고받으며 서로 동화되어 갔다. 만주족 지배계층은 꾸준히 한문화에 길들여지면서 한족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었다. 康熙, 擁正, 乾隆帝 시대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한족들은 그들의 우수한 문화를 만주족에게 이식시켜가면서 자존심을 살릴 수 있었고, 권력에 대한 접근도 가능했다. 특히 만주족과 한족의 결혼을 허용한, 滿漢 통혼정책이 정착되지 않았더라면 청나라의 정치적 운명과, 중국대륙 내의 종족 분포는 오늘날 어떤 모습이었을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러한 중화문화권의 중심에 공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竹內實의 지론이다.

진시황은 제왕이고, 공자는 성현이다. 제왕은 다스리고 일하는 사람이고, 성현은 주의와 사상을 만들고 이를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竹內實이 보는 모택동은 어떤 존재일까. 이 두 가지 역할을 다 해낸 사람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모택동은, “권력을 장악하는 것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하나의 사상을 가진 인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나친 칭찬이거나 비약이라는, 역겨운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만, 설명을 더 들어보자.

모택동에게 있어서 제왕은 ‘일하는 사람(辦事之人)’이며, 성현은 ‘가르치는 사람(傳敎之人)’이다. 제왕에게는 功業은 있지만 자신의 노선과 이데올로기(주의)가 없다. 성현은 생각과 지혜를 개발하고 가르치긴 하지만 업과 공이 없다. 일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그 일은 오래 갈 수 없고, 가르치기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가르침이 널리 퍼질 수 없다. 모택동이 스스로 지향한 인간형은, 일하면서 가르치는 존재, “제왕과 스승을 겸비(君師合一)하고, 덕과 업을 한 데 구현(德業俱全)하는” 제3형의 인간형이라는 것이다.

모택동은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기 전, 청소년 시절부터 梁啓超 등의 개량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한때 교사를 지망했고, 실제로 장사에 있는 호남 제1사범학교를 다녔었다. 부속 소학교 교장도 잠시 지냈었다. 모택동은 공산혁명에 나서면서 소년시절의 꿈이었던 스승의 길을 접고 권력정치의 최고봉에 오르려고 필사의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평생을 통하여 ‘자치통감’을 13번이나 읽는 등 독서광으로 독자적으로 사상의 영역을 넓혀나갔던 것이다. 竹內實이 주목한 것이 바로 이런 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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