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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합리성’에 감춰진 ‘학문의 수렁’
‘제도적 합리성’에 감춰진 ‘학문의 수렁’
  • 오창은 중앙대
  • 승인 2006.08.2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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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단협.교수노조 주최 '학문정책과 연구윤리' 발제문

1. 치사율 87%, ‘기초학문 육성 사업’을 클릭하시겠습니까?

“수술 성공률이 13%야. 그럼 수술을 하냐, 안하냐?”
“글쎄, 상황에 따라 다르지.”
“그럼, 치사율이 87%야. 너 수술하겠니?”
“에이, 조삼모사도 아니고 뭐야. 치사율이 87%라면 안 할 것 같은데.”
“이번 기초연구과제 인문사회과학 분야 선정율이 13%래. 너희 팀도 신청했지? 살아남으면 그건 기적이다. 치사율이 87%란다야.”

2006년 6월 29일에 한국학술진흥재단 홈페이지에 ‘기초연구과제 신규 과제 선정 관련 안내’라는 공지사항이 게시되었다. 이 안내문에 몇몇 연구자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30일에 예정된 ‘기초학문육성 인문사회과학 분야 선정 결과’를 기다리는 연구자는 대략 7천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87%의 치사율에 포함되지 않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2~3개월 동안 과제신청을 위해 준비해 왔다는 팀부터, 최종 신청서 작성을 위해 3박 4일동안 합숙했다는 팀까지 대부분의 팀들이 ‘탈락’의 쓸개즙을 들이켜야 했다. 박사급 연구자들에게는 ‘기초학문육성 사업 선정 결과 발표’가 ‘학문 부르주아’냐 ‘학문 프롤레타리아트’냐의 갈림길이었다. 과제 선정에서 탈락한 박사급 연구자들은 1년 후를 기대하며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3.6%의 선정율에 대해서는 많은 학문후속세대 연구자들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13.6%는 총 699개의 신청과제 중 단지 95개만이 선정되었음을 알려주는 수치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86.4%의 치사율이었던 것이다.

