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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17] 훔볼트 해류 흐르던 곳에서 이젠 짬뽕속으로, 훔볼트오징어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17] 훔볼트 해류 흐르던 곳에서 이젠 짬뽕속으로, 훔볼트오징어
  • 권오길
  • 승인 2023.03.08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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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오징어와 대왕오징어
훔볼트 오징어. 사진=위키미디어
'훔볼트'라는 이름은 이 오징어들이 훙볼트 해류를 따라 분포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위키미디어

EBS의 다큐멘터리 ‘극한직업(extreme job)’ 중에서, 남미 페루 어부들의 ‘훔볼트오징어(Humboldt squid)잡이’(방송에서는 ‘대왕오징어’로 표기함)를 얼추 1시간 동안 정신없이 봤다. 연체동물학(軟體動物學, Malacology)이 내 전공인지라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극한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삶을 밀착 촬영해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훔볼트 오징어잡이’ 방송은 비록 주인공인 페루 어부들은 무척 힘들어할지라도, 보는 사람은 흥미진진하였다. 어부들은 큰 오징어를 잡자마자 상하지 않게 내장을 바로 들어내고, 얼음에 쟁였다. 그리고 방금 꺼낸 내장은 다른 오징어잡이 미끼로 사용하였으며, 성깔 있는 놈들이라 잡혀 끌려 올라오는 와중에도 죽기 살기로 물과 먹물을 퍼붓듯 내뿜는다. 먹물(ink)은 피부에 닿으면 염증이 생기고, 가렵기에 얼굴에 묻는 즉시 재빨리 씻어내고, 피부에 닿지 않게끔 장갑을 낀 채로 작업한다. 그리고 오징어의 입(부리, beak) 근육은 어부들이 간식으로 먹는데, 닭고기 맛이라 한다. 그리고 훔볼트오징어는 페루에서는 잘 먹지 않고 되레 칠레에서는 인기가 있다 한다.

훔볼트오징어는 페루 등 태평양 동부에 서식하는 심해 대왕오징어의 일종으로서, ‘훔볼트’라는 이름은 이 오징어들이 남아메리카 연안에서부터 태평양 북동부로 흐르는 '훔볼트 해류(Humboldt current)'를 따라 분포하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또한, 훔볼트오징어가 처음 채집된 곳이 훔볼트 해류가 흐르는 곳이라 훔볼트란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근래에는 북으로 이동 분포하여 캐나다 밴쿠버 쪽에서도 잡힌다고 한다. 훔볼트오징어는 '점보 스퀴드(jumbo squid)', '점보 플라잉 스퀴드(jumbo flying squid)', 붉은 악마(red devil, Diablo rojo)' 등으로 부르며, 가문어(假文魚)라고도 한다. 가문어란 가공한 대왕오징어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맛과 모양이 문어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몸길이 2m에 체중 45kg까지 자라며, 수명은 1~4년으로 추정한다. 순간 속력은 무려 72km/h이며, 주로 수심 200~700m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사촌뻘인 문어(文魚, octopus)만큼이나 머리가 좋다고 한다. 작은 어류나 갑각류를 주식으로 삼고, 큰 먹이를 사냥하는 수도 있으며, 다치거나 병든 힘 약한 동족(同族)을 서슴없이 잡아먹는(cannibalism: 동족 살생)다. 성질이 대단히 사납고 여느 오징어와 달리 흡반(빨판, sucker)을 따라 날카로운 이빨 같은 갈고리가 늘어서 있는데, 특히 긴 두 촉수(觸手, tentacle)에는 100~200개의 칼날 같은 예리한 빨판이 있고, 빨판으로 먹이를 붙잡아 부리(입)로 끌고 간다. 

그런데 심해어라서 여러 생태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한다. 특이한 점으로는 다른 두족류가 그렇듯이 피부의 색깔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개체 간에 소통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지름이 3~4m인 알덩이(egg mass)를 낳는다는 것도 근래 알려졌다고 한다.

주로 어획하는 나라는 멕시코와 페루, 칠레 등이고, 오징어처럼 밤에 엄청나게 밝은 조명을 바다에 비춰 배로 유인해서 잡는다. 그리고 훔볼트오징어는 우리가 즐겨 먹는 살오징어(Todarodes pacificus)처럼 다리는 10개이며 2개의 긴 다리(tentacle)와 8개의 짧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울릉도 살오징어는 페루 훔볼트오징어의 축소판(닮았다)이라 하겠다. 

그런데 식용이 가능한 훔볼트오징어와는 달리 대왕오징어는 고기가 너무 맛이 없어서 식용하지 않는다. 훔볼트오징어 최대 수입국이 한국이란다. 중국집 짬뽕에 들어있는 동전만 한 하얀 고기가 바로 훔볼트오징어이고, 훔볼트오징어를 문어 혹은 국산 오징어라고 속여서 판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보는 문어발은 대부분 훔볼트오징어의 다리이다.    

스코틀랜드 해안가에서 발견된 대왕 오징어의 사체. 사진=위키미디어
스코틀랜드 해안가에서 발견된 대왕오징어의 사체. 사진=위키미디어

끝으로 대왕오징어(Architeuthis dux, giant squid)를 간단히 살펴보겠는데, 대왕오징어는 말 그대로 초대형 오징어이고, 흔히 식용으로 쓰이는 큰 오징어는 훔볼트오징어이며, 누차 말했듯이 대왕오징어는 식용이 불가하다. 대왕오징어는 유황이나 암모니아를 연상시키는 고약한 냄새가 나고, 살은 자동차 타이어를 씹는 것 같은 맛이 난다고 한다.

훔볼트오징어도 심해어라 부력(浮力)을 높이기 위해 몸에는 염화암모늄(ammonium chloride) 농도가 매우 높다. 그렇기에 먹을 만하다는 훔볼트오징어도 맛이 짜고 씁쓸하기에 1%의 젖산(lactic acid)과 구연산(citric acid)에 3시간을 쟁여두어 거슬리는 맛과 냄새를 없앤다. 그리고 설령 대왕오징어를 식용한다 해도 대왕오징어 개체 자체가 매우 적으므로 어획에 채산성이 맞지 않으며, 국제적으로 보호 대상이 되어 어획이 불가하다.

대왕오징어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몸길이를 가진 두족류로, 몸길이는 촉수를 포함하여, 가장 긴 수컷이 10m, 암컷이 13m로 더 크다. 대왕오징어는 보통 해안에 밀려온 사체나 향유고래의 위장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구하는데, 주둥이에 매우 큰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다리의 빨판도 매우 크고, 눈알이 농구공만 하다고 한다. 그리고 대왕오징어는 큰 신경(神經, nerve)을 자랑하고 있기에 신경과학자들의 실험대상용으로 호평을 받는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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