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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육체 전쟁
[문화비평] 육체 전쟁
  • 김소영 한예종
  • 승인 2000.1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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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3 16:12:40
김소영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몸을 숨겨라. 전쟁이다’. 체코의 초현실주의 여성 화가 토옌은 2차 세계대전을 맞아 이와 같은 선언적 제목으로 지하예술운동을 펼쳤다. 이즈음 한국의 소녀들을 볼 때면 난 토옌의 전쟁이 생각난다. 소녀들의 몸 자체가 그야말로 전쟁터로 변했기 때문이다. 학내폭력과 입시경쟁은 소녀들의 육체에 간접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폭행을 가한다. 영화 ‘여고괴담‘을 낳은 것도 이런 폭력적 사태에 대한 공포였다. 이미 익히 알려진 얘기다. 가난에 밀려 혹은 또래 그룹의 유혹에 끌려 가출한 여중생, 여고생들의 이야기도 그치지 않는다. 가난도 폭력이다. 가난이 직접적인 가정폭력과 사회폭력을 낳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즈음의 신종 ‘괴담‘은 시장에서 발생한다. 소녀들의 몸을 매개로 기괴한 시장이 형성된다. 한편으로는 고도의 상품자본주의가 소녀의 육체를 상품으로 만들고, 다른 한편에선 원조라는 이름의 성 매매가 횡행한다. 그것은 히드라처럼 여러 개의 머리를 흔들며 공존한다. 디자이너의 이름이 새겨진 상품들, 소녀에 대한 성인 남성의 욕망, 상품들에 대한 욕망에 의해 정체성을 인준 받으려는 소녀들의 욕구, 이것들이 그 히드라의 머리다.

신화적 차원의 이러한 이미지는 인터넷과 핸드폰이라는 하이테크를 통해 현실의 공간으로 불려와 소녀의 몸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들의 육체는 한국사회의 병적 징후들이 모여드는 일종의 저수지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10대의 아이들이 흐르지 못하는 저수지라니. 그들이 사회의 그로테스크한 상징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니.
사태는 정말로 난감하다. 지난 10월 3일 정부규제개혁위원회는 원조교제 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관보와 정부중앙청사 및 16개 시/도 게시판에 1개월간, 청소년보호위원회에 6개월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70%의 네티즌들은 신상공개를 찬성했지만, “원조교제는 강간과는 다르게 계약상 이루어지는 만큼 여성 쪽에도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의견을 낸 사람도 있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견해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원조교제는 ‘여성’과의 ‘계약’이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은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성인 주체들 사이에서나 이루어지는 것이다. 원조교제는 사회가 책임져야 할 미성년을 유괴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규제도, 그리고 그에 대한 찬성이나 반성도, 혹은 그에 대한 비판도, 사태 해결의 ‘근본’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이때의 근본은 라틴어로 뿌리(radix)를 가리키며 종종 급진적이라고 번역되는 래디칼(radical)의 의미다. 전쟁터가 된 소녀들의 몸이 성장과 생성의 터로 바뀔 근본적인, 래디칼한 출발점은 무엇인가? 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제도 속 규제에 들어있진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제 막 수면에 떠오르기 시작한 소녀들 스스로의 자기 재현물들과 그들이 꾸려나가는 공간에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즉, 자신들의 몸이 스스로에게 적대적인 그 무엇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이 바로 그들이 정치화될 수 있는 계기적 순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제 많은 소녀들이 비디오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자신의 주변을 기록하고 해석한 작품들을 영상제 등을 통해 공개하고 토론하고 있다. ‘하자센터’와 같은 대안적 공간도 생기고 있다. 사회의 다른 진보적 부분들이 이러한 변화들에 어떻게 반응하며 연대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뿌리로 이어지기도 하고 다만 순간적 몸짓으로 남기도 할 것이다. 전쟁이다.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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