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4:20 (토)
[깊이읽기]『주체와 욕망』(최봉영 지음, 사계절 刊)
[깊이읽기]『주체와 욕망』(최봉영 지음, 사계절 刊)
  • 유초하 / 충북대·철학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8-13 15:27:07

나의 참모습을 그려내기가 어려운 시절이다. 한국인은 누구인가, 그 속에서 나는 또 누구인가? 우리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이런저런 도구틀을 원용한다. 문화·사상·철학의 다양한 형태와 유형을 준거로 삼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겠다. 그러나 지금껏 제시된 적지 않은 논의들 가운데 포괄적으로 썩 성공적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현실에서 최봉영의 ‘주체와 욕망’은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다.

최봉영은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의 모습을 또렷이 확인할 수 있는 틀을 새롭게 그려 보여준다. 그는 우선 인간을 몸과 마음이라고 불리는 두 측면의 연속적 통합으로 이루어진 분리불가능의 자연적 생명체로서 다양한 수준과 방식의 관계맺기를 통해 문화적 욕망을 일구어내고 이루어나가는 주체로 상정한다. 몸에 뿌리하고 마음에 자리잡은 욕망을 실현해나가는 인간의 삶은 곧 대상사물이나 자연적·사회적 상황 및 상호주체적=상호객체적 타자들과의 관계맺음이다. 몸과 마음의 여러 측면을 관찰·분석·통합함으로써 최봉영은 개인과 사회의 인격적-문화적 특성을 규정하는 틀을 매우 유효하게 구축해나간다. 그가 꼬치고치 캐들어가는 문제들은 주체, 욕망, 관계맺기의 세 가지다. 몸과 마음을 통괄하는 주체로서 인간이 지닌 요소·구조·유형,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요구와 지향의 위치·속성·수준, 인간의 삶의 행동으로서의 관계맺기의 대상·방식·준거·역사 등의 주제들을 최봉영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관시키고 그 속에서 구체적인 의미들을 끄집어내고 밝혀낸다. 특히, 속담을 포함한 우리말의 관행에 스며있는 바닥의미(residue)를 통해 인간과 문화의 현실적 실상을 밝히는 방식은 재미와 설득력을 함께 담아낸다.

복잡하고 세밀한 하부구도를 포괄하는 최봉영식 작업의 요체는 그의 겸손어린 또는 적확지향의 표현대로 “마음을 움직이는 주체와 마음에 자리잡은 욕망을 화두로 삼아 마음에 대한 개념의 지도를 그려내”는 데 있다. 내가 보기에 그의 작품은 마음에 중심을 둔 방법상의 특성과는 달리 내용적으로는 몸과 마음의 통합적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개념의 지도를 그려내는 작업이다. 인간을 총체적이면서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참신한 시도라는 말이다.

최봉영의 작업은 물론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다층적-다면적 이론틀의 한 적용사례로 조선시대 유교문화에 담긴 세계관과 가치체계를 구체적으로 분석·설명해보인 다음, 근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지녀온 삶의 태도 또는 한국문화에 대해 포괄적 조망의 수준에서 그 특성을 밝힌다. 자본주의적 욕망 부풀리기에 끌려가면서 발생한 주체왜축의 문제에 대한 현실성·타당성 있는 가시적 처방이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과욕은 생산적이 아니다. 오늘과 내일의 한국인이 새롭게 일구고 펼쳐낼 문화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고 그 실현에 동참하는 일은 통합학문을 지향하는 우리 모두의 과업일 테니까.

방법의 측면에서도 흠을 찾자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문화의 살아 움직이는 주제들에 대한 이론적 정형화가 초래한 약간일 무리일 터이다. 서로 관련되는 용어들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어울리지 못하는 예들이 산견된다. 또 다양한 이론틀 사이의 통합적 정합성에 대한 더욱 치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예컨대, 인간의 내부구조에서는 ‘생각하는 마음’이 최상위를 점유한다고 기술되는 데 비해 욕망의 유형에서는 ‘인륜욕’=사회성지향이 ‘초월욕’=절대성지향보다 중요한 통합구심으로 작용한다고 암시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원천적 발상에까지 미치는 반성적 성찰이 필요할 듯하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문화에 대한 심층적, 구제적 이해를 향한 의욕 넘치는 학문적 시도가 ‘춤추는 의식’의 세대를 위시한 오늘의 담론주체들에게 읽히는 문법으로 제시되었다는 사실이다. 동북아와 유럽-미국 사이의 공간적 차이를 전통과 근현대 사이의 시간적 차이와 일치시키거나 대응시키기는 굴욕적 자기비하의 세태에 거의 외로운 외침을 짜내온 사람들에게 최봉영의 노고는 떳떳한 공동체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역사적 과제에의 도전으로 상찬돼 마땅하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