2002년부터 시행된 ‘기초학문 육성 사업’은 북풍한설을 견디다 맞이 한 따뜻한 봄햇살 같았다. 그간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은 교수 사회에서만 중요 학술지원기관으로 알려져 있었을 뿐, 학문후속세대에게는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기관이었다. 그런데, 학진이 ‘기초학문의 인프라 구축’ ‘연구력 증진’ ‘학문후속세대의 발굴 육성’을 내걸고 ‘기초학문 육성 사업’을 시작하면서, 학문세계 전체에서 그 위상이 급격히 상승했다. 학진은 2002년 1월 26일, ‘지식한국 건설을 위한 기초학문육성 지원 사업 계획 공고’를 냈다. 여기서 인문학, 사회과학 및 기초과학에 총 1,212억을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그 사업이 지금까지 큰 호응을 얻으며 이어져 오고 있다. 학문후속세대와 학계는 이 사업을 ‘진경시대의 재도래’라고 지칭하며 열렬히 호응했다. 혹자는 ‘죽어가던 인문사회분야의 부활’이라고도 했고, 어떤 이는 ‘한국 사회가 이제야 학문연구자를 사람대접하기 시작했다’는 소박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인문사회분야에 종사하는 시간강사들은 ‘자본주의의 정글에 내팽개쳐진 새끼 사슴’들이었다. 학위를 받고 대학사회와 학문사회의 주변을 배회하다, 어떤 이는 대학원 시절을 후회하며 학문의 꿈을 접기도 하고, 어떤 이는 외국으로 떠났는가 하며,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있었다. 최고의 학력 자본을 획득하고도, 최하위층의 경제생활을 향유할 수밖에 벗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극심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학문 육성 사업’은 ‘방치에서 관리’로 나아가는 초입같은 의미를 지녔다. 이 사업에 대한 학진의 자체 평가도 고무적이었다. 학진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과 2003년 사이에만 총 5,511명의 박사급 연구자들이 ‘기초학문 육성 사업’의 혜택을 입었다. 학진이 발표한 「기초학문지원사업 성과집」(2004)에 따르면 ‘기초학문 육성 사업 1기’(2002~2003) 동안에 이 사업을 수혜를 받은 연구자들은 대단히 많다. 박사급 연구자 총5,511명이 안정적인 연구 지원의 혜택을 받았고, 대학원생 및 학부생 11,481명이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이제 5년이 흘렀고, ‘기초학문 육성 사업’의 경쟁률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학진이 한국 학문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비등점을 향해 돌진하듯 높아만 갔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학문후속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은 공원 벤치에 널부러져 있는 담배꽁초처럼 그 영역을 넓혀갔을 뿐이다. 이번 2006년 ‘기초학문육성분야’만 해도 그렇다. 이 사업은 박사학위 소지자를 전임연구인력으로 구성하고 석․박사과정생을 연구보조원으로 채움으로써, 학문후속세대를 통해 기초학문을 육성하겠다는 프로그램이다. 그런 의미에서 BK 21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BK 21은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육성’과 ‘우수 연구자 양성을 통한 대학 연구력 재고’ 등을 표방했다. POST BK21을 포함한 BK21 사업은 과학기술분야와 응용학문 분야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다. 따라서 BK21은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지원보다는 ‘국제적 비교우위’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노선을 걷고 있다. 이에 비해 ‘기초학문육성분야’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추진되는 ‘기초학문 인프라 구축’ 사업이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응용학문․산학협력의 비중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기초학문에 대한 관심은 또다시 소홀해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줄고 있고, 기초과학분야보다는 인문사회 분야의 신규 과제 선정율이 매년 낮아지고 있다. 학진의 이번 ‘기초학문 육성 지원’의 경우, 2004년에는 신규과제 선정율이 36%이었던 것이, 2005년에는 28.8%로 낮아졌고, 급기야 2006년에는 13.6%까지 곤두박질쳤다. 지원한 연구과제가 많아져서 상대적으로 선정율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예산이 삭감되면서 지원할 수 있는 과제의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원예산 배정 현황을 살펴보면, 2004년에는 806억여원, 2005년에는 661억여원, 2006년에는 483억여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BK 21사업이 POST BK 21로 이어지면서, 탄력을 받아가고 있는데 비해 ‘기초학문 육성사업’은 점점 왜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변화하는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환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학진을 중심으로 학문지원정책의 환경을 검토함으로써 ‘학문후속세대’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 글은 인문사회분야에 있는 학문후속세대의 입장에서 씌여졌다. 따라서, 학문지원정책 일반에 대한 보편적 논의이기보다는 학문후속세대의 입장에서 재구성된 ‘학진에 대한 비판적 논의’에 가깝다.

2. 자기수정 통해 갱신하는 ‘학진’

