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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위기, 라이즈가 해법인가?
대학의 위기, 라이즈가 해법인가?
  • 김경화
  • 승인 2023.04.03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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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 본부 앞은 벚꽃 길로 유명한 편이다. 특히 봄바람이 불어 꽃잎이 휘날리기라도 하면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것을 보는 대학 관계자들 대부분은 마음이 편치 않다. ‘벚꽃 엔딩’은 그 아름다운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로 많은 사람들이 매년 봄에 벚꽃이 필 때쯤이면 가장 많이 즐겨 듣는 노래이다.

그런데 그 ‘벚꽃 엔딩’이 이제는 백척간두에 몰린 ‘지역 대학의 위기’를 너무나도 처절하게 상징하는 상용구가 된 지 오래다.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제 예측이 아니라 바로 지금 대학이 당면한 현실이고, 그 상황도 더욱 악화되어 이제는 벚꽃피는 순서가 아니라 전국의 대학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인구 동향에 따르면 2022년 출생아 수는 24만 9,0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출생아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그와 함께 인구 고령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자는 늘면서 인구 자연 감소가 계속되고 있다. 바야흐로 대학소멸, 지역소멸을 넘어 ‘국가소멸’의 단계로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의 입장에서 볼 때 2024년도 대학 입학정원이 일반대학 34만 9,124명(한국대학교육협의회 추계), 전문대학 17만 3,978명(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추계)에 달하기 때문에 이 정원이 지속된다면 20년 후의 대학모집정원 중 수도권만 채우고 나면 더 이상의 입학자원이 없다는 사실은 곧 다가올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대학의 위기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차별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라는 점이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의 충격이 수도권보다 비수도권, 일반대학보다 전문대학, 국립대학보다 사립대학에 집중적으로 가해진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지역 균형발전은 과거 정부들에서도 주요 단골 국정과제였다. 그러나 균형발전의 핵심으로 교육과 대학을 내세우고 강력하게 시행하고자 하는 것은 현 정부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윤석열 정부는 교육분야 국정과제로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내세우고 지역·대학 간 연계·협력으로 지역인재 육성·지역발전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한다.

그것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이고, 3월초 발표한 7개 라이즈 시범지역 선정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그동안 교육부가 주도적으로 평가와 지원을 통해 대학을 육성해 왔지만, 앞으로는 라이즈 시스템에서 지방정부 주도의 대학 육성과 발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라이즈 시스템의 정착을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첫째, 지방정부의 교육과 대학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과 전문성 확보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지방정부들은 지역에 대기업을 유치하여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집중적으로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대학이 지역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지방정부는 국가예산 수십조 원이 지원되는 만큼 지방정부 주도로 대학발전과 지역사회발전을 이끌어야 하고, 교육분야의 전문성도 빠른 시일 내에 갖추도록 힘써야 한다.

특히 라이즈 사업은 지방정부의 혁신을 전제로 하여 교육부의 권한과 재원을 대폭 이양하고 지원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따라서 지자체의 노력이 부족하여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지역대학의 위기가 발생하면 중앙정부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감소되는 반면에 지방정부의 책임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많은 교육전문가들의 우려처럼 “지방정부에 책임 떠넘기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대학의 설립목적이나 교육목표에 맞도록 대학을 적절한 비율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법 제28조는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동법 제47조는 “‘전문대학’은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정부는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이 수행하는 역할과 국가의 인력 양성 목표 등을 고려해서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적정한 비율을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경제 성장을 위한 특정 산업 분야에서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경우 전문대학의 비율을 유지하거나 늘릴 필요가 있다. 인력부족의 해소책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영입도 단기적으로 필요할 수 있지만, 장기적 측면에서 내국인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더 유용할 것이다.  

셋째,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한 산업인력양성계획을 통해 효율적이고 타당한 ‘정원총량제’를 실시해야 한다. 시장 논리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다. 규모가 큰 대학을 포함한 전체 대학의 정원을 감축하고, 전문대학과 지방·소규모 대학의 입학정원을 늘여야 한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9년까지 국립대를 9개 대학으로 통폐합하고 서울지역 대규모 대학의 입학정원을 10% 이상 감축한 적이 있다. 

넷째, 향후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대학과 그 구성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제책으로 적극적인 고등교육재정 확대가 필요하다. 대학에 대한 지원 여부가 결정되는 ‘기관평가인증’과 ‘경영위기대학 지정방안’을 시행할 때도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면 경영위기 대학 지정시에 수도권과 비수도권 편차가 큰 지표인 ‘신입생 미충원율’을 여러 지표에 핵심적으로 반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대학의 예상운영 손실률과 예상운영 손실보전수준을 판단하고, 사립학교법 제32조의 4에서 이월금 최소화에 노력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교육환경 개선을 외면하고 미사용 차기이월자금과 적립금을 많이 축적한 대학이 유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은 기존의 교육부 정책과도 상치된다.

혹시라도 교육부가 극소수 대학만 남기고 대다수 대학을 폐교의 위기로 내모는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의혹을 잠재우지 못하면 교육 백년대계가 그 결실을 거두기 어렵다.   

대통령과 정부, 국회 등 정치권과 지역사회는 대학이 자율적·지속적 혁신을 시도하도록 최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전문가, 시민과 학부모, 학생 등이 포함된 민의의 전당으로서 ‘교육혁신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상설적이고 접근이 편리한 소통공간에서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학교육 개혁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기 위해 담대한 마음으로 논의와 타협을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교육개혁방안을 시행하는데 충무공 이순신의 말씀을 되새길 것을 제언하고 싶다.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현 정부가 졸속이나 소통부재라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나서 교육대계를 성공적으로 실행하는 길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는데 있다.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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