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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신보가 기획한 근대 한국의 표상
한성신보가 기획한 근대 한국의 표상
  • 최승우
  • 승인 2023.03.0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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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숙 지음|316쪽|역사공간

일본은 어떻게 한국 근대사를 조작했는가

한성신보는 개화기 조선을 의도적인 방향으로 표상함으로써 일본의 조선 침략을 위한 전위적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 언론이었다.

이 책은 한성신보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비롯한 근대 조선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어떻게 축소, 왜곡, 과장 보도하면서 한국을 하등국가로 몰아갔는지를 면밀히 살핀다.

한성신보는 일본 정부의 외교적 입장과 군사 정책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조선에 관철시키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일본인 국권론자들에 의해 창간된 한성신보는 조선 내 여론을 선도하고 친일적 정치 세력을 양성하여 침략의 경로를 쉽게 하고, 일본의 대조선 침략 정책을 보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면을 활용했다.

개화기 한반도에서 일어난 주요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한 사실 왜곡이 신보 안에서 자행되었고, 조선에 대한 후진적인 이미지를 조성하며 조선 정치·사회 무대의 핵심 인사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파했다.

신보는 고종과 명성황후, 대원군에 대한 이미지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했다. 그 결과 고종은 리더십이 약하고 존재감 없는 무능한 군주로, 명성황후는 무속에 빠진 타락하고 부도덕한 인물이면서 집안을 망친 암탉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반면, 일본은 하등국인 조선을 보호하고 동양평화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범국가이자 문명국으로 표현되었다.

조선 개항에서 일본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조명하거나 일본 정부의 불법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등으로 한성신보는 조선의 문명화를 이끌어준 주체자, 시혜를 베풀어준 은혜로운 국가라는 일본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일본의 개입에 대한 정당성을 홍보하는 셈이었다.

한성신보는 일본 정부의 의도에 맞춰 여론을 형성해나가면서 이미지 정치에 앞장서는 도구적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근대 정치 무대의 주역이었던 고종과 명성황후, 대원군에 대한 악의적 이미지 표상화 작업은 일본인들에게는 자국의 우월한 정치 문화와 문화적 수준 차이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준 반면, 조선인들에게는 상대적 열패감을 안겨주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조선 인민의 불만을 정부로 향하게 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보다는 실망의 깊이를 더하게 함으로써 내적 균열과 분열을 유도했다.

한성신보가 만든 조선 왕실의 표상은 지금까지도 일정 부분 고착되어 있고, 그로 인한 정신적 폐해 또한 깊이 남아 있다.

이 책은 한성신보가 당대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었는지를 추적하며 관찰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조선 침략의 야욕을 호도하는 데 언론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그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도구의 선봉이 되는지를 오늘날의 흐름과 관련해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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