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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깊은 생각<54> 눈병 환자의 명상
짧은 글 깊은 생각<54> 눈병 환자의 명상
  • 교수신문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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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2:46:23
김태원/ 동아대 무용이론
봄인 듯 싶더니 어느덧 여름이고, 또 여름인 듯 싶더니 어느덧 가을이다. 계절 바뀜이 변한 건가, 나이를 먹는 건가. 특히 지난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길었다. 아직도 그 더위의 여파가 몸 안에 남아 있을 정도로.

지난 여름 나는 매우 성가신 눈병 앓이를 했다. 심한 근시는 가지고 있지만, 한번도 눈병 앓이는 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난 8월 내내 눈병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었다.

물놀이를 한 것도 아니고 수영장을 갔던 것도 아닌데. 의사의 말로는 공기가 혼탁하고 무더우면 신체의 저항력이 약할 경우 눈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별다른 치료약은 없고, 그저 좀 서늘하고 환풍이 잘 되는 곳에서 쉬면서 눈 안의 균이 활동을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눈병에 걸리고 보니 주변에 눈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백내장이니 녹내장이니 하는 여태까지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던 병으로 고생하는 노인들도 주변에 보였다. 안과가 늘어난 것은 틀림없다. 동네마다 치과 불어나듯 안과가 불어나고, 내가 가는 병원마다 환자로 붐빈다.
대단치도 않은 그 눈병 앓이를 하면서 나는 인간에게서 건강이 무엇이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어떠한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십에 가까운 나이, 이제 신이 주신 나의 체력은 어느덧 한계를 고했는데, 나의 삶은 여전히 매캐한 매연과 성분을 알 수 없는 공해 속에 시달려야 한다니. 이것이 나이를 먹는 모든 생명의 운명인지, 아니면 이 땅에 살아야만 하는 특별한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향후 나의 병 앓이는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약해지지는 않을 성싶다.
나이를 한 두 살 더 먹는다는 것은 결국 싸워야 할 유무형의 질병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아닐까? 특히 우리 나라 같이 국민의 건강에 별다른 관심도 제도적 장치도 없는 곳에서, 건강하게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건강하게 생존한다는 것은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이때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은 무엇이고 또 가치 있게 남겨야할 일들은 무엇일까? 꼬리를 물어 이어지는 상념 끝에, 나는 이제 새로운 삶의 가치관이라든지 원칙 같은 것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지금까지 내가 몸담아 왔던 일에 대해 좀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연구하고 공부할 것. 그간 여러 방면으로 흩어졌던 삶의 에너지를 집중할 것. 둘째, 누구보다 가까운 나의 가족에게 좀더 따뜻한 시선을 보낼 것. 그러나 가족이 전부가 아님을 명심할 것. 셋째, 전문활동을 통해 그간 모았고 또 앞으로 모을 수 있는 재산의 삼분의 일 정도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기부할 것. 특히 예술비평가들의 활동을 진작시킬 수 있는 비평기금 마련을 위해 돈을 쓰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할 것. 그러기 위해서 검소하게 생활할 것.
여름 한철 질긴 눈병 덕분에 올 가을에는 내 삶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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