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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 부부의 반세기 주택연대기...강인숙의 ‘글로 지은 집’
글쟁이 부부의 반세기 주택연대기...강인숙의 ‘글로 지은 집’
  • 최승우
  • 승인 2023.03.07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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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글로 지은 집』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389쪽

한국 사회에서 ‘집’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투자재’이며 한국인의 ‘최종 목적지’이다. 우리에게는 유목민처럼 게르를 이고 다닐 초원도 없고 보헤미안이 될 수도 없다. 집을 가진다는 것은 짧게는 수 년(기적이 닿는다면), 길게는 수 십년을 노동해야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감내한다는 뜻이다.

오래전 이미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고 일찌감치 현실과 악전고투했던 인생 선배의 책이 나왔다. 강인숙 작가의 『글로 지은 집』이 그 것이다. 부연하자면 그녀는 그 유명한 석학 이어령의 아내다. 남편의 유명세가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밀린 감이 있으나 저자 역시 관록의 원로 문학평론가이다.

이전까지 필자가 지레 짐작하던 이어령 부부의 이미지는 고생 한번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온실 속의 화초‘였다는 것을 미리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어령의 커리어는 누가 봐도 그저 탄탄대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어령의 아내로 산다는 것                     

글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천하의 이어령도 한때는 흙수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돈 몇 푼에 쩔쩔매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좌절하고 욕망을 억눌러야 했던 대목에서는 애잔함과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문인들은 대부분 가난을 벗 삼는데 이들 부부 역시 빗겨나갈 수 없었다.  

저자는 담담하고 솔직한 문체로 몰입감을 더한다. 그녀가 바라보는 남편으로서의 이어령은 자못 생경하고 신선하다. 지금까지의 이어령론은 모든 것이 그의 시선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이, 그러니까 가장 가까운 아내가 바라보는 이어령은 색다를 수밖에 없다.

마치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를 그려냈던 『한중록』같은 느낌마저 준다. 둘의 공통점은 여인의 시각으로 가족과 세상을 관망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시야를 넓혀보면 펄벅의 『대지』가 연상된다. 맨손이었던 왕룽과 오란이 훗날 일가를 일궈내듯 이어령·강인숙 부부 역시 눈물의 더부살이를 거쳐 가문을 탄생시킨다. 

저자에게는 한때 의사 청혼자도 있었고 같이 유학할 비용도 다 대주겠다던 부유한 남자들도 있었다. 이들을 마다하고 ‘가난한 이어령’을 택한 이유가 있었는데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불균형한 결혼을 하면 마음이 다친다”라던 어머니의 뜻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탁월한 선택이자 ‘신의 한 수’였다. 좋은 학교만 나왔지 보잘 것 없어 보였던 남자는 훗날 문단에 파란을 일으키며 언론사 주필을 거쳐 문화부 장관, 끝내는 한국 인문학의 상징이 되고 만다.

 

떠돌이 생활의 시작

부부가 살림을 차렸던 청파동 3가의 이층집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곳이었다. 항상 북적였고 김승옥, 김지하, 김현, 김남조, 불문학자 김하영처럼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거쳐갔다. 아기가 있는데 방은 하나니까 아빠의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이어령은 1960년에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강사를 했고 세 번이나 셋방을 옮겨 다녔다. 강인숙은 그곳에서 4·19를 목도한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의거였으며 동시에 무질서와 혼란이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같이 나서고 싶었지만 그녀는 갓 태어난 아이를 둔 엄마였다. 참여하지 못하고 바라만 볼 수 없었던 상황을 안타깝게 서술한다.

혁명의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부부는 유목민처럼 또 다른 터를 향한다. 한강로 2가 100번지, 해방 후 남은 일본식 적산가옥이 새 거처였다.

강인숙은 대학원과 육아를 병행하는 슈퍼 맘 생활을 한다. 육아 문제로 골몰했던 일들, 난처한 상황들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적혀있다. 요즘처럼 법적인 제도도, 지원도 일절 없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첫 집을 사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부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알토란같은 돈을 모아 신당동에 첫 자가주택을 마련한다. ‘신당동 304-194’라는 주소는 그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그리고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신기하게도 이 시기부터 이어령은 걸핏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버릇이 없어졌다. 5인 가족을 짊어진 가장이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무게감은 자유로운 ‘천하의 이어령’마저도 바꾸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세 번째 아기 옆에 누워서 나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생각했다. 아이가 셋이 되면 하늘 옷이 있어도 하늘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무꾼이 선녀에게 하늘 옷을 돌려준다.

