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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박사학위 어디다 쓰겠어”
“지방대 박사학위 어디다 쓰겠어”
  • 최나현
  • 승인 2023.03.27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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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최나현 부산대 여성연구소 강사

국내 박사과정생의 ‘연구력’에 영향 미치는 구조적 환경은 무엇일까? 누군가 이 같은 질문을 한다면 올해 1월 발표된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력 강화를 위한 실태조사 및 과제」를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이 연구는 박사과정생들의 입장과 시선에서 바라본 국내 연구생태계를 묘사하고, 이들의 연구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 개선안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참여자들은 그간 대학원 내에서 단지 ‘개인적 불만’으로 치부됐던 여러 문제 제기가 사실은 국내 대 학원의 학문 재생산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는 점을 성찰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나 역시 연구참여자로서 깊이 공감하며 보고서를 읽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새삼 새롭게 질문을 바꿔 다시 묻게 되었다. ‘지방대’ 박사과정생의 ‘연구력’에 영향 미치는 구조적 환경은 무엇일까? 보고서에서는 ‘연구자원의 지역적 불균형’이 지방대생의 연구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 지적한다. 물론 맞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사회의 학력·계급차별과 서울 중심주의 속에서 만들어지는 지방대 멸시의 정서가 있다. 누구에게나 내면화된 이 태도는 지방대 대학원생의 연구력의 한계를 구획 짓는다. 예를 들면, “부산대 박사학위를 어디다 쓰겠어?”와 같은 말이다. 이러한 말은 너무나 폭력적이지만 실제로 들을 수 있다.

이런 멸시적 태도는 언어화되지 않더라도, 교수 임용 같은 대학·학계 내 여러 중요한 결정 속에서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지방대 위기’를 논하는 어느 ‘지방대’ 학술행사장에서 터져 나온 “왜 우리 대학은 서울대 박사만 교수로 뽑나요?”와 같은 질문이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였을 것이다. 자기 공부의 가치가 ‘지방대’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당하는 일상에서 학생들이 연구 의욕을 갖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이 지방대생의 능력 부족 문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대학 바깥의 지역 주민들도 역시 ‘지방대’를 차별한다. 이따금 공공기관이나 지역단체가 지역 문제를 논하는 전문가로 서울 연구자를 섭외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지역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지역민의 관점에서 문제해결을 고민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전문가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지방대’에 대한 차별, 그리고 그 반대항으로 존재하는 ‘인서울’에 대한 선망은 서울 연구자들이 더 좋은 결과물을 보여줄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을 만들어 낸다. 이는 지역 사람조차도 지역 연구자에게 관심을 갖거나 신뢰하지 못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지역 연구자들에게 자신의 지역에 대해 더 잘 알 기회와 지역을 위해 일할 기회, 연구력을 향상 시킬 기회를 박탈해버린다.

사실 대학원생의 ‘연구력’에 관한 인터뷰가 진행될 때, 이러한 사례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다.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몹시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자칫 괜한 피해의식으로 비추어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지역에 대해 말해야 할 때, 혹은 나 자신, 그러니까 지방대생으로서의 경험을 전하는 자리에 언제나 존재한다. 그렇다면 실은 그 주저함 속에 ‘지방대 박사과정생’으로 경험하는 특수한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지방대 학문후속세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방대’라는 이유만으로 자원과 기회를, 그리고 공부를 지속할 이유와 의지를 빼앗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이 지방대 대학원생의 연구력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했던 것 같다.

그러니 다시 나에게 ‘지방대’ 박사과정생의 연구력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이 뿌리 깊은 학력 차별에 대해 더욱 힘주어 말하고 싶다. 많은 지방대 학문후속세대들에게 제안하고 싶기도 하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있다는 ‘차이’가 어떻게 ‘지방대’라는 차별적 의미를 구성하게 되는지, 무엇이 지방대라는 공간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지, 그리고 지방대라는 꼬리표가 우리의 연구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나아가 우리는 어떤 주저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해 보자고 말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를 더 자주, 더 큰 목소리로 함께 말할 기회가 많아 졌으면 한다.

최나현 부산대 여성연구소 강사
부산에서 강의하고 연구하여 먹고 사는 사람. 2022년에는 논문 「지역×청년×여성의 여성주의 실천 경험에 관한 연구  - '충전소'를 만들고, '기피시설'로 여겨지다」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지역 노동시장이 청년여성의 일자리를 구조화하는 방식에 관심 갖고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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