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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
  • 최승우
  • 승인 2023.03.14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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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이아 오버 지음 | 노경호 옮김 | 후마니타스 | 448쪽

‘형용사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왜 사람들은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면서, 또 민주주의를 제한하려 하나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결합에 의해 위기에 처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원초적 민주정은 어떤 시사점을 제시할 것인가할 것인가

모두가 민주주의자임을 자임한다.
그러나 모두가 민주주의를 제한하려 한다.

“이 정권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하여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합니다.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합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
_어느 대선 후보의 출마 선언문 중에서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적 권위체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하나의 명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자신을 자본주의사회로 부르는, 혹은 그것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사회라 지칭한다고 하더라고, 그런 나라들 역시 스스로를 민주주의라 부르며 정당화한다.

요컨대,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들은 스스로를 민주주의 국가라 부른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정치체를 단순히 ‘민주주의’라고만 부르는 국가들은 거의 없다.

실제로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민주주의는 흔히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반공민주주의’, ‘일민민주주의’, ‘우리식 민주주의’, ‘쿠바식 민주주의’, ‘중국식 민주주의’ 등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가치(자유주의, 사회주의, 반공주의)와 결합되어 있거나, 특수한 시·공간적 제약(쿠바식, 중국식, 우리식, 일민 등)을 받고 있다.

이런 현실은 역설적이다. 모두 민주주의를 자임하지만, 모두 순수한 민주주의는 거부하거나, 다른 가치 체계와 섞으려 하거나, 무언가를 통해 한정/제한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분명 철학적, 역사적 이유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예컨대, 민주주의는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기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다수의 폭정(전제)으로 전락하거나, 부자들을 증오하고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우중 정치로 타락할 수 있다는,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서처럼, ‘자유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17세기 종교전쟁부터, 20세기 파시즘과 권위주의적 공산주의 체제의 발흥, 나아가 최근 다시 포퓰리즘이 각광을 받으며, 민주주의의 제어되지 않은 다수의 횡포를 인권을 통해, 또 헌법을 통해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요는, 문제는 민주주의에 있기에, 민주주의는 길들여지거나, 한정되거나, 다른 어떤 것과 혼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런 흐름에서 우리가 간과한 것은 없을까? 또는 우리가 거꾸로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서 언급했듯, 자유주의 정치 이론가들은 자유주의 없는 민주정을 마치 루소가 꿈꾼 하나의 일반의지 혹은 무제한적 다수결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근본적으로, 심지어 지독한 정도로, 반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그린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조사이아 오버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는 순수한 다수결주의가 충분히 상상해 볼 만한 정치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그것은 민주정의 타락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코 하나의 원형적이고 정상적이며 건강한 정치체제의 유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오버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그들이 옹호하는 가치는 민주정 자체로도 충분히 보장될 수 있으며, 그들이 악몽처럼 여기는 비자유주의적 결과들이 민주국가에서 도래하지 않을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보여 준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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