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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탈근대사회의 문화
<3>가상현실의 위상 : 해방의 공간인가 조작된 환상인가
[테마] 탈근대사회의 문화
<3>가상현실의 위상 : 해방의 공간인가 조작된 환상인가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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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2:49:53
정보통신부는 최근 정보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 (일명 통신질서확립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네티즌들과 시민단체들은 이 법을 ‘온라인 국가보안법’이라고 규정하며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가의 검열에 맞서 네티즌의 자유를 옹호했던 싸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이나 초국가적으로 진행된 카피레프트 운동, 미국에서 연방통신 품위유지법 위헌판결을 이끌어낸 시민운동 등 인터넷 민주화의 역사를 기억한다면, 정통부의 발상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생애의 매체로서의 가상공간

싸이버스페이스를 현실사회의 법률로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공간이 사회적 차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 공간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사적인 욕망을 분출하는 상업적 기구로 정착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가장 성업 중인 것이 포르노 싸이트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채팅 싸이트가 성범죄의 온상이 된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AOL의 가정문제 상담가는 “인터넷이 외도의 원천이 될 것”이라 단언했다.

물론 이것은 가상공간의 특수한 문제라기보다는 현실공간에 퍼져있는 성적 강박의 자장을 드러내는 현상일 따름이다. 인쇄매체가 발명되었을 때 옐로우페이퍼가 만들어진 것처럼, 가상공간이 성애의 매체로 사용되는 것.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작하세요.” 나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을까,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최신형 CD-롬 걸의 첫인사다.

그러나 가상공간이 가상현실로 업그레이드됨으로써 가상적 쾌락이 감각적 구체성을 띄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업그레이드의 공로는 포르노와 함께 머드게임에 돌아가야 한다. N세대의 여가문화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머드게임에는 영상과 서사가 결합된 최첨단 가상현실의 맹아가 들어있다. 게이머는 사랑과 이별, 훈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게임의 줄거리에 몰두하며 서사적 환상을 즐기는 한편, 3차원을 이동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워크스루(walk through) 기법으로 영상적 환상을 즐긴다. 환각제를 통해서야 가능했던 환상이 가상현실 구현기술을 통해서 그야말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이렇듯 가상공간의 쾌락이 직접적으로 감각을 자극하기 시작하자, 가상공간이 현실과 무관한 자율적 질서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에 따르면, 가상현실은 현실에서 금지된 욕망을 해방시키며, 현실의 억압적 관계망을 무화시킨다. 지루하고 권태로운 실제현실에 비하면, 가상현실은 흥미롭고 자극적이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못마땅한 정체성에서 벗어던지고 자기가 선택한 멋진 ID 내지 아바타로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고, 일렉트로노드를 두뇌에 부착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자극을 느낄 수 있는데, 굳이 현실을 고집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가상현실이 독자적인 질서를 갖춘 별개의 공간이 될 수는 없다. 가상현실이 감각적 자극에 중독된 현실도피의 공간이 될 때 가상공간은 반사회적 밀실이 된다. 가상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일부이지 현실을 포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가상현실을 구축하고 합법화하는 거대자본과 경제정책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가상현실 구현기술이란, 컴퓨터가 만든 동적 환경과 사람이 상호작용하게 하는 여러 가지 인터페이스의 조합으로서, 엄청난 정보인프라 위에서라야 실현가능한 것이다. NASA에선 가상인터페이스환경 단말기를 개발했고, 우리 나라에서도 실감형 3D단말기 개발에 착수했다. ‘음란한’ 싸이버스페이스를 폐쇄하겠다고 나서는 정통부가 가상의 공간을 실제의 감각기관으로 느끼도록 조작하는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다.

인식론적 한계의 과장

가상현실의 독자성을 주장하며 실제현실을 외면하는 논자들에겐 근본적인 반박도 가능하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으니, 가짜 세상에 사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다. 수많은 블록버스터가 이런 식의 인식론적 한계를 실존적 절망으로 야단스럽게 재현한다. 그러나 이런 궤변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장자의 나비꿈에서 아카데미 비판이론가들의 이데올로기론까지, 나의 신념이 진실인가 허상인가라는 인식론적 고민이 당대의 정치적 국면에서 올바른 행위를 하지 않는 핑계가 되었던 것처럼, 지금 나의 현실이 가상인가 실재인가라는 질문 역시 올바름을 피해 가는 핑계가 되고 있다.

한편, 가상현실 지지자들의 논리에서도 새겨들을 부분은 있다. 특히 정체성의 혼란이나 분열을 이유로 가상현실을 반대하는 논자들에겐 반론의 여지가 없지 않다. 일찍이 경험주의 철학자 흄(D. Hume)은, 자아란 심리적 습관이 만들어낸 연상의 산물로서 실체가 아닌 변화하는 지각의 다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을 전자 뭉치로 규정하는 Sci-Fi의 상상력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한 탈근대의 철학자들 역시 Sci-Fi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알뛰세는 주체가 구조의 효과임을 말했고, 푸코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근대의 발명품임을 말했다.

칸트는 자아가 실체는 아니지만, 요청이긴 하다고 말했다. 근대사회는 개인이라는 계약의 단위를 요청한다. 결혼을 성기의 배타적 사용 계약이라고 정의한 칸트가 싸이버결혼을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싸이버결혼은 “육체적 관계만 없을 뿐이지 현실 세계의 결혼생활을 위협하는 사실상의 외도”라는 지적도 있지만, 지난 98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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