아이가 셋이면 하늘 옷이 손에 있어도 지상을 이탈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지상과의 거리가 그만큼 좁혀지는 걸 느끼는 그런 증상들은 우리가 이미 청년기를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베르테르식 감상적 세계와 제임스 딘 같은 반항아의 세계와는 인연을 끊어야 할 어른의 시기가 온 것이다.” 

평안하던 어느 날 난데없는 총성이 들렸다. 사람들은 5·16 군사정변이라고 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사정권은 이어령의 글도 검열했다. 어느 날은 글의 전문을 삭제하기도 했다. 급작스런 화폐개혁도 이뤄졌다. 불안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귀한 인맥들을 만났으며 직장 주선도 받았고 남자아이 둘을 낳았다. 저자는 석사가 됐고 문학평론가로 데뷔했으며 남편은 『흙속의 저 바람속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처음으로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일까. 아름다운 기억 덕택에 그들은 본적을 신당동으로 정하기로 했다.

정든 신당동을 떠나 성북동 1가의 이층집에 자리 잡았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와 친분을 쌓았다. 한창 데이트를 하는 젊디젊던 김승옥도 놀러왔다. 아무래도 일반인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전형적인 인텔리의 일상이다.

 

신이 허락한다면 우리는 이 집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

작고한 부군 이어령의 동상 앞에서 저자 강인숙. 사진=영인문학관 인스타그램

오늘날의 부촌 이미지가 무색하게 1970년대 평창동은 풍광이 좋았지만 전신주와 외등도 없던 그야말로 허허벌판의 대지였다. 부부는 시선을 평창동으로 돌렸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는 서울에서 제일 땅값이 싼 곳이었다며 솔직한 심정을 고백한다.

그들은 개척자였다. 집을 짓기 위해 화강암 암반지대를 깨고 수로를 팠다. 설계도, 투시도, 천장 처리와 난방 등 전문적인 건설용어들과 동시에 여러 가지 난관과 이를 격파하는 지혜로운 방법들이 나온다.

33년의 세월을 그 집에서 보냈다. 부부가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 가장 큰 집, 가장 많은 가족들이 살았고 가장 오래 산 집이었다.

둘이었던 남녀가 어느새 손자를 포함한 열여섯 명의 대가족을 이끄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다.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분가하고 다시 둘만 남은 세월이 왔다.

작가는 “북적이던 집에 나간 자리가 살펴져서 슬프고 외로웠다”라고 술회한다. 주택 연대기의 최종 진화이자 마침표는 ‘영인문학관’건립이었다. 노부부가 살기에는 너무 큰 집이었고 그저 땅을 놀리기보다는 뜻 있는 일에 쓰고 싶었다.   

문학관을 짓는 와중에 버클리대를 막 졸업한 외손자가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듣는다. 건축공사는 막바지 단계여서 정신이 없었다.

일꾼들은 맥이 빠져서 다리가 헛노는 저자를 놔주지 않았다. 막바지에 이른 공사판의 매커니즘과 가슴뼈가 무너져나가는 개인적 상실감이 범벅이 돼 미친 춤을 추는듯한 끔찍한 회오리 속을 겪었다.

문장에서 애절한 고통과 흐느낌이 강력하게 느껴진다. 마치 부친상을 당한 날 코미디 클럽에 올라야 했던 어느 코미디언의 감정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저자 특유의 담담한 필체 때문에 많은 슬픔이 축약되거나 생략돼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내용이 장녀 이민아의 죽음이 아닐까 싶다. 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남편 이어령이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로 설명한 바 있다.

저자는 근 반세기에 가까운 주택 연대기에서 딸과 손주를 하늘로 떠나보내는 고통을 겪었다. 이 책은 주택 연대기지만 달리 표현하면 가족의 탄생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는 그런 과정의 반복 속에서 다시 홀로 남는 생의 수레바퀴를 깨닫는 것이다. 든든했고 한편으로는 영 시원찮아 웃음을 줬던 남편 이어령 역시 몇 년 전 딸과 손주를 따라 하늘로 떠났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아름다우면서도 시리고 쓸쓸하다.  

“신이 허락한다면 우리는 이 집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 평창동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우니 어느 철에 가도 무방하지만 이왕이면 송홧 가루가 시포숄처럼 공중에서 하느작거리는 계절이면 좋겠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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