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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저작권 침해, 선진국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대학의 저작권 침해, 선진국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 이대희
  • 승인 2023.03.14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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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 시대, 출판 저작권이 위태롭다⑥ 대학사회 저작권 보호 방안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서면 태블릿PC나 노트북을 꺼낸다. 종이책을 펼치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19이후 대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함께 지정교재가 사라지고, 학생들 간의 불법스캔이 늘고 있다. 교수신문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저작권을 무시한 ‘불법 PDF’ 등이 속수무책으로 돌아다니는 디지털 ‘불법 복제’ 문제를 주목한다.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법 복제 방지와 저작권 보호 방안에 대해 살폈다. 

대학교재는 음악·영상물 시장과 다르다. 
대학에서만 사용되고 출판사도 영세하다.
대학교재의 저작권 침해는
교재 저술 중단, 출판산업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그 피해는 대학 사회로 되돌아온다.

저작권은 저작자에게 배타적 권리를 부여해 창작의 동기를 제공하고, 누구든지 창작물을 공정하게 이용해 제2, 제3의 창작을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문화의 발전과 향상을 꾀하기 위한 제도이다. 저작권자는 자신이 저작물을 직접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이용을 허락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저작물은 정당한 법률적 권원(權原)에 근거해 사용해야 하는데, 저작권자로부터 이용 허락을 받거나, 아니면 저작권 제한 사유에 해당하는 이용이어야만 한다. 정당한 법률적 권원에 의하지 않는 이용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등 민사적 제재와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이라는 형사적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수업목적 저작물, 전체 복제 원칙적으로 안 된다

대학사회에서 저작물 이용에는 두 가지 저작권 제한 사유가 적용될 수 있다. 첫째, 대학의 교원은 수업목적으로 저작물의 ‘일부분’을 이용(복제·배포·전시·공중송신)할 수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저작물의 성질 등에 비추어 부득이한 경우에는 전부(예컨대 사진의 경우)를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교재 전체를 복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러한 제한에 따른 저작물 이용도 무상이 아니며, 대학 차원에서 저작권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학생도 수업목적상 필요한 경우 위의 범위 내에서 저작물을 복제·공중송신할 수 있다.

둘째, 이른바 ‘사적 복제’로서, 저작물을 비영리적이고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에는 저작물을 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공중’의 사용을 위해 설치된 복사기기, 스캐너, 사진기 등의 복제기기에 대해서는 사적 복제가 허용되지 않는다. 공중은 ‘불특정’ 다수인뿐만 아니라 ‘특정’ 다수인도 포함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스캐너 복제’는 복사기 복제와 다른 차원

현재 대학 사회에서는 교재의 ‘스캐닝’에 의해 심각한 저작권 침해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 사회에서의 교재 복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스캐너’를 이용한 복제는 ‘복사기’를 이용한 복제와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 일단 스캔(복제)된 복제물은 매우 용이하고 광범위하게 배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재를 이용하고자 하는 자는 사실상 ‘무료’로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사업소나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스캐닝은, 이용자가 직접 스캐닝하거나 직원을 통해 스캐닝하는 것과 관계없이, 모두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학생이 정상적으로 구입한 교재를 스캐닝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공중용 복제기기에 의한 복제로서 사적 복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과 차원의 스캐너도 특정 다수인(공중)을 위한 것으로서, 이를 이용한 스캐닝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재 스캐닝이 위험한 이유

우리 사회는 1990년대 말의 MP3 파일 교환과 2000년대 중반의 웹하드에 의한 대규모 저작권 침해, 이에 따른 음악과 영상저작물 시장(CD 및 DVD)의 붕괴를 경험했다. 이제 어문저작물(교재)이 그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 

디지털 교재는 태블릿 PC 등을 통해 매우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교재를 선호하거나 디지털 형태로의 전환은 기술 발전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에 있어서 너무나 큰 희생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디지털 음악과 영상물 시장이 정상화되기까지 엄청난 피해와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대학 교재는 부디 이러한 경로를 거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 교재의 불법 스캐닝은 음악이나 영상물과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음악이나 영상물은 대형 음반사나 영화사가 제작·공급하고, 일반 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교재는 대학 사회에서만 사용되고, 교재를 공급하는 출판사는 음반·영화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세하다. 영세한 출판사는 저작권을 강력하게 집행하기도 어렵다. 대학 사회에서 저작권 침해는 결국 교재 저술의 감소·중단과 출판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결과에 따른 피해는 대학 사회로 고스란히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저작권 침해 강력 대응 필요

대학 사회에서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집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작권 침해에 대해 단속이 이루어지고, 침해에 대해서는 제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단속을 위한 자원이나 여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저작권은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에 의해 강력하게 집행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단속은 저작권 분야에 한정해 수사권을 갖는 사법경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곧 한국저작권보호원(이하 보호원)이 사법경찰관(리)인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의 수사업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보호원은 대학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저작권 침해를 단속하기에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저작권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집중관리단체’에게 단속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단속은 공권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서, 집중관리단체에 의해 훨씬 더 강력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침해에 대한 단속이나 제재가 능사는 아니지만, 저작권 역사가 사실상 소송 내지 투쟁의 역사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한 저작권 침해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통해서 저작권 존중 의식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사적 복제는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로 디지털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적복제’는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사적 복제 보상금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저작권 침해나 디지털 복제에 따라 저작권자가 입는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제도는 복제를 위한 ‘기기’나 ‘매체’에 대해 일정한 비용을 부과하고 징수한 비용을 저작권자에게 분배해 저작권자의 피해를 보상하는 제도이다. 사적 복제는 저작권자에게 큰 경제적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으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는 근거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런 사적 복제는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로 디지털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복사기, 스캐너, USB 등 저장매체는 처음부터 복제를 위한 것으로서 저작권자의 이익을 크게 해칠 수밖에 없다. 사적 복제 보상금제도는 이러한 상황에서 복제에 사용되는 복제기기나 저장매체에 대해 간접적으로 저작물 이용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저작권자의 피해를 보상하게 된다.

이용자 눈높이에 맞춘 디지털 교재 필요

대학 사회에서 불법 스캐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자(출판사) 측에서도 이용자가 편리하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그나마 시장에 나와 있는) 전자책(교재)은 메모가 사실상 불가능해 학생들에게는 매우 불편하다.

이용자들은 마음껏 메모할 수 있는 PDF 파일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일단 이용자 눈높이에 맞춘 형태의 디지털 교재를 제공하고, 그 다음에 복제를 방지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복제를 두려워해 디지털 교재의 제공 자체를 거부하거나 주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 구성원의 저작권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

대학 사회에서 불법 스캐닝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의 구성원들이 저작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대학 사회에서 저작권 침해는 경제력 세계 10위 규모 선진국인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지적재산권은 국가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대학은 사회의 지성을 대표하는 주체로서, 구성원들은 저작권 침해를 매우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옛말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PDF 파일로 된 교재를 무료로 얻거나, 종이 교재보다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은 책 도둑질에 해당한다. 저작물은 ‘무체’(無體)의 재산으로 부동산이나 동산 못지않은 가치를 가진다. 디즈니가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을 많이 보유하고 저작권을 강력하게 집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권 존중은 창작 의욕의 고취, 저작권자의 이익 보호, 출판산업의 발전, 국가경쟁력의 향상으로 연결된다. 지성을 대표하는 주체가 저작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누가 존중하겠는가?

이대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 부위원장과 한국인터넷주소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 한미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계간 <저작권> 편집위원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위스콘신대에서 법학 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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