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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여부 규명 쉽지 않아···"성실한 교수들에게 큰 피해"
표절여부 규명 쉽지 않아···"성실한 교수들에게 큰 피해"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8.04 0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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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김병준 교육부총리 사태, 의혹과 해명

지난 일주일 사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돼 결국 교육부총리 최단기 사퇴를 이끌어낸 '김병준 사태'의 쟁점은 제자논문 표절의혹, 동일논문 학술지 중복게재, 연구실적 부풀리기, 성북구청 프로젝트 위해 박사논문 봐주기 의혹 등이다.

첫번째 의혹은 제자논문 표절 관련. 故 신용우 박사의 ‘도시재개발 지역주민의 정책형태에 관한 연구’(1988.02)라는 박사학위 논문 중 일부를, 당시 신 씨의 지도교수였던 김 부총리가 한국행정학회의 학술지에 ‘도시재개발에 대한 시민의 반응; 세입자를 중심으로’(1988.06)로 게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지난 1일 국회 교육위원회 개최에 앞서 배포한 해명자료에서 “그 논문은 그 전 해인 1987년 12월 한국행정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이미 발표했고 신 박사와 연구방법, 관점 등이 달라, 언론의 오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부총리는 “제자에게 서베이 틀과 문항 디자인을 도와주면서 서베이 자료를 공유하기로 약속을 했고, 이는 사회과학 부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자료 공유약속이 사실이라 해도 공동연구자 명의가 아닌, 김 부총리 개인의 연구인 것처럼 한다는 게 과연 합당한 지는 쟁점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신 박사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서베이 자료 공유약속’ 여부와 함께 ‘제자의 자료를 스승이 도용’한 것인지 ‘스승의 전폭적 도움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했는가의 과정상 문제는 의문으로 남는다.

또한 김 부총리 측은 두 논문의 표절여부를 한국행정학회에서 의뢰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에서는 성명서에서 “사태를 적당히 얼버무리는 행동으로, 표절 의혹 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김 부총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행정학회가 아니라 다른 학문적 기구가 심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김 부총리가 한국행정학회의 총무이사직를 역임한 데 따른 것으로 상피를 고려한 것. 사실 국내 행정학 분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있는 한국행정학회를 제외하면, 유사 분야로 한국정책학회와 한국정치학회가 있지만, 김 부총리의 경우 이 학회들에서도 총무이사(정책학회)와 부회장(대한정치학회)을 지낸 바 있어, 상피제를 통해 공신력 있는 학회에 표절여부를 의뢰한다는 것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한국행정학회는 2년 전 표절의혹이 제기된 논문에 대해 편집위원회에서 표절로 결정하고, 지난 연말 연구윤리 규정을 정한 바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학회들이 표절 의혹이 일 때 감싸기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세부전공으로 들어갈 때 국내 학계의 인적 네트워크가 협소하기 때문에, 용기있게 나서는 학자가 드물뿐더러, 이미 학회심사를 통과한 논문을 재심사해서 표절로 규정하면 학회의 신뢰는 물론 해당 편집위원회의 권위가 상실되기 때문에 문장의 완전일치가 아닐 경우 표절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김 부총리와 관련한 두번째 의혹은 한양대 '자치행정연구'에 실렸던 논문 ‘지방자치단체의 개방형 임용에 대한 소고-의의와 도입상의 기본원칙’(2001.01)을 국민대 사회과학연구에 ‘지방자치단체의 개방형 임용제에 관한 연구’(2001.12)라는 제목으로 중복게재한 문제.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국민대 사회과학연구소 논문집은 논문재게재를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회과학연구소 소장과 편집장, 간사, 편집위원을 역임했던 일부 교수들은 “명문화된 내규를 본 적이 없고, 중복게재를 허용하는 원칙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 2일자 중앙일보에서는 중복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국민대 사회과학연구소의 논문집 ‘사회과학연구’ 규정을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대 대부분의 교수들이 1년에 3백만원의 교내 연구비를 받고 있으며, 그 연구결과를 국내외 학술지 및 교내 논총에 게재, 이를 연구업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김 부총리를 비롯, 중복투고된 일부 논문들이 이 연구결과물로 제출된 것인지의 여부도 철저히 파헤쳐져야 할 부분으로 남아 있다.

세번째, BK21사업과 관련 두 건의 논문을 실적으로 보고한 부분에 대해, 김 부총리는 ‘작성과정에서 실무자의 실수로, 궁극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며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구팀에서 이미 연구실적 기준을 두 배 넘겼기 때문에 연구비 수령은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학과내 사업도 학과장에게 보고·결재를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데, 교육부에서 시행하는 대규모 사업인 BK21의 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연구책임자가 본인의 연구실적에 대해 실무자의 탓으로 여긴다는 것은 교육부의 수장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네번째 의혹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로 작성된 ‘공익적 시민단체의 정책적 영향력에 관한 연구: 지방 자치제도 관련 활동을 중심으로’(한국지방자치학보, 1998.08)와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 시민단체의 영향력: 지방자치관련 제도개혁을 중심으로’(사회과학연구, 2000.02)라는 논문이 내용이 흡사하고, 이 두 논문을 BK21실적으로 함께 올린 부분이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BK21의 예산은 교수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원생의 장학금 성격이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BK21사업성격으로 비춰볼 때 타당한 주장이긴 하지만, BK21 사업이 진행되기 전에 발표했던 논문을 다시 BK21 실적으로 제출한 것에 대한 비판은 빠져나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성북구청 연구용역을 둘러싸고 일어난 의혹. 2001년 김 부총리는 성북구로부터 ‘21세기 성북비전을 위한 행정수요 조사’라는 과제를 수주, 그 연구결과를 이용해 구청장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고 겸임교수의 위촉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언론의 추측.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설문조사 자료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나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는 별개의 연구수행”이라며 “02년 진영호 전 성북구청장 겸임교수로 위촉 시에 평교수라 의사개입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밖에도 중복게재 의혹 논문 ‘지방의회의 구성과 운영’(한국행정연구, 1998)과 ‘한국 지방의회의 개혁 방향과 과제: 구성과 운영 문제를 중심으로’(사회과학연구, 1998) 등도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김 부총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주경복 민교협 교육특위위원장은 “황우석 사태 이후 연구윤리가 강조되는 시기에 교육부의 수장으로, 개혁의 주체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계속 업무를 수행할 경우 교수사회가 교육부의 업무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윤리적 교육개혁 정신에 입각해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행정학회 회원인 서울 지역 대학의 한 교수는 “관행을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잘못된 관행이 공직의 면죄부는 될 수 없다”고 말하며, “교수사회를 지탱하는 교수들은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며 연구실에서 묵묵히 연구하는데, 김 부총리의 관행이 오히려 이들의 사기를 저하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관행에 대한 정당화는 곧 학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어 김 부총리의 자성이 철저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인 박길성 고려대 교수는 “고려대 학문윤리 규정마련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번 김 부총리 건으로 더욱 빠르게 준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부총리 사퇴 이후 국민대에 복직하는 문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상 참여정부 임기내 공직진출이 어려워짐에 따라 대학 조기복귀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 복직 여부에 대해 국민대의 한 관계자는 “휴직사유가 소멸됐기 때문에 ‘30일 이내에 임명권자에게 신고하고 임명권자는 지체없이 복직을 명해야한다’는 규정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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