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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학술대회] 인간복제·휴먼게놈 프로젝트 어떻게 볼 것인가(강남대 우원사상연구소 주최)
[과학학술대회] 인간복제·휴먼게놈 프로젝트 어떻게 볼 것인가(강남대 우원사상연구소 주최)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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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6:08:04
서양의 중세와 근대를 각각 지배한 종교와 과학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갈라선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종교는 과학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저주해왔고 과학은 종교의 迷夢을 경멸해왔다. 복제양 돌리가 탄생하고, 인간 유전자 지도 초안이 완성·발표된 이후 과학과 종교간의 갈등은 사회로 확장되고 있다.

종교와 과학의 갈등

생명복제에 대한 각계의 프리즘은 다양하게 분산된다. 지난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설교를 통해 재확인된 카톨릭의 논리란 “유성생식을 통한 임신만이 인간 영혼과 존엄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성생식인 인간복제를 용납할 수 없음은 당연한 귀결. 과학계는 표면상 인간복제를 반대하면서도 거스를 수 없다는 대세론을 펴고 있다. 정부는 생명공학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하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신학자들이 그간 소개된 인간복제문제의 선정적인 반대를 극복하고 차분한 논리로 대중의 ‘얄팍한’ 종교적 입장이 오히려 종교적이지 못함을 증명해, 종교계와 과학계 그리고 대중 모두에 계몽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지난달 25, 26일 강남대 우원사상연구소와 계간 ‘기독교사상’이 주최하고 미국 ‘신학과 자연과학 연구소‘(the Center for Theology and the Natural Sciences: CTNS)가 후원한 국제학술세미나 ‘인간복제·휴먼게놈 프로젝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발표된 내용은 지금까지 종교와 과학간의 반목을 무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이틀동안 계속된 학술대회 첫날은 낸시 하웰 미국 성바울신학교 교수의 ‘인간복제에 대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의 ‘온생명 안에서의 신의 섭리’가, 둘째날은 리차드 랜돌프 성바울신학교 교수의 ‘기독교 윤리와 과학간의 대화’, 최재천 서울대 교수(분자생물학)의 ‘진화적인 윤리와 삶의 의미’, 테드 피터스 CTNS 소장의 ‘복제의 충격과 신학의 반응’ 등이 발표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특히 주목을 끈 것은 피터스 소장의 발표였다. “복제는 인간생명의 고유성에 위배되는가?”라고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한 피터스 소장은 발표문을 통해 “복제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감전됐을 때 즉각 몸을 움츠리듯 하나의 ‘복제쇼크’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고 말한다. 갑작스런 충격에 일단 한 걸음 물러서 겁먹은 표정으로 안전한 길만을 찾고 있으면서 변명삼아 신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피터스 소장은 복제가 부당하게 금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논증에 사용된 용어들을 검증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개성’이나 ‘동일성’이 아니라 ‘존엄성’이며, 이는 더럽혀질 수는 있어도 복제에 의해 감소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관심은 복제로 인해 아이들의 ‘존엄성’에 미칠 수 있는 위험으로 모아진다. 복제로 인해 아이들이 상품으로 전락할 경우, 그들의 존엄성이 형편없이 더럽혀질 수 있다는 현실적인 위험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의 시나리오는 미구에 닥칠지도 모를 블랙코메디를 보여준다. “한 미래의 부부가 어떤 생식의료원의 대기실에서 특출한 DNA를 가진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그들이 로얄티를 지불하고 산 아기의 DNA 복제가 실패한다면 그들은 낙태할 것인가? 만약 아기가 태어나긴 하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아기는 공장으로 되돌려 보내질 것인가? 그리고 그 부모는 환불이나 할인을 요청할 것인가?”

현실의 부작용 해소가 관건

이번 학술대회의 기본명제처럼, 과거의 방식으로 잉태된 아기뿐만 아니라 복제된 아기에 대해서도 신은 사랑할 것이다. 그러므로 복제인간이 생식적인 기원으로 인해 인간과 차별을 받아서는 안됨을 말하는 피터스 소장의 주장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차악의 선택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의 질주를 막을 합리적 방식이라는 그의 입장을 종교계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결론은 피터스 소장의 표현처럼 빨간색도, 녹색도 아닌 노란 신호등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복제에 대해 조건 없이 찬성하지도 무조건 반대하지도 않으면서 현실에서 불거져 나오는 부작용들을 해소해 나가는 점진적인 해결방안이다.
종교가 과학에 가한 금지와 폭력의 역사를 상기한다면 과학에 대한 우려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종교의 입장은 지극한 성숙의 결과로 보인다. 독단의 옷을 벗으려는 신학의 움직임에, 과학이 어떻게 답할지는 이후까지 고민돼야 할 숙제이다.
<이옥진 기자>----------

 

‘신학과 자연과학연구소’(CTNS)는 어떤 곳인가

테드 피터스 소장이 좌장을 맡고 있는 ‘신학과 자연과학 연구소‘(이하 CTNS)는, 로버트 존 러셀 박사가 1981년 설립한 비영리단체로, 현대물리학·우주론·과학기술·환경연구·진화론·분자생물학과 기독교신학·윤리학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척시키고 있다.
CTNS에서는 매년 종교와 과학관련으로 탁월한 수업모델을 기획한 학자들을 선정한다. 1984년부터 시작된 이 ‘과학과 종교 교과과정 수상대회’는 교육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지향하는 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과, 과학과 종교에 관련된 효과적인 커리큘럼을 개발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됐다. 올해 선정된 83명의 학자에게는 각각 미화 1만불이 지원되는데, 수여자의 32%는 미국 이외의 파키스탄, 멕시코, 캐나다, 인도, 러시아, 한국 등의 국가에서 선정됐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감독한 피터스 소장의 말은 이러한 노력을 잘 보여준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종교관련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생산적이고 비판적인 ‘대화’를 열어두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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