‘정당성 이론’은 현대 민주주의의 운영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전근대 사회에서 정당성은 권력을 지닌 자가 ‘자연적으로 획득한 권리’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대중이 ‘권력을 승인하는 방식’과 ‘정당성 획득 과정’이 연동되어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중의 권력에 대한 자발적 승인’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율적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호명되기도 한다. 민주적 참여에 의해 구성되는 정당성은 현대 민주주의 이상이다. 하지만 대중민주주의의 위기는 곳곳에서 함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시적 사례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학진’의 성장 과정은 ‘학문세계의 정당성 획득 과정’을 통해 이해할 수있을 듯하다. 학진은 이른바 학술지 평가가 시작된 1998년 경부터 끊임없이 제도적 합리성을 추구했다. 이 과정에서 물적 토대에 입각한 학술지원을 확대했고, 제도를 만들어냄으로써 학문세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합리적 이성에 기반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학진은 ‘제도적 합리성’을 통해 학문연구자들로부터 ‘권력을 점진적으로 위임’받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학진은 1998년 학술지 평가를 통해 학문세계에 충격을 가한 후, 2002년 기초학문 육성분야 지원부터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후, 제도적 합리성을 학문세계에 정착시킴으로써 학문연구자들을 학진 주위에 배치시키는 ‘권능’을 발휘했다. 그 위상이 소극적인 ‘학술연구 지원 조직’에서 적극적인 의미의 ‘학술연구기반 조성 조직’으로 변모한 것이다. 현재, 학진은 ‘한국 학문제도의 중추’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학진 성장의 배경에 대한 성찰적 반성이 필요하다. 필자는 다음 몇가지 요인이 ‘학진’의 성장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첫째, 한국 대학사회의 ‘후진성’은 학진의 급속한 성장을 촉진했다. 국가기관이 학문세계를 장악하면, 그 사회는 ‘비판적 학문’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된다. 하지만, 대학사회가 국가기관에 대해 반발할 뿐, 학문적 긴장 없이 대학의 일상에 안주하려고만 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1990년대 한국의 대학사회는 분지 속에 웅크리고 있는 폐쇄적 소도시의 형상이었다. 대학사회는 그곳에 접어들기는 힘들어도 일단 진입만 하면, 외풍 없이 스스로 자족할 수 있는 사회였다. 한 때, 교육부 관료들 사이에 “비행기 납치범과는 협상이 되어도 교수와는 말이 안 통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고 한다. 개혁의 바늘이 틈입할 수 없는 조직이 대학사회라는 비꼼이 이 말속에 들어있다.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학 사회를 중심으로 한 학문체계는 위계적이고, 권위적이고, 순혈주의적이었다. 대학 사회에서 학문 후속세대 양성은 도제식 교육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으며, 연구․교육․사회활동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둔감하면, 스스로 변화하려는 데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의 학문 연구 풍토가 대학 자체내의 반성을 통해 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학술지원조직인 학진의 자극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것은 한국 학문사회의 불행이다.

학진은 ‘평가와 지원을 밀접히 연계’시키면서 제도적 합리성을 구현했다. 학진은 대학 사회 속해 있는 연구자들과 학문후속세대의 연구활동을 지원하면서, 지속적으로 연구업적에 대한 평가시스템을 정착시키려 했다. 학술지 평가를 통해 ‘등재지․등재후보지’를 구분하고, 논문 게재편수를 기준으로 지원신청 자격을 심사했다. 따라서 매년 시행되는 다양한 학술지원 사업은 요건심사에서부터 ‘등재․등재후보지’에 발표한 논문의 양적 기준에 의존하게 되었다. 학진으로부터 지원받은 연구과제의 성과물도 ‘등재․등재후보지’에 게재하는 것이 원칙이 되다시피 했다. 학진은 상대적으로 많은 재원을 확보해 학문연구자를 지원하면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평가 시스템을 장악’함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해 나갔다. ‘학진’에 대한 학문연구자들의 비판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제도의 합리화 과정에서 ‘학진의 정당성’이 검증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학문연구자는 학진의 정당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본다. 제도의 합리성은 다양한 비판과 직면하면서 그 긴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학진이 학문지원 제도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노력이 많은 연구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학진은 스스로를 갱신시킴으로써 끊임없이 제도를 수정하고 합리화했다. 초기에 학진은 학술지원 시스템을 대학이라는 제도에 의존함으로써 체계화하려 했다. 모든 학술지원금의 집행은 대학의 주무부서를 통해 이뤄지도록 했으며, 대학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지원자체가 불가능하도록 했다. 연구 책임자는 대학 전임강사 이상이어야만 했고, 대학의 연구소와 연계를 맺지 않은 상태에서 기초학문 지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는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에 따른 학문지원정책이었다. 주인(principal)이 대리인(agency)에게 집행을 위임함으로써 직접적 지원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부가가치는 회득하는 방식이 ‘대리인 이론’에 입각한 학술지원 정책이다. 국가 차원에서 대리인은 학진이 되고, 학진 차원에서 대리인은 각 대학의 연구처가 되는 방식이다. 서로 연관되어 있는 이러한 체계는 국가가 직접 학문에 개입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없애면서도 정책의 방향을 관철시킬 수 있는 방편이다.

