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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단순한 교육의 성공비결
생각보다 단순한 교육의 성공비결
  • 손화철
  • 승인 2023.03.20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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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김윤규 교수가 2001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포항 청소년 자유학교에서는 공교육에서 이탈한 학교 밖 청소년의 검정고시와 학력 취득을 돕는다. 열 명도 안 되는 청소년을 위해 매주 한동대에 재학 중인 30여 명의 교사들이 번갈아 수업을 하고, 십 수 명의 봉사자가 정성껏 마련한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400명 이상의 청소년이 거쳐갔고, 그 중 200명 이상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대학생 교사들이 전문적인 교육법에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열정과 사랑이 상처와 사연이 있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열고 공부하려는 의욕을 불러 일으킨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대한민국 사교육 강사의 위세는 대단하다. 소위 ‘일타강사’들은 매년 수백 억대의 매출을 올리고 연예인 뺨치는 인기몰이를 하면서 청소년의 마음을 울리는 ‘어록’까지 남긴다. 이들의 수업은 수십 명의 스텝들과 함께 치밀하게 제작되고, 그들의 강의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시험 준비라는 차원만 보자면 공교육 시스템은 이들과 경쟁할 수 없기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사교육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대가가 확실하니 학교에서 잘 가르친다고 소문 난 선생님이 사교육 시장으로 이직하는 일도 흔하다. 

이제는 약간 시들해진 듯도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대학 교육 혁신을 논의할 때 늘 미네르바 대학이 등장했다. 미네르바 대학은 건물과 도서관을 짓는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학생들은 매 학기 전 세계의 도시를 돌며 그곳에 마련된 숙소에서 함께 살면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다. 대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현지에서 수업과 연계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디자인하고 모든 필요를 제공한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혁신 교육 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쏟아부었고, 이제 그 방법론과 시스템을 기존 대학에 팔고 있다. 

위의 사례들은 각각 서로 다른 각도에서 교육의 성공을 보여준다. 교수자가 열정과 사랑으로 학생을 돌보면 엄청난 능력이 없더라도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른 한 편 교수자의 출중한 능력을 집중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무시할 수 없는 반향이 일어난다. 혁신적인 교육을 하려면 멋진 수사가 아니라 일관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육부와 대학이 추진하는 정책은 못내 어정쩡하다. 교수가 학생 개개인에게 정성을 쏟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지도 않고, 그런 태도를 높게 평가하지도 않는다. 잘 가르치는 대학과 교수에 대한 평가·지원·보상도 없다.

사교육 시장에서처럼 학생의 가려운 곳을 찾아 해결해주는 서비스 정신보다는 정책 결정자 눈에만 혁신으로 보이는 방법론에 매몰되곤 한다. 교육체제 개편을 위한 투자는 유행을 따르느라 파편적이 돼버리고, 대단한 결과를 원한다면서 투자의 규모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소심하다.

청소년 자유학교, 사교육 시장, 미네르바 대학의 성공 비결은 단순하다. 막연한 꿈을 쫓는 대신 현실을 보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학생에 애정을 쏟고, 교실의 필요와 실제 성과를 깊이 관찰하여 민첩하게 대응하며, 투입이 없으면 산출도 없다는 상식을 인정하면 된다. 대학은 어설픈 아이디어의 실험실이 아니다. 현재를 보지 않으면서 미래를 말하고, 대충 심어놓고 많이 거두려는 이들 때문에 교육이 망한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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