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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 양성의 걸림돌
학문후속세대 양성의 걸림돌
  • 이강재
  • 승인 2023.04.03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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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강재 논설위원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강재 논설위원

지난 3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 학술지원사업 신청서 접수가 마감될 즈음, 서울의 한 대형 사립대에 소동이 있었다. 대학에서 학문후속세대 사업 중 학술연구교수 B유형(1년 2천만 원 지원)의 신청서 접수를 거부한 것이다. 비전임 연구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대학이 접수 마감 후에야 저간의 사정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작년에 유사한 일이 있었던 또 다른 대형 사립대 두 곳에 비하면 잘 마무리된 편이다. 이 두 대학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바뀌지 않았다. 

학술연구교수 B유형은 과제관리비인 간접비가 1백만 원으로 소액이다. 연구 관리와 결과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가 짊어질 부담을 생각하면 대학으로서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은 대학을 거치지 않아도 신청서를 받아주고 이를 외부의 다른 기관에 위탁관리한다. 어느 대학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연구자를 위한 것이다.

대학이 과제 관리를 포기해버리면 연구자는 대학의 연구인프라를 이용할 수 없다. 향후 간접비를 높이는 등의 실효적인 조처가 필요할 것이다. 대학이 학문후속세대의 양성이라는 중요한 기능보다 재정적인 수익에만 매달리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대한 일부 대학 당국과 교수들의 인식은 실망스럽다. 5년 장기간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학술연구교수 A유형에 선정되어 대학이 과제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 연구자는 대학의 연구원으로 임용한다. 이때에도 강의에 따른 강의료를 제대로 주지 않으려는 사례가 있다. 대학 연구원의 시간강의료 기준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대학에서 직접 급여를 주는 연구원이 아닌 국가의 연구지원사업에서 급여성 연구비를 받은 경우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연구자 급여의 착취에 해당한다.

대학원 수료 후에 학교에 내야 하는 수료등록금(혹은 연구생등록금)에도 역시 비슷한 문제가 있다. 대학 등록금과 달리 통제도 받지 않고 학교에서 임의로 책정하여 학문후속세대에게 부과한다. 적은 곳은 학기당 10여만 원에 불과하지만 많은 곳은 거의 1백만 원에 육박한다. 지도교수가 받은 연구비의 연구보조원으로 등록하려면 반드시 수료등록금을 내야 한다. 대학원생이 월 30여만 원 연구보조원 수당을 받기 위해 한 학기 1백만 원을 부담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연구소지원사업 등의 집단연구에서 벌어지는 연구업적 약탈도 걱정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반화된 ‘교신저자’라는 이름을 악용하여 연구책임자인 전임교수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채 비전임 박사의 논문에 이름을 올린다. 이때 전임교수는 자신의 업적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만, 비전임 박사는 이 논문을 자신의 대표 업적으로 올리기 어려워지고, 결국 대학의 교수 채용이나 개인의 연구지원사업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부의 사례지만, 이것은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다. 학문후속세대는 긍극적으로 전임교수와 함께 연구를 해나가는 동반자이며, 우리의 미래를 혁신할 수 있는 연구자이다. 전임교수들이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대학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강재 논설위원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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