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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한국철학사’ 발간…남북이 함께 하는 그날까지
온전한 ‘한국철학사’ 발간…남북이 함께 하는 그날까지
  • 김재호
  • 승인 2023.03.27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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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남북철학’ 다룬 한국철학회 70주년 학술대회

김원명 한국외대 교수 “북한에서 원효철학 연구와 기술은 철 지난 사회주의 체제의 유물론적 관점의 기조와 ‘철학사적 우민화를 노리는 주체철학의 이데올로기’의 기조를 갖고 있다.”

선우현 청주교대 교수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결함을 상당 수준 해결한 바탕 위에서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재가동시키는 것이 좀 더 나은 방안일 수 있다.”

왼쪽부터 김원명 한국외대 교수(철학과)와 선우현 청주교대 교수(윤리교육과)이다. 김 교수는 북한의 원 효철학 연구, 선우현 교수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 담론을 분석했다. 사진=김원명, 교수신문

이번 한국철학회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눈여겨볼 섹션은 바로 ‘남북철학을 말한다’이다. ‘원효, 지눌·퇴계·율곡·다산·혜강’에 대한 북한의 이해를 남한의 시각에서 다뤘다.

김원명 한국외대 교수(철학과)의 「남(南)의 철학자가 보는 북(北)의 원효: 북한에서의 원효철학 연구 동향」에 따르면, 북한에서 저술하는 원칙은 ‘계급주의적 원칙’과 ‘역사주의적 원칙’ 두 가지다. 이를 통해 한국(조선)철학사와 불교철학을 분석 평가한다. 김 교수는 “북한에서는 한국(조선)철학사와 불교철학을 기술할 때 ‘마르크스-레닌의 유물론’과 ‘주체사상’이 한결같이 적용된 ‘주관적 관념론으로서 봉건지배 착취계급에 기여했다’는 일관된 평가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서술 원칙은 시대적 내용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원효철학 연구 관련 김 교수는 “북한에서 원효철학 연구와 기술은 철 지난 사회주의 체제의 유물론적 관점의 기조와 ‘철학사적 우민화를 노리는 주체철학의 이데올로기’의 기조를 갖고 있다”라며 “앞으로 북한에서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라고 우려했다.

특히 김 교수는 “남북이 원효철학 특징의 한국적인 기원을 설명해야 한다”라며 “신라의 원효가 새롭고 독특하게 고안한 ‘화쟁’ 사상과 그것을 그 바탕에 전제한 불교의 ‘일심’ 사상과 다르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을 이해하고 한국적인 철학 틀이 무엇이었는지 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세근 한국철학회 회장(충북대 철학과 교수)은 기획의도에 대해 “남북의 철학자가 만나고자 하는 시도는 이미 2019년 9월부터 연변을 통해 계획됐다”라며 “그러나 시국의 매서움으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한국철학회는 북한의 한국철학사를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북한은 조선철학전사 십수 권을 정리했다. 반면 한국철학계는 한국철학회에서 논문집의 형태로 3권의 책을 낸 것이 고작이다. 정 회장은 “우리는 일단 북한의 연구 동향을 정리한 이후, 점차 온전한 한국철학사 발간을 목표로 한다”라고 밝혔다.

 

학벌 패거리주의·서열주의와 교수채용

선우현 청주교대 교수(윤리교육과)는 「능력을 사회적으로 규정짓고 통용시키는 주체는 누구인가?」를 발표했다. 그는 “능력주의의 파기와 해체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비록 능력주의가 불완전하며 온전치 못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우리는 능력주의를 ‘능력과 보상의 비례를 뜻하는 형평이라는 공정성 원칙’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우현 교수는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결함을 상당 수준 해결한 바탕 위에서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재가동시키는 것이 좀 더 나은 방안일 수 있다”는 견해를 하나의 제언으로 개진했다. 현실적으로 능력주의의 대안이 없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또한 선우현 교수는 현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외양만 근대적 시민 사회일 뿐 실체는 전근대적인 패거리 사회의 양상을 취하고 있다”라며 생활 전선 도처에서 “비합리적인 정실주의적·연고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여전히 허다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오히려 능력주의가 잘 반영되길 바란다.

예를 들어, 교수를 채용하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은 “개인적 자질이나 역량, 실력보다는 출신 학교를 최우선적 평가 항목으로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학벌 패거리주의와 서열주의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공간”이다. 능력주의에 근거한 공정한 공채 방식도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주의 자체의 문제점보다도 능력주의가 잘 적용되지 못하는 것을 더욱 부당하다고 느끼는 셈이다. 그래서 선우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지금처럼 학벌 패거리주의에 기초한 연고성을 통해 공채되는 방식보다, 익명성을 담보한 가운데 치르는 이른바 ‘교수 공채 시험’이 있다면 그것이 보다 ‘상대적으로’ 공명정대하지 않겠는가?”

특히 능력 개념에 대한 비판을 따져보면, “모든 능력 개념은 지배 계급의 이익을 반영하고 관철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능력 개념은 계급에 연루돼 있다. 가령 지식인은 학술 분야에서 토론 능력이 가장 탁월하다고 간주된다. 그러기에 경제 이슈와 관련해서 계급적 충돌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현장의 육체노동자와 경제학자가 토론으로 담판을 지어야 하면 경제학자가 유리하다. 그래서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능력 개념과 능력주의를 재구성해야 한다. 사정은 이렇지만, 능력 개념을 폐기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능력 개념은 개인의 잠재적 및 현실적 역량과 성취도 나아가 그에 따라 보상을 측정 평가하는데 불가피하게 동원되는 필수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선우현 교수는 능력주의 원칙이 작동되는 터전으로서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결함과 폐해를 지적했다. 이 때문에 불공정성·불평등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의 병폐를 재구조화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 작업과 병행해 능력주의도 비판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그는 “능력주의 자체를 ‘근본악’으로 간주하여 폐기 처분하는 대신, 공정성 원칙을 나름 공정하게 재가동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상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무지와 오만: 능력주의에 대한 불교적 해석」 발표에서 능력과 개인을 해체시켰다. 이 교수는 “불교는 나와 세계를 포함하는 현상적인 모든 것을 상호의존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규정한다”라며 “불교에서는 하나의 실체, 본체를 인정하지 않는 해체주의적 관점이 지지된다”라고 강조했다. 

불교철학의 핵심은 ‘무아’이며, 자아는 환상이다. 이 교수는 “나의 능력은 어떠한 비능력적 요인 없이도 성립할 수 있는 무엇이어야 한다”라며 “외부조건을 배제한 나의 능력은 성립할 수 없다. ‘나’라는 실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개인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세우고, 측정하거나 구분할 수 없는 개인의 능력을 비교하며, 거기에서 발생하는 괴로움을 정당화시키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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