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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한, 너무도 관대한 교육부
관대한, 너무도 관대한 교육부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6.08.08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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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볼썽 사나운 김병준 부총리 ‘감싸기식’ 교육부 해명자료

▲ 교육인적자원부는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재임한 18일 동안 10여건이 넘는 논문 부정 의혹 관련 해명자료를 작성해 발표했다. © 교수신문

취임하자마자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짧은 재임기간 해명하기에 급급했던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 장관이 지난 7일 교육부를 떠났다.

그러나 김 전 부총리가 퇴임했다고 해서 모든 의혹이 풀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온갖 의혹을 뒤로한 채 물러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확하다.

문제는 의혹이 의혹대로 남았다는 부분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김 전 부총리가 재임하는 18일 동안에 ‘연구 윤리’에 대한 교육부의 원칙이 복귀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무너졌다는 점에 있다.

해명자료를 낼 때마다 부총리를 감싸는 데 주력한 나머지, 정작 교육부가 지켜야 할 일, 해야 할 일을 망각한 데에 따른 것이다.

물론 왜곡보도로 인해 부총리의 명예가 실추됐다면 부총리 개인 혹은 교육부의 정책홍보담당관실이 나서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해명자료가 10여건이 넘는다 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연구를 지원하고, 학문 영역에서의 제도 개선을 주 업무로 맡고 있는 교육부의 학술진흥과가 김병준 부총리의 과오를 덮는 해명자료 작성에 동원됐다는 점은 정부기관으로서의 한 부서가 때에 따라 권력의 시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학술진흥과가 작성한 해명자료는 ‘용역보고서를 논문으로 발표하고, 그 발표실적을 BK21사업의 실적으로 제출한 것은 정당’(2006. 7. 29), ‘성북구청의 연구용역은 이전 연구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2006. 8. 1), ‘김부총리, 제자 논문에 무임 승차 기사는 실제와 다르다’(2006. 8. 1), ‘감사원, BK21 사업 특감 착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2006. 8. 3) 등 총 4건이다.

교육부로서는 연구비 이중 수혜 등의 의혹과 관련해 일부 언론사의 오보에 대응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인지상정상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주체가 부총리이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학술진흥과는 해명자료를 통해 “BK21사업에서 참여교수가 서울시, 한국학술진흥재단 등 외부 연구비를 수주해오고 그 결과로 발생한 논문을 BK21 사업팀의 실적으로 제출토록 하고 있다”라는 점을 상세히 설명하면서도, 김 부총리가 BK21 최종보고를 할 때 한 편의 논문을 두 건의 실적으로 보고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김 부총리가 인정하고, 직접 사과한 바 있음”이라고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가버린다.

더 나아가 교육부 자체가 “학술지 발행기관이 영세한 경우 외부에 발표된 논문을 교내 학술지에 다시 발표하는 사례도 많”다거나 “선배교수가 후배교수에게 교육홍보 차원에서 요청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풍토 또한 그 당시 실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미 개혁돼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작 제도를 개선한다고 얘기해왔던 교육부가 ‘관행’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BK21사업에 최종보고할 때 연구책임자로서 자신의 연구실적이 부풀려진 채 보고된 점에 대해, 교육부는 연구비를 지원하는 국가 행정기관으로서 사후에 어떠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조차 담아내지 않았다.

당시 교육부 관계자는 “이미 완료된 사업이라 조치에 대해 논의된 바가 없다”라고 말했지만, 실제 BK21 참여 교수들의 연구실적 부풀리기가 대사회적으로 비판을 받게 될 경우 김 부총리건처럼 조용히 덮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사자가 부총리가 아니라 교수였다면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지점인 것이다. 교육부가 매번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그게 최선책이든 차선책이든간에 대응책을 내놓았다는 사정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부총리 지시로 이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는 제도개선책이 나왔을 법한 상황인 것이다.

또 동일 논문 중복 게재나 연구실적 부풀리기, 연구 결과 조작, 논문 무임승차, 논문 쪼개내기 등 학계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그간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교육부가 학술지 중복 투고를 옹호하거나 선·후배 교수간의 수직적 권력 구조 등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은 낯뜨거운 태도 변화에 다름 아니다.

진 전 성북구청장 박사학위논문 수여 관련 의혹과 관련해서도, 교육부는 박사학위를 남발하는 해당 대학 학과의 수여 행위에 아무런 문제 의식도 느끼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간 일반대학원·특수대학원·전문대학원 등에서 이뤄지는 학위 남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교육부의 면모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부총리의 개인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명 작업에 고위 공무원들이 방패막이로 동원되는 것도 납득할 수 없지만, 정부기관으로서 엄격해야 할 부분까지도 당사자가 부총리이기 때문에 느슨해지는 상황은 교육부에 대한 깊은 불신만을 초래할 뿐이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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