그런데, 학진은 대리인 이론에 입각해 있으면서도, 점차 그 수혜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갔다. 예를 들면 대학 전임강사만이 연구 책임자가 될 수 있었던 제도를 개선해 시간강사도 연구 책임자가 될 수 있도록 했고, 대학 연구소만이 연구단위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학회나 비제도권 연구단체도 포괄하는 방식으로 저변을 넓혀갔다. 또한 프로젝트 진행 방식도 개선했다. 연구계획서를 평가해 기대되는 효과를 예측해 학술지원금을 배분하는 방식에서, 미흡하기는 하지만 올해부터는 ‘우수논문 사후 지원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연구 성과의 사회적 확산을 위해 ‘저술 및 출판지원 사업’을 시작한 것도 고무적이다. 이는 학문적 성과를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까지 학진의 관심영역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학진이 기울인 노력도 높이 살 만하다. 패널 심사단을 꾸려 연구계획서와 일부 과제의 경우 면접심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종합심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등 제도를 합리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사 평가서를 지원자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은 타당하다. 이렇듯, 학진은 제도 개선 과정에서 연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적극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연구자들의 신뢰를 획득했다. 이는 학진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학진은 그간 연구자들의 신뢰에 기반해 제도를 개선해 왔고, 그 노력이 ‘학문제도 개혁’의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진의 정당성은 국가 기구로부터 위임받은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학문연구자들이 신뢰 속에서 자발적으로 위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학진에 기대를 걸고 있는 학문 연구자들은 많다.

셋째, 학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관이다. 학진의 세입은 대부분 정부위탁 사업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국정감사를 받고 있다. 학진이 그 영향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구와의 관계를 고려한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학진이 제도적 합리성을 통해 획득한 정당성은 학문연구자들의 참여와 비판 속에서 지속적으로 자기갱신을 해나가야만 유지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학진의 거대 권력화는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최근, 학진은 학문연구자들을 대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학진 홈페이지나 심사 결과서에서 “예산 부족으로 인해 과제 지원을 할 수 없음”이 첨언되거나, “예산 확보 노력에 연구자 여러분들도 동참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호소성 글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학진이 양적으로 팽창하게 된 때는 기초과학분야의 업무와 더불어 BK 21 사업과 NURI 사업을 함께 관장하면서부터다. 학진은 경영혁신을 통해 업무분장을 혁신하고, 기존의 33개 지원 사업을 18개로 단순화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학진이 과도하게 비대조직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허상만 학진 이사장은 “지금껏 학진은 연구지원만을 담당하는 기관의 인상이 강했는데, 앞으로는 학술정책의 방향을 수립하고, 연구방향을 선도하는 역할을 적극 모색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학진의 변화된 위상을 예고하는 발언으로 비춰진다.

