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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했지만 연진이도 구원을”...‘신의 증명’ 향한 파노라마
“타락했지만 연진이도 구원을”...‘신의 증명’ 향한 파노라마
  • 김재호
  • 승인 2023.03.18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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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 김용규 지음 | IVP | 932쪽

“자연선택이라는 다윈의 ‘진화 원리’ 또한, 하나님이 만들어 지속적 창조를 위임한 ‘현실화 원리’ 내지 ‘자연법’ 또는 ‘영원한 법칙’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한 복수 종합선물세트 드라마 「더 글로리」. 드라마의 연출가도 학교폭력으로 용서를 구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중요한 건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이 박연진(임지연)에게 용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만약 박연진이 진정으로 용서를 구했다면, 드라마의 결말처럼 폐허로 남은 게 아니라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더 글로리」의 박연진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기회 자체가 있는 것일까? 사진= 「더 글로리」 스틸컷

철학자 김용규(2022년 우송철학상 대상 수상자)의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을 읽으면서 타락과 구원, 용서와 화해, 허무와 의미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과연 드라마 속 박연진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연진이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래서 누구든 진심으로 회심(메타노이아)하면 가능할 것이다. 메타노이아는 하나님이라는 ‘신비적 형태’가 인간으로서 접하는 ‘일상적 형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연진이에게는 책 속에 등장하는 키르케고르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절망하라, 그러면 그대 속에 깃들인 경솔한 마음이 그대로 하여금, 요동치는 정신처럼 그리고 망령처럼, 그대에게는 이미 상실된 세계의 폐허 속에서 헤매는 일이 다시는 없게 할 것이다.”(586쪽) 

김용규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구에 자신을 집어넣어 부서지고 빻아져서-그러나 버려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영원한 생명의 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579쪽). 박연진은 자의식의 과잉을 전적으로 보여준다. 자신만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김용규는 “세상 누구든 자기 자신을 믿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다”라며 “부단한 자기체념과 자기부정을 통해서만 하나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다”라고 밝혔다. 창조의 목적은 구원이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은 설득력이 있다. “불완전한 피조물이 하나님의 완전성에 도달하는 것, 하나님의 신성을 닮는 것, 곧 ‘구원’이 창조의 목적.” 

 

최고 본질이자 최고 복락으로서 신(하나님)

이 책은 저자의 내공이 여실히 느껴지는 대작이다. 국내에 이런 철학자가 있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은 ‘하나님은 무엇이고 어떻게 존재하는가’로 확장된다. 김용규는 ‘신은 분명히 존재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자, 창조주이며, 유일자이다.’라고 답한다. 여기서 신은 영국 국교회 의장인 켄터베리의 대주교를 지낸 안셀무스의 『모놀로기온』(1077) 속 표현대로 “최고 본질, 최고 생명, 최고 이성, 최고 행복, 최고 정의, 최고 지혜, 최고 진리, 최고 신성, 최고 위대성, 최고 미, 최고 불사성, 최고 불변성, 최고 복락, 최고 영원성, 최고 권능, 최고 일자성”으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철학-신학-문학-과학-예술로 엮어지며 상승한다.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연결을 통한 질적 도약이다. 

추천사를 쓴 고 이어령(1933∼2022) 선생은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신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드러냈으며 각 시대는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오독해 왔는지에 관해 서양문명의 뿌리에서부터 근현대까지 통틀어 톺아보는 이 거대한 서사의 여정에서 결국 우리는 인간 자신의 참된 자화상에 도달한다. 칼빈은 하나님을 알아야 인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책은 바로 그 귀한 지혜의 현대판 증언이다.” 

김용규의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에 대한 서평은 두 편으로 나눠 작성해 보고자 한다. 첫째 편에서는 책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과 감명 깊었던 내용을, 둘째 편에서는 주제별로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찰스 다윈(왼쪽)과 아우구스티누스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윈은 그리스도인에서 불가지론자가 됐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교도자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사진=위키피디아  

 

그리스도인에서 불가지론자된 찰스 다윈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타락했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다. 실제로 성인으로 추앙되는 아우구스티누스(354~430) 역시 방탕하고 이교도를 믿는 등 타락했었지만 나중에 위대한 저술인 『고백론』을 쓰게 된다. 그렇다고 구원을 위한 필요조건이 타락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반대의 방향 역시 생각해볼 수 있다. 진화론을 확립한 찰스 다윈(1809~1882)은 그리스도인이었다가 유신론자를 거쳐 불가지론자가 됐다. 그 사이 10세의 딸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창조론 대 진화론’이라는 대립은 ‘유신론 대 무신론’과 같지 않다고 김용규는 설명했다. 불가지론가 된 다윈이지만 그는 ‘진화의 사다리-자연의 사다리-존재의 사다리’를 거쳐 니체의 초인과 같은 구원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철학자 김용규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 개념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자연선택이라는 다윈의 ‘진화 원리’ 또한, 하나님이 만들어 지속적 창조를 위임한 ‘현실화 원리’ 내지 ‘자연법’ 또는 ‘영원한 법칙’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465∼466쪽)

더욱이, 김용규의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념이 상호보완적이고, 맞물려 있다는 점을 쉽게 설명한다. 양립가능성을 보여주는 셈이다. 예를 들어 ‘불변’과 ‘변화’가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존재란 생성과 작용의 ‘탈시간화된’ 모습이고, 생성과 작용이란 존재의 ‘시간화’된 모습에 불과합니다. 불변이란 변화의 탈시간화된 현상이고, 변화란 불변의 시간화된 현상일 뿐입니다! 시간을 매개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념이 하나로, 종합된 겁니다.”(151쪽) 

또한 흔히 배타적 개념으로 간주되는 ‘이성’(과학)과 ‘믿음’(신학)은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으로 설명되며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15쪽)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특히 ‘세계초월성’과 ‘세계내재성’은 책에서 자주 언급된다. 이 둘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어떻게 초월하면서 내재할 수 있을까? 김용규의 설명을 들어보자.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 곧 하나님은 세계로부터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절대적 독립성을 가졌다는 의미인 세계초월성과, 세계에 부단히 참여하며 우주 만물을 오직 자신의 뜻대로 인도해 가는 인격적 속성을 가졌다는 의미인 세계내재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유신론(theism)적 신입니다.”(318∼319쪽) 이에 대해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가 어떻게 답변할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김용규의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는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으로 읽힌다. 김용규는 ‘존재의 바다’를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아가 그 바다가-마치 현대물리학자들이 말하는 퍼텐셜처럼-그 자신은 무형이지만 모든 유형적 존재물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형체가 없는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라는 교설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166쪽) 존재의 장이 만들어내는 여러 가능성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대의 위안이 아닐까.

인간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두고 불안에 떤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뭘까? 생각할수록 너무 크고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당장 내 앞에 있는 봄꽃을 자세히 보고 싶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이 못하였느니라.-마태복음 6.26.”(571쪽) 각자는 어떤 운명을 갖고 태어난 것일까? “네가 동의하면 운명은 너를 인도하고 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운명은 너를 강제한다.-세네카”(512쪽) 개인은 유한한 존재물이지만 예정된 섭리로서 어떤 운명이 있다고 생각돼 김용규의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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