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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의료폐업과 스포츠의 문화적 함의
[문화비평] 의료폐업과 스포츠의 문화적 함의
  • 김진석 인하대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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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2:27:47
김진석 / 인하대·철학

문화적인 것이 끝없이 팽창하면서 새로운 기괴함을 드러내고 있다. 예 하나. 의사폐업이 가져온 역설적 효과 중 으뜸인 것은, 이제 의료가 단순한 의학적 대상에서 문화적 대상으로 이동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의료를 문화적 대상으로 만드는 몇 가지 질문들: 의사들은 그들이 누리는 사회적 위치에 걸맞게 지식인다운 책무를 다했는가. 약사들의 임의조제나 대체조제에 문제가 있다면, 의사들도 자신이 처방하는 약들의 구체적인 효능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또 무조건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시대적 욕망은 ‘의약 자본주의’에 의해 유발되고 뒷받침되는 것은 아닌가.이런 문화적 인식의 결과로 우리는 의사-전문가의 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육체를 발견한다. 물론 이 상황은 의사들의 폐업에 의해 비로소 유발된 것은 아니다. 이미 사람들은 비교적 자발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육체를 미학적 대상으로 만들었으며, 특히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기울이는 관심은 각별하다. 의료 차원에서 전문가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해도 개인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육체를 의학적인 대상에서 문화적-심미적인 대상으로 변형시킨 것이었다.

예둘. 스포츠는 이제 문화에 단순히 이질적인 체육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핵심을 이룬다. 과거 ‘문화체육부’라는 부처가 있을 때 지식인들은 문화와 체육의 결합체를 조롱하기도 하였지만, 이제 그러한 대응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물론 우리는 사마란치 위원장 이후 올림픽은 경기 기록을 경신하는 데 못지 않게 상업주의의 기록을 경신하는 데 몰두하며, 올림픽 경기는 감상적 국가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으며, 또 선수들의 몸판이 초국적 기업들의 광고 간판이 되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은 지적인 비판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듯하다. 현실 문화의 차원에서 사람들은 비판적 관점을 맹점 뒤로 슬그머니 밀어낸 채 경기를 즐기고 있기에. 그래서 한편으로는 비판적이면서도 무지무지하게 열심히 게임을 즐긴다는 도착증 혹은 분열증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문화적 분열증.

예 셋. 문화를 심화시키고 확장시키는 데 빠질 수 없는 듯한 치명적인 경쟁의 문제. 거시적 구조 차원에서 비교를 하자면, 원시 시대의 놀이와 의례는 처음에는 불균형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정한 호혜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그 의미를 가졌었다. 반면에, 현대적 스포츠는 처음에는 원칙적인 평등을 말하면서도 최종적으로 1, 2, 3 등을 나누면서만 끝난다. 여기서도 경쟁을 다만 비판하거나 개탄하는 일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가만히 보면 문화를 세련시키고 고양시킨 커다란 요인 중 하나는 타자에 대한 차별성의 욕망일 터이니. 더 나아가 우리는 전통적인 문화 형식들에 대해 스포츠 경기가 갖는 우월함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전통적인 문화 예술이 작품을 판별하는 잣대를 잃어버리고 거의 문화 자본 안에서의 사교술이나 기획 관리에 종속되는 경향을 보인다면, 스포츠는 경쟁의 기준이 명확할 뿐 아니라 그 기준에 따라 측정하는 방법도 비교적 확실하다. 스포츠의 냉정한 경쟁이 문화적으로 더 공정하게 보일 수 있는 상황.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를 문화적으로 구성하고 거기에 투자하며, 육체의 스펙터클이 제공하는 재미를 만끽하고, 육체를 경쟁의 파도 위에서 출렁이고 일렁이게 만들었다. 물론 우리는 건강 자본과 스포츠 자본, 그리고 경쟁을 부추기는 권력의 다양한 기제들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육체가 단순히 문화 자본이나 파시즘에 종속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노동뿐 아니라 레저까지 통합한 지금의 문화자본이 경제보다 더 큰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더 강력하게 현실을 재생산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화권력을 전복해서 다시 민중에게 헤게모니를 줘야한다고 해야 할까? 극우적 성향이나 태도는 비판하고 또 바꾸도록 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거꾸로 ‘민중’을 이상주의적으로 설정할 필요는 없다.

개인들이 비교적 자발적인 방식으로 자신이나 타자의 육체를 구성하는 경우, ‘문화 헤게모니’라는 당위에 집착하지 않는 문화 분석은 그 상황을 포착하고 서술해야 한다. 개인의 자발성은 무조건 존엄한 것도 아니지만 단순한 자기기만도 아니기에. 자유와 자발성의 이름 아래 개인들이 스스로를 문화적 주체로 구성하는 것은 환상이면서도 현실이 아닌가. 문화가 이질적인 영역들을 통합할수록 개인들은 어쩔 수 없이 분열하면서 대응할 터인데, 이 분열은 나쁜 것만도 아니다. 망상에 빠지기 쉬운 개인의 ‘문화적 자발성’을 뒤흔들고 괴롭힐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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