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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학+사회 평등’ 종합 가능할까... ‘유전자 로또’ 화제
‘유전학+사회 평등’ 종합 가능할까... ‘유전자 로또’ 화제
  • 김재호
  • 승인 2023.04.09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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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유전자 로또: DNA가 사회적 평등에 중요한 이유』 캐스린 페이지 하든 지음 | 이동근 옮김 | 에코리브르 | 416쪽

유전자와 평등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태도

교육과 사회 불평등을 해석하면서 어떻게든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즉 유전자라는 로또가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것에 직면해, 이른바 좌파와 우파는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우파는 우생학이라는 흑역사를 극복해야 하고, 좌파는 지나치게 사회의 역할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차이를 부정해온 것을 극복해야 한다.

 

저자는 유전자의 차이를 전제로 주장을 펴나감으로써 언뜻 우파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세상을 더 평등하게 만들고자 하는 자유주의자다. 하든은 이 책의 목표가 “유전학과 평등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ㆍ우생학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골턴의 관찰부터 지능과 교육 정도를 다룬 현대 유전학 연구에 이르는 사람행동 유전학을 수십 년 동안 얽혀 있던 인종차별주의, 계급주의, 우생학 이데올로기로부터 떼어낼 수 있을까?
ㆍ우리가 새로운 종합을 그려낼 수 있을까?
ㆍ이 새로운 종합을 통해 평등이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평등을 달성할지 우리의 이해를 넓혀줄 수 있을까?

하지만 유전학이 사회 평등이라는 목표에 다가가는 데 유용할 것이란 주장은 회의론에 자주 부딪힌다. 우생학이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은 크게 두드러진다. 반면, 유전학과 사회 불평등을 연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빈약해 보인다. 유전학과 평등주의를 합쳐 새로운 종합을 이룰 수 있다고 해도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우생학이 미국에 남긴 어두운 유산을 생각해볼 때, 유전학 연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낙관적이고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위험과 이익을 고려할 때 놓치고 지나친 것이 있다. 사람의 유전적 차이가 사회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원리를 학계와 일반 대중이 대부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건 위험하다. 이제 더는 이런 상황을 이어나가선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유전학 연구의 황금기에 살고 있다. 수백만 명에게서 유전자 데이터를 쉽게 수집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갖추었고, 이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새로운 통계 방법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유전 지식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전학 연구가 상아탑을 떠나 대중에게 전달되는 만큼 과학자와 대중은 유전학 연구가 사람의 정체성과 평등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는 매우 극단적이고 혐오에 찬 목소리에 밀려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에릭 터크하이머(Eric Turkheimer), 딕 니스벳(Dick Nisbett)과 함께 아래와 같이 경고한다.

진보적인 정치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유전자 결정론과 과학적으로 거짓된 인종주의적 견해를 거부하면서 사람 능력에 대한 과학과 사람행동

유전자는 경제부터 교육 등 사회 전반적으로 평등의 문제에 어떻게 기여할까? 혹은 극복할까? 사진=픽사베이

유전학에 관여할 책임을 포기한다면, 그 분야는 그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행동유전학부터 반우생학적 과학까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사회 평등을 달성하려면 사람행동유전학이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구성한다.

전반부에서는 사회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 유전학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여러 반론이 뒤따르긴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행동유전학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세부 연구 방법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무엇을 달성했는지 알려면 과학 철학도 탐구해야 한다.

2장에서는 유전자 재조합, 다유전자 유전, 정규 분포 같은 생명과학 및 통계학 개념을 제시하면서 유전자 로또라는 은유를 더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2장과 책 전반에 걸쳐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이나 다른 생식 기술을 통한 선택이 아니라, 유전자의 대물림이라는 자연 로또를 통한 우연으로 일어나는 사람들의 유전적 차이에 초점을 맞춘다.

3장에서는 사람들의 유전적 차이가 인생 결과의 차이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검사하는 보편적인 방법을 설명하며, 그중 특히 전체 유전체 연관 연구와 다유전자 지수 연구를 살펴본다. 4장에서는 전체 유전체 연관 연구 결과가 왜 집단 차이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는지, 특히 왜 인종 집단 사이에서 차이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본다. ‘선천적’ 인종 차이를 다룬 책과 기사가 끊임없이 쏟아지지만, 이런 글은 아무 의미 없는 소음과 분노일 뿐이다. 오히려 쌍둥이 연구와 DNA 측정 연구 등 사회 불평등을 다룬 유전학 연구는 최근 유전 계통이 완전히 유럽계이면서 순전히 백인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간 개인 차이를 이해하는 데 거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범위가 좁아지면 책에서 설명하는 모든 실증적 결과에 근본적인 자격이 부여된다. 현재 사회와 행동 표현형을 다루는 유전학 연구는 유럽계 유전 계통을 가진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런 유전학 연구로는 인종과 민족 집단 사이에 나타나는 사회 불평등을 과학적으로 유의미하게 해석하지 못한다. 그러나 왜 사람들이 인종에 유전적 차이가 있냐는 과학적으로 무의미한 질문으로 몇 번이고 되돌아가는지 생각해보면, 어떻게 유전학을 사용해 변화를 일으키려는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게 했는지가 드러난다. 이 부분은 4장에서 설명한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인종 집단 안이나 인종 집단 사이에서 유전자가 어떻게 분포하는지와 상관없이, 유전으로 사회적 책임을 면하려는 것은 벗어 던져야만 하는 잘못된 구실이다.

5장에서는 전체 유전체 연관 연구와 다유전자 지수 연구 결과에 관한 근본 질문을 다룬다. “이 연구가 유전적인 원인을 알려주는가?”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한 발 물러선 뒤 좀더 보편적인 질문, 즉 “원인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짚어본다. 원인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원인이 알려주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짚은 다음, 6장에서는 원인이란 개념을 전체 유전체 연관 연구와 유전가능성 연구 결과를 이해하는 데 적용한다. 여기서도 유전자가 교육 정도같이 인생의 중대한 결과의 원인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증거를 검토한다. 7장에서는 유전자와 교육을 잇는 메커니즘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을 설명하며 책의 전반부를 마무리한다.

후반부에서는 사회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전학 지식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유전적 차이가 선천적으로 우월하고 열등한 인간 계층의 토대를 이룬다는 우생학 공식을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8장과 9장에서는 사람들의 유전적 차이를 이해할 때 사회 정책과 개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10장에서는 사람들이 인간 행동의 유전적 원인에 관한 정보를 거부하는 이유를 살펴보고, 인생에서 유전자를 운의 근원이라고 할 때 교육과 경제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쌓이는 비난을 실제로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고찰한다. 11장에서는 왜 열등함과 우월함이란 관념을 긁어내는 것이 유전의 영향을 받는 지능 검사 점수와 교육 결과에서 특히 더 어려운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심리적 측면을 다룬 유전학 연구와 청각 장애나 자폐 등 다른 특성을 다룬 유전학 연구를 각각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비교한다. 마지막으로 12장에서는 반우생학적 과학과 정책을 향한 다섯 가지 원칙을 설명한다.

책 전반에 걸쳐 좌파 쪽으로 기운 저자의 정치 성향을 숨기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독자가 이 책에서 제안하는 해결책에 격렬하게 반대하더라도, 여기서 고민하는 질문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넘어가길 간절히 바란다. 보수적인 독자라면 고대 그리스, 《성경》의 저자, 건국의 아버지들도 정의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유전학 지식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대에 어떻게우리는 “정의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것이 좌우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믿는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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