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8:50 (금)
평가는 학계에서 … 비등재지도 지원해야
평가는 학계에서 … 비등재지도 지원해야
  • 조만형 한남대
  • 승인 2006.07.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수논평

▲조만형 한남대 ©
학문이나 연구를 주업으로 하는 학자들에게 논문은 자신의 지식을 창출해서 유통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는 동료 학자들의 심사(동료평가, peer review)를 거쳐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통로이다. 물론 지식은 전문학술지 외에도 다양한 매체로 유통될 수 있지만 학술지는 논문이 게재되기 전에 동료들로부터 비판과 검증을 받아 출판된다는 점에서 일반 잡지와 차별화되고, 학술지의 권위는 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의 우수성에 따라 결정된다. 학자들은 학문연구활동의 결과를 권위 있는 학술지에 발표하여 자신들의 연구업적을 평가받을 뿐만 아니라 학문의 발전과 국가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과 같이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학술지들은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장기간에 걸쳐서 까다롭게 심사한 후 논문을 게재하기 때문에 거기에 실린 논문들은 누구나 학술적 가치를 인정한다. 그러한 논문들은 자연히 다른 학자들이 많이 인용하게 되어 소위 말하는 인용지수가 매우 높다.

모든 학회들은 회원들의 학술교류의 장으로서 학회지를 발간하고 권위 있는 학회지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에서 주관하는 국내학술지 평가사업도 궁극적으로 학회들이 우수한 학술지를 만들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취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항간에 학술지 평가에 대해서 이런저런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좋은 학술지를 만들기 위해서 학회와 국가가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1998년부터 시작된 학진의 학술지 평가사업은 최소한 국내학술지의 형식적 완성도를 상당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

물론 형식적 완성도가 내용적 우수성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학술지의 체계가 매우 열악한 우리나라에서 형식적 측면에서라도 어느 정도 학술지의 모습을 갖추도록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학술지를 등재(후보)지와 비등재지로 구분하고 대학과 연구지원기관에서 등재지에 게재된 논문만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하면서 학술지 평가의 파장이 커지고 비판의 수위도 높아졌다. 논란의 초점은 ‘학술지 평가를 국가가 해야 하는가’의 원론적인 문제와 ‘등재지만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해야 하는가’의 활용적인 문제로 귀착된다. 먼저 학술지는 어떤 식으로든 평가될 수밖에 없는데 다만 평가의 주체가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학자 커뮤니티가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논란이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학술지는 학자들의 내적 원리와 학문적 양심에 따라 학자 커뮤니티가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이언스’지의 권위는 영국이나 미국 정부가 인정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거기에 실린 논문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학진에서 수행하는 학술지 평가는 학술 커뮤니티가 양심과 자율의 원리에 따라 권위 있는 학술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주는 보조적인 역할로서 사업의 의의를 가져야 할 것이다.

국내 학술지가 ‘사이언스’지처럼 정말 엄정하고 심도 있는 심사과정을 거쳐서 논문을 생산한다면 당연히 국가가 학술지 평가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 현실에서 솔직히 많은 학술지들이 각종 인연과 동정 때문에 논문 아닌 논문을 양산하고 있지 않는가.

등재학술지의 활용에 대해서는 활용하는 주체의 처지에 따라서 결정하면 될 것이다. 먼저 대학의 경우에 등재지만을 교수들의 연구업적에 포함시키는 것은 학진에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각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어쩌면 대학들이 행정적으로 편리하기 때문에 또는 그래도 등재지가 어느 정도 검증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등재지만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다. 그렇지만 모든 대학들이 그렇지는 않다. 내가 아는 K대는 연구업적을 평가할 때 논문의 숫자에 관계없이 대표적인 논문 2편을 제출받아서 외국의 저명한 학자에게 심사를 의뢰해서 평가한다. 대학에서 등재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대학이 결정할 사항이지 학진이 지시할 사항은 아니다. 문제는 학진처럼 연구지원기관에서 연구과제의 지원자격 조건으로 등재지 논문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데 있다.

학진에서는 연구를 수행하려면 학자들이 지원하는 연구주제에 대해서 최소한 몇 편의 논문이 있어야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논문의 요구조건에 관한 논란은 논외로 하고 논문게재를 꼭 등재지에 한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학문영역에 따라서 학술지  형식은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학술적 능력이 표출되는 논문은 다양한 형식으로 발표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재지는 획일적인 형식기준을 통과한 학술지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학문의 소통을 막을 수 있고 정보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지원기관들은 등재지를 포함해서 비등재지의 논문도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다양한 학문분야의 연구를 연구에 반영할 수 있고 새로운 학문영역이 등장하는 것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학술지 평가는 결국 학술 커뮤니티의 건전성과 신뢰의 수준에 비례하는 것 같다. 의학 분야의 학술지는 이미 학문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학술지를 평가하고 있다. 등재지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등재지를 만들려고 각종 서류를 조작하는 학회와 유령 논문을 투고하는 학자들의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 학진의 학술지 평가는 학자들이 생산한 논문을 대상으로 학자들이 직접 평가하기 때문에 학자들의 평가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학술지 평가와 같은 사업에 예산과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도 학술 커뮤니티가 자체적으로 학술지의 수준을 평가한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시대가 가능한 한 빨리 왔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