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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책세상문고·우리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책들의 풍경] ‘책세상문고·우리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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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당대성을 향해 쏘아올린 무지개
‘문고’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고 해서 다 같은 ‘문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고 시리즈가 있다느니 하면서 영국의 ‘펭귄북스’, 프랑스의 ‘끄세주’, 일본의 ‘이와나미’를 적시하는 것도 사실은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책세상이 내놓고 있는 ‘책세상문고·우리시대’를 두고 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문고본의 화려한 부활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시끌벅적한 일밖에 되지 않는다. 책이란 세상의 뭇 독자제현과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어서, 있는지 없는지 알게 모르게 피가 되고 살이되어 그 영혼과 더불어 성숙하면 될 터, 알록달록한 색깔로 덧칠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우리시대’, 당대성을 향해 쏘아올린 무지개

‘한국의 정체성’(탁석산)을 시작으로 ‘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김미경) 스무 권까지가 선보인 이 ‘문고·우리시대’의 무게중심은 ‘우리시대’이다. 논점이랄까, 화두가 ‘우리시대’라는 당대성이고 보니 책들의 스펙트럼 역시 이 당대성을 향해서 무지개를 쏘아올리는 형국이다.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전재호), ‘전자민주주의가 오고 있는가’(박동진), ‘우리시대의 북한철학’(선우현), ‘멋진 통일운동 신나는 평화운동’(김창수),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배식한), ‘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구춘권), ‘나, 아바타 그리고 가상세계’(정기도) 등과 같은 책들은 분명 우리시대의 굵직한 논점과 변화지점을 읽게 해준다. 이들 사이사이에 흥미로운 미시사가 틈입해있다. ‘악기로 본 삼국시대 음악문화’(한흥섭), ‘우리 역사의 여왕들’(조범환), ‘중국의 고리대금’(이화승),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조한욱) 등이 당대성의 시간여행을 권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정면에서 논쟁을 밀고 나가는, 틀림없이 논쟁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국의 주체성’(탁석산), ‘철학과 문학비평, 그 비판적 대화’(김영건)의 말건네는 방식이다.
‘한국의 주체성’에서 탁석산은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들을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져보자”고 문제를 던졌다. 그의 논의는 다소 투박하며, 아슬아슬하다. 예컨대 주체성을 ‘정신이나 마음의 문제’가 아닌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핵무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대목이 그렇다. 모든 것을 정신적인 문제로 보는 시각은 자기반성에 이르게 되며, 이것은 정신세계를 절대화하여 물리적 힘을 무시하게 만들기 때문에 언제나 강대국이 원하는 약소국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의 연장선에서 그는 ‘주체적으로 사는 길’을 제시한다.
한글 전용, 국가기반시설보호, 그리고 할말을 하는 당당함이 그렇다. “한국어 표기의 난립으로 인한 혼란은 곧 우리의 정체성과 주체성 모두에 혼란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 한다”면서 ‘한글 철자만으로 사전을 만들 것’을 주장한다. 할말을 하는 당당함이란, “환경 오염과 같은 선진국이 야기한 문제의 책임을 그들에게 분명히 따지고, 우리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자”는 식이다.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이 책의 논쟁적 미덕은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읽기에 나타난 놀랍도록 무서운 ‘서평적 태도’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야무진 통박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것이 절정에 이른 곳이 바로 이 부분이다. 예컨대 ‘주체, 외세, 이념’(남경희, 1995)에 대해 “철학자가 얼마나 현실을 관념적으로 파악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평가한 것이나, ‘이땅에서 철학하기’(우리사상연구소편, 1999)를 읽어나가면서 책에 실린 이기상의 한 논문을 가리켜 “대체로 겉멋이 잔뜩 든 이 논문은 논증이 없으며 문제의식이 희박하다. 이기상은 ‘이 땅’이 어느 땅인지를 아직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평한 대목이나, ‘실사구시의 한국학’(임형택, 2000)을 가리켜 “논증도 없이 결론에 가서 불쑥 자신의 주장을 내놓고는 글을 마감하곤 한다. 따라서 독자는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양비론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무슨 주장을 하려는지 파악하기 힘들다.”고 논박한 부분 등은 자기 위안적인 주례 서평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쓴소리’에 틀림없다.

‘쓴소리’라는 점에서는 ‘철학과 문학비평, 그 비판적 대화’ 역시 같다. 책 제목 그대로 정공법을 취하고 있는 저자 김영건은 문학연구자들의 철학 수용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작 그의 의도가 가닿고자 하는 곳은 철학과 문학의 ‘친근한 만남’에 있다.

그가 이환, 김윤식, 김욱동, 김영민, 김우창 등의 비평가, 철학자를 겨냥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 대목만 들여다보자. 비트겐슈타인과 가라타니 고진에게 기대고 있는 김윤식이 “대화란 언어 규칙이 다른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서로 필사적으로 덤벼야 하는 것, 비대칭적인 구조이지요”라고 말했을 때, 이 생각은 ‘오히려 철저하게 반비트겐슈타인적’이라는 것. 그는 비트겐슈타인을 빌어, ‘언어 규칙이 다른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은 불가능할뿐만 아니라, 바로 이것이 ‘독백’ 더 정확하게는 ‘헛소리’가 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다시한번 철학을 두고 개념적 구분의 정당성을 추구하면서 더욱 엄밀한 개념적 구분을 시도하는 것임을 확인한 셈이다.

‘할 말’만 당당하게 하는 40대 필자들

‘문고·우리시대’가 일관되게 이와 같은 ‘쓴소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시대’가 논쟁을 상실한, 논쟁에 무력한, 그래서 자조적이며 자기 위안적인 학문으로 좁아지고, 굽혀지고 있는 시대임을 볼 때, 이 ‘쓴소리’들은 입에 쓴 약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열린 대화를 통해, 그야말로 겸허하고 겸손한 논쟁의 성찬을 통해 조율될 필요가 있다. ‘우리시대’ 시리즈에 참여한 필자들이 대개 1950년대 후반 출생한 젊은 연구자들이라는 점에서 ‘할 말’만 당당하게 한 자세와 태도도 값지다.

주변적인 것이긴 하지만 ‘문고·우리시대’의 책값이 설렁탕 한그릇 값에서 백원이 빠지는 3천9백원으로 책정된 사실도 반갑다. 출판사로서는 크게 남지 않겠지만, 150쪽 남짓한 크기는 호주머니에만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탐구하고 제대로 살아나가려는 사람들의 양식에도 알맞은 것 같다.

<최익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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