제도를 만드는 주체는 자신이 만든 제도에 집착하는 순간 체계에 얽매이면서 보수화될 가능성이 있다. 학진은 정체되어 있던 대학 학문제도와 도제식 학문후속세대 양성 시스템에 문제제기를 하며, 제도적 합리성을 구현해 왔다. ‘상대적 진보성’을 학진이 구현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학진의 과대 권력화는 일방주의적 성격을 보이고 있다. 그 한 징후를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이 축소되고 있는 현실에서 읽어낼 수 있다. 학진은 최근 이른바 ‘연구자의 생애 주기에 맞춘 프로그램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전문 연구자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에 맞춰 학술지원프로그램을 합리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학진이 ‘기초학문 육성 지원’과 관련해 추진해 왔던 일련의 사업을 ‘연구자 생애주기’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한국 학문발전을 위해 주먹구구식 사업이 아닌 프로그램화된 사업을 펼치겠다는 취지는 공감이 가기도 한다. 그리고 분명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생애주기 프로그램’으로 인해 ‘학문후속세대 지원 프로그램’이 약화되고 있는 현실을 곳곳에서 목도하게 된다. 우선, 올 2006년에 ‘신진연구인력 장려금지원 프로그램’ 폐지되었다. 박사학위 논문 작성자를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이공계 석박사과정생을 대상으로 하는 ‘문제해결형 인력양성 지원’으로 대체되었다. ‘문제해결형 인력양성’ 사업은 산학협동을 위한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기초학문 지원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학문후속세대 지원과도 거리가 있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오직 박사학위자만 연구자로 인정하겠다는 학진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것으로, 학문연구자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즉, 대학원 사회의 변화 없이는 한국 학문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박사과정까지는 BK 21사업이나 기초학문지원사업의 연구보조원 신분으로 연구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박사과정생이 개별 연구자의 정체성을 갖고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제도적 보장을 학진이 없애 버린 것이라는 측면에서 제도의 후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전임 강사가 되기 전까지 시간강사로서 생활해야 하는 박사급 연구원의 지원 프로그램이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하게 된다. 이는 ‘생애주기 프로그램’의 영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내 박사후 과정 연구과제 선정율이 인문사회분야의 경우 18.7%이고, 비전임교원인 학술연구 교수의 선정율은 인문사회분야의 경우 23.4%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단 전임교원이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인문사회분야 신진교수 지원 선정율은 34.4%로 비교적 높은 선정율을 보이고 있다. 인문사회분야의 경우는 매우 심각한 수준인데, 이는 학진의 학술지원 경향이 제도권에 안착했을 경우 더욱 관대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2006년 기초학문지원사업의 선정율이 13.6%를 나타낸 것도 이러한 경향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학진은 거대 조직으로 권력화됨으로써 한국 학문제도 전체를 포괄하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으며, 실용학문 및 산학협동에 대한 지원은 강화되고 있다. 더불어 제도 내에서 제도를 확대 재생산하려 한다. 미미하기는 하지만 전임교원에 대한 지원 강화도 제도로서 학문세계에 개입함으로써 학진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학진은 제도밖에 있는 학문 후속세대나 보호학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학문 세계도 숲과 같아서 우수한 수종만 보호한다고 숲이 울창해 지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수종들이 함께 버무려져 공존할 때, 그 숲은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넘쳐난다.

그렇다면, 학진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평가시스템으로써의 ‘학진 등재․등재후보지 평가’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제 이 부분을 짚어 보기로 하자.

3. 학술지 평가, 학문세계에 무엇을 남겼나

교육부가 처음 ‘학술지 평가제 도입’을 거론한 시기가 1996년이었다. 학술지 평가를 학진이 관장하기로 하면서 1998년 상반기부터 국내 학술지 평가가 시작되었다. 학술지 평가는 ‘연구 성과를 정량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학술지의 질적 수준을 고양함과 동시에 학술연구업적 평가의 객관적 자료를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2006년 현재 학진 등재지는 691개이고, 등재후보지는 621개에 이른다. 1998년 하반기에 등재․등재후보지가 57개였는데, 꾸준히 양적 팽창을 해 지금은 1312개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학진의 학술지 평가는 초창기에는 형식요건을 중시하다, 최근에 패널심사를 통해 질적 평가 항목을 점차 강화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불어 학진은 기존의 양적 평가 개념에서 KCI(국내 학술지 인용 색인 정보)를 통해 학술지를 평가하려 하고 있다. 앞으로 이뤄질 KCI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학계에 만연해 있는 대학간 학문 카르텔은 또 다른 학벌 사회 조장 가능성을 노정하고 있다. 더불어 상호교차 인용과 같은 문제의 해결도 과제로 남아 있다.

