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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과 하버마스
김수영과 하버마스
  • 김호기 / 서평위원.연세대
  • 승인 2001.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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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

사회학을 전공으로 하다보니 전공의 특성상 여러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되는 것 같다. 사회학의 분석 대상이 전체 사회를 다루기 때문에 인접 학문의 목소리에 자연 관심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시절부터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오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아끼는, 세상 일에 지치면 가끔씩 꺼내 보는 책이 몇 권 있다. 하버마스의 ‘공공영역의 구조변동’과 ‘김수영 전집 2: 산문’이 바로 그것인데, 나로서는 모두 각별한 사연을 담고 있는 책들이다.

하버마스 책은 1985년 가을 빌레펠트 대학 구내서점에서 처음 구경했지만, 정작 1989년 동구 사회주의 위기 이후 시민사회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꼼꼼히 읽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버마스 교수자격논문인 이 책을 둘러싼 스승 아도르노와 제자 하버마스 사이의 일화는 비판이론 역사에서 전설로 남아 있거니와, 그람시와는 다른 경로로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을 이론화하려는 젊은 하버마스의 야심만만한 주장에는 이미 대가로서의 기품이 서려 있다. 나의 지나친 애정일지 모르나, 21세기에도 민주주의가 여전히 중요한 인류사적 과제인 한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오래 동안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이 우리말로 옮겨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 오래 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빠른 시일 안에 우리말로도 번역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김수영 전집에 대한 추억 또한 색다르다. 김수영 전집은 유학 시절 가깝게 지냈던 한림대 박근갑 교수가 내게 선물로 주고 간 것이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1권 시보다는 2권 산문이 훨씬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그의 단호하면서도 명쾌한 문장은 글쓰기의 전범으로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요즈음 어쩌다 이 책 여기저기를 들쳐 보면 이제는 김수영의 논리가 다소 낡은 듯하지만, 우울한 1950-60년대를 견뎌낸 한 지식인의 내면풍경으로서의 사회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9월의 문화인물’로 김수영이 선정됐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례적인 일이 듯 싶으나, 그만큼 김수영이 우리 문화에 미친 영향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해서 반갑다. 그토록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했던 그가 이 사실을 저승에서라도 듣게 된다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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