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터뷰]『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 (소명출판 刊),펴낸 이진경 서울대 강사
[저자인터뷰]『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 (소명출판 刊),펴낸 이진경 서울대 강사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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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5:19:54
공간은 사람을 설명해준다. 아니, 미디어가 인간 신체의 확장이라는 맥루한의 논리를 베끼자면 공간은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연장이다. 최근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을 출간한 이진경 서울대 강사(사회학)를 만나러 가면서 일었던 호기심이란 저자의 연구공간이 그를 어떻게 설명해줄까 하는 것. 연구공간 ‘너머’는, 조금은 칙칙하고 어두운 곳일 거라는 상상과는 무관하게 바깥에서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으로 돼 있었다. 약간은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마치 집인 양 스스럼없었던 것이다. 벌써 첫 대면에서 조그만 파격들을 겪으며 당황하는 사이, 저자 이진경은 ‘공간적 배치가 주는 기계적 효과’, 즉 ‘공간-기계’를 말했다. 그는 공간에서 의미를 찾고 무언가를 해석해내려던 의도에 일침을 가하고 있었다.

삶의 방식 규정하는 공간배치

“기계적이라고 할 때 불어의 ‘마슈닉’은 프로그래밍된 것의 결과가 도출된다는 기계론적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공간이 사람들의 행로를 결정하고 특정한 만남을 반복하게 하거나 절단시킨다는 것이죠. 가령, 관공서의 ‘문’은 어떤 사람들의 흐름은 절단해버리지요. 이처럼 어떤 실천을 반복하게 하는 조건인 공간이 반복되는 삶의 방식 사유를 만들어내고 이윽고는 특정한 효과를 반복해서 생성하게 되지요.” 여기서 근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자신 있게 ‘내 집’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을 저자는 앞질러 논박했다. 뮐루즈의 노동자 주택단지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 아파트식 집들은 선술집으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발길을 집으로 돌리기 위해 지어졌지요. ‘가난한 자들의 놀이터’라는 거리에서 노동자들을 몰아내려 공공위생이라는 관념을 입법화한 이들 역시 바로 프랑스의 박애주의자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집에는 당연히 이웃간의 교류와 사귐을 위한 ‘사회적 공간’ 대신 가족만의 ‘사적 공간’이 많을 수밖에.

우리는 흔히 혼자만의 공간을 사회로부터 격리된 ‘내밀한 공간’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는, 우리들의 집에 대한 감각, 즉 집은 의당 ‘스위트홈’이며 방은 나만의 내밀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시대정신의 산물이라 말한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감각은 주거공간과 함께 움직입니다. ‘비뚤어졌다’는 상태를 불편해하는 인간의 감각이 기하학적인 ‘올바름’이라는 정형적인 세계와 共進化하듯, 공적인 공간을 불편해하는 감각이란 19세기 이후의 주거공간이 탄생시킨 것입니다. 대개 이런 감각은 불행한 귀착점으로 치닫게 되지요. 프라이버시 보장이 철저한 이른바 선진국의 의과대 과목 가운데 정신과가 인기라는 사실은, ‘외롭고 불행한 개인’들을 양산하는 시대의 지표로 충분할 터입니다.”

사적 주거공간은 19세기의 산물

근대적 주거공간이 가속화시킨 가족주의야말로 타락한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엔진이라고 보는 저자에게, 자칫 사적 공간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스스로 투박한 이해를 입증하는 셈이 된다. 그가 문제삼는 것이란 주거공간을 사적인 공간으로 낙인찍게 만든 삶의 형식들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카프카가 ‘심판’에서 그려냈던 방을 주목한다. “근대의 방들은 기능에 따라 분화 정의돼 있었고, 그 경계선들은 고정돼 있다고 생각되었죠. 그러나 ‘심판’에서는 재판정에서 섹스가 벌어져 첫 공판이 중단돼 버리고 다음 방에서 다시 반복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방’들은 인접해 있는 욕망들이 얼마든지 변이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방을 분화시키려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그것을 고정시키려하는 의도는 인간의 욕망이 지니는 ‘변이능력’과 이질적인 듯 보이는 욕망의 ‘인접성’을 이해하지 못한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적인 욕망과 공동의 삶을 추구하는 욕망이 바로 인접해 있을뿐더러 동일한 것일 수 있는데도 어느 하나를 절대화시키는 것은 인간과 욕망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여된 까닭이겠지요.”사적 욕망과 공적 욕망은 인접해있다고 했던가. 저자 이진경의 연구공간에서 그의 흔적과 의미를 캐내려 했던 처음의 의도는 그와 동료들이 ‘들뢰즈, 철학과 문학사이’, ‘니체-어느 반시대 사상가의 유쾌한 탈주’ 등의 주제로 진행하고 있는 대중강좌의 팜플렛을 받아들면서 마침내 충족되었다. “왜 자본주의는 망하지 않을까’라는 제 개인적인 화두는 ‘자본주의적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근대를 넘어서려했던 많은 이들이 어떤 지점을 넘어서려 했는지, 정말 넘어설 수 있었는지, 아니면 그 과정에서 다시 되돌아가고 말았는지를 알기 위해 제게는 경계들을 표시해 놓은 지도가 있어야 했지요. 그 지도들이 제가 써낸 책들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제 문제의식과 제 화두 속에서 나온 지도이기에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나와 동일하게 읽을지는 다른 문제이지요”라고 했던 그는, 자신의 지도들을 가지고 다른 이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만의 공간이라 이름 붙여 골방에 숨어있는 이들에 내재한 공적욕망을 호출해내는 곳, 그것이 연구공간의 ‘공간-기계’ ‘너머’에서 발굴해낸 의미였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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