연구업적의 평가를 계량화한 것은 학진의 학술지 평가가 미친 긍정적 효과다. 하지만, 그 속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현재 학술지 평가에서 수량화된 항목은 △논문명 및 저자부분 표기형태, △학술지의 정시 발행 여부, △연간 학술지 발간 횟수, △논문 게재율, △논문 투고자의 국내외 분포도, △논문 1편당 심사위원수, △논문초록 수록형태, △주제어 수록 형태, △편집위원 연구실적 및 전국성 등이다. 이 평가항목들을 채우기 위해 각급 학회가 들이는 공력은 만만치 않다. 학술지 평가가 학회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학술지 평가는 학문세계의 지형을 바꿔 놓은 대표적인 예이다. 각급 학회의 권위는 그 학회가 어떤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느냐 보다는, 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가 등재지냐 등재후보지냐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학술지 평가가 이뤄지는 시기에는 전담팀이 꾸려져 평가에 대비하고, 등재 후보지에 들지 못한 학회지는 사활을 걸고 등재후보지로 진입하기 위해 노력한다. 학진 학술지 평가가 미친 영향은 다양하다.

첫째, 교수들이 등재지나 등재후보지가 아니면 논문 발표를 꺼리는 상황이 보편화되었다. 학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규모 학회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반면, 소규모 학회는 명맥을 유지하기가 곤란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학진의 학술지 평가는 대부분의 항목이 거대 학회에서 발행한 학술지가 유리하도록 짜여져 있다. 따라서, 보호학문이나 간학문적 성격을 띤 신생학문 분야는 곤란을 겪고 있다. 이미 숱하게 지적된 바이지만, 문화연구나 여성학의 경우는 제도화된 학술지에 논문 게재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열심히 학문활동을 하고도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즉, 학문의 획일화 가능성이 곳곳에 포자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학술지가 대중과 괴리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학술지 평가가 있기 이전에는 몇몇 학술지들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형식 요건이 강화되면서 점차 학문영역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대중이 접근하기 힘든 체계로 학술지가 구성되기 시작했다. 학술지에 게재되는 글에 사용되는 용어는 점점 전문화되어 대중을 소외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맥락을 따라가지 못하는 타전공자조차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 글이 학술지에 범람하고 있다. 학술지가 전문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학술지가 대중매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학술지에 일괄적으로 학진이 요구하는 형식이 강요되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인문사회분야에서는 심각하다. 인문사회과학의 경우는 자연과학분야와 다르게 대중과 함께 했을 때, 학문 활동의 긍정적 효과가 발휘될 수 있다. 그런데도 학술지 평가는 이 부분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학술지가 개성적으로 편집되어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학문의 창조성은 형식의 창조성과도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각급 학회는 자체 역량과는 무관하게 연간 학회지 발간 횟수를 늘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학회 구성원들끼리만 공유하는 학회지가 계간지로 발간되어, 학회지 발간이 학회의 중요 업무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 심지어는 특정 시기에 투고논문 편수가 적어 곤란을 겪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학회의 상황에 따라 계간지로 학회지가 발간될 수도 있고, 연 1회 발행될 수도 있다. 그런데 발간 횟수를 평가항목에 포함시킨 것은 양적 성장만의 의식한 조치이다. 연간 학술지 발간 횟수는 평가 항목에서 과감히 제외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과도한 양적 팽창은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가 몇몇 학술지에서는 현실화되고 있기도 하다.

