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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에 동의 얻으라는 ‘벽 허물기’ 구조조정
한 달만에 동의 얻으라는 ‘벽 허물기’ 구조조정
  • 김봉억
  • 승인 2023.03.27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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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글로컬대학 졸속 추진 강행
“화려한 수사로 포장·꿈만 야무진 미봉책”

“글로컬대학 선정 과정은 마치 ‘아이디어 공모전’ 같다.”
교육부 설명회에 참석했던 지역 사립대 한 기획처장의 이 말은, 교육부가 대학정책 핵심사업으로 추진 중인 ‘글로컬대학’ 사업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대학 내·외부 벽 허물기는 물론 대학 운영의 지역사회 개방, 2개 이상의 대학·기관의 통합 등 지금까지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과감한 혁신’ 구상을 5페이지로 제한된 컨셉 노트(혁신기획서)에 담아야 한다. 딱 5페이지다. 별첨도 허용되지 않는다.

비수도권 대학들은 글로컬대학 기본계획 확정 이후, 한 달여 만에 예비선정을 위해 대학 구성원의 동의도 구해야 한다. 학과 통합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과감한 ‘벽 허물기’ 구조조정을 한 달만에 합의할 수 있을까. 

물러서기도 어렵다. 대학이 제출하는 기획안은 모두 공개될 예정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2일자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대학이 제출한 기획안을 전부 공개할 예정”이라며 “국민이 다 보고, 전문가들이 다 볼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대학에 기획안을 공표하겠다는 서약을 미리 받고 지원서를 받으려고 한다고도 했다. 규모가 큰 만큼 공정성 시비 논란이 일 수도 있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글로컬대학 선정을 위해 자존심을 비롯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7개 교수단체로 구성된 전국교수연대회의는 지난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추진 중인 라이즈와 글로컬대학 사업 철회를 촉구했다. 사진=전국교수연대회의

교수단체는 라이즈(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정책과 글로컬대학 사업 등 교육부 대학정책에 대해 “일방적인 졸속 강행”이라며 사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극소수 대학만 남기고 대다수 대학을 존폐 위기로 내몰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라는 것이다. 

7개 교수단체로 구성된 전국교수연대회의는 지난 22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의 면담 자리에서 “교수들이 교육의 주체인데, 전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10년 전과 같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지만, 이 장관은 “정책은 중단없이 계획대로 밀고 나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교수연대회의는 오는 4월 19일까지 교육부 대학정책을 반대하는 교수·연구자 1만 명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전국교수대회 등 집단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22일 ‘라이즈와 글로컬대학’에 대한 논평을 내고, “획기적인 재정지원, 실제적인 정책지원이 담겨 있지 않다”며 “화려한 수사로 포장돼 있을 뿐, 글로컬대학 사업안도 꿈만 야무진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외국 대학의 혁신 모델에 대한 불만도 심각하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 지역대학과 달리, 이미 최상의 조건에 있던 대학과 연구기관을 통합·연계한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 연합대학,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을 혁신사례로 논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시스템도 국가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대학체제 개선안이지 지자체 역량만으로 시도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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