넷째, 게재율도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학회지에 따라서는 탈락률을 높이기 위해 허수의 투고논문이 집계에 포함되는 상황이 빈번하다. 심지어는 전임 교수가 아닌 학문후속세대의 논문들은 탈락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학회지 평가에 따라 학문후속세대의 학술지 논문 게재는 점점 힘들어 지고 있다. 논문 심사위원 배정 단계에서부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논문 게재 우선 순위에 밀려 ‘게재 불가 판정’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향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 학진의 학술지 평가 항목에 학문후속세대 논문 게재비율에 따라 가산점을 주는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는 드러나지 않는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역차별이기도 하다. 학회가 전임 교수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편집위원회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했을 때, 학문후속세대 논문 쿼터제는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
무엇보다 학술지 평가 방법이 질적 평가 위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강구되어야 하고, 더불어 질적 평가에서 기준에 못 미칠 경우에는 등재지․등재후보지에서 과감히 퇴출되는 사례도 빈번해야 한다. 퇴출 비율과 신규 진입 비율이 적정한 선에서 긴장할 때, 등재지와 등재후보지의 기능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4. 체계 밖의 학문을 위하여

아직까지 학진을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몇몇 연구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한 연구자는 필자에게 ‘학진에 위해가 가지 않도록 비판’해줄 것을 권고했다. 학진 사업과 예산의 확장이 결국 학문연구자의 자유로운 학문활동 보장과 연관되는 상황에서, 학진에 자기 동일시를 하는 학문후속세대들이 많다. 학진은 여전히 척박한 한국 대학사회의 학문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걸어볼 만한 ‘희망’이라는 것이다.

현재를 고려하면서도 미래를 고민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딜레마의 뿔’(honor of dilemma)을 이야기한 바 있다. ‘오늘을 위해 운동하면서 동시에 내일을 위한다’는 것이 바로 딜레마의 뿔이라고 한다. 학진을 비판하면서 한국 학문세계의 제도적 합리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진퇴양난의 길에 접어든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방주의는 위험하다. 학진만이 한국 학문제도 개혁의 유일한 길일 수도 없고, 길이어서도 안된다. 오직 하나의 길만 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그것이 바로 폭력이기에 잘못되었다. 그 한 예를 학진을 통해서 보게 된다. 학진이 국가영역에서 학술지원 시스템을 장악함으로써 오히려 대학 영역에서 ‘학술지원 시스템’은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각 대학의 연구지원처는 ‘학진 전담부서’를 편성했고, 학진 체계에 따라 학술지원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문후속세대 지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진을 위주로 대학 학문지원 제도 재편되면서, 각 대학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박사후 과정은 폐지되거나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학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구기금을 점차 확장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국가영역의 연구기금에만 의존하게 되면 대학은 자체의 연구인력을 확충하는데 소홀해 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분은 학진의 일방주의가 의도하지 않게 산출하는 부정적 효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에서 시급한 것은 '학술 문화의 전환'이다. 학문연구자들의 활동이 국가영역과 공공영역, 대학, 그리고 기업의 지원 속에서 보장될 수 있는 길을 만들 필요가 있다. 광범위한 기부 문화의 활성화를 통해 기업이 자발적으로 ‘학술연구재단’을 만들고, 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재고되는 문화환경이 아쉽다. 무엇보다 대학의 개혁 없이는 한국학문의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 대학 사회가 여전히 시간강사에 대한 착취에 기반해 교육을 운영하고, 박사학위를 받는 순간 무자비하게 대학사회에서 방출해 버리는 척박한 학술문화환경 속에서 ‘희망’을 찾기는 난망하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학문은 안정 속에서 창출된다고 할 수는 없다. 적절한 긴장이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학문활동을 자극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학문후속세대가 감내해야 하는 긴장은 여전히 살인적이다. 그래서 아직도 수 많은 학문후속세대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해외로 떠날 길을 모색하고 있으며, 학문의 길에 접어든 것에 대해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물론, 딜레마의 뿔은 한국사회와 학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연구자 자신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글은 학단협.교수노조 주최 '학문정책과 연구윤리'의 발제문 전문입니다(각주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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