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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_미국의 유교연구 현황
학술동향_미국의 유교연구 현황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7.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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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머티즘과 儒敎의 대화 … 토착화 멀지 않아

‘동양철학연구’ 제46집에 실린 장원석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의 ‘미국학계의 유교연구 현황’은 최근 5년간 미국에서 이뤄진 유교연구를 총괄해서 검토하고 유형별로 잘 정리해서 보여줌으로써 연구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듯하다.

‘道’, ‘天’ 등 핵심개념 번역의 오류 짚어

 장 연구원은 최근 미국의 유교연구를 ‘고전의 번역과 재인식’, ‘세계철학으로서의 유교연구’로 특징짓고 있다. 그는 “전근대문명의 파편을 확인하는 태도로 시작된” 영미권 유학 연구가 세대교체를 이루고 나이가 젊어지면서 진지해지고 깊어졌다고 말한다. 고전 다시읽기가 일종의 붐을 이루고 있는데, ‘주역’, ‘중용’, ‘맹자’, ‘논어’에 대한 번역과 연구서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는 철저한 고고학적, 역사문헌적 지식을 근거로 기존 장들의 순서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과정에서 안이한 개념번역에 대한 비평도 이뤄진다. 로저 에임즈(Roger T. Ames)는 제수이트 선교사들로부터 시작해 제임스 레그(James Legge)에 의해 일단락된 1세대의 해석학적 선입견을 들춰낸다. 天을 단수형 Heaven으로 번역할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서양인들이 그것이 조상과 문명의 축적을 의미하는 동양의 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道를 습관적으로 Way로 번역하는 건 어떤가. 도라는 개념을 명사로 이해하는 이런 태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의 속성’과 ‘행위의 양식’이라는 존재구분에 근거한 것 아닌가. 사실 道는 동명사적인 ‘길 만들기’로 읽거나, 주관적 느낌의 형용사로 읽어야 할 때가 많다는 게 에임즈의 지적이다. 이런 난숙해진 연구를 바탕으로 2003년과 2005년에 1천페이지가 넘는 유교백과사전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유교의 토착화가 이제 멀지 않았다는 징후일까.

그 다음은 세계철학으로서의 유교의 부활이다. 이는 뚜 웨이밍 하버드대 교수가 제1의 물결(유교의 태동기), 제2의 물결(송, 원, 명, 청의 부흥기)에 이어 현대에 유교의 제3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런 흐름과 관련하여 로버트 네빌(Robert C. Neville)의 ‘Boston Confucianism; portable Tradition in the Late-Modern World’(2000)는 미국에서의 유교연구가 ‘타자’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자기’에 대한 연구로 전환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그리스인이 아니면서 플라톤주의자가 되는 것에는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인이 아니면서 儒家가 되는 것은 어떤가”라고 그는 말한다. 네빌은 20세기 초의 유교 소외현상은 유럽대학 모델을 전세계로 이식하면서 유교를 커리큘럼에서 배제시킨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 인도철학 전통이 삭제됐다가 나중에 일부만 복원된 것이 그 예다.

그래서 네빌의 핵심적 주장 중의 하나는 유교 경전을 미국 대학교육에서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미국인들이 “인간들이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적 관습을 형성하고, 개인이 커다란 가족적·공적 네트워크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데 유가의 철학이 큰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이런 인식 속에서 미국 학자들은 유교전통의 풍부함을 강조하는데, 주로 프래그머티즘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런 작업은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 프래그머티즘을 대표하는 철학자인 존 스미스(John Smith)가 왕양명과 프래그머티즘을 비교한다든지, 프래그머티즘의 관점에서 왕양명의 인식론을 재정초하는 워렌 프리시나(Warren Frisina)의 ‘The Unity of Knowledge and Action’(2002)은 대표적인 저술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서양철학사 속에서도 비교적 새로운 흐름인 프래그머티즘이나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정도만이 유일하게 동양철학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며, 이 둘을 같이 읽을 때 서양인들의 ‘과정적 사유’가 폭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는 조셉 그랜지(Joseph Grange)의 ‘John Dewey, Confucius, and Global Philosophy’(2004)가 있고, ‘창조성’(Creativity)을 중심으로 주희와 그 후계자들의 개념을 분석한 존 버쓰롱(John H. Berthrong)의 ‘Concerning Creativity’도 이런 맥락에 서 있다.

유교를 통한 인권 탐구, 주역을 통한 존재-해석학도

그 외에 유교를 통해 인권을 탐구하는 흐름이 있다. 스테판 에인절과, 콩 로이 순 등이 이끄는 이런 흐름은 중국철학과 인권의 주제를 현대 중국정치와 연결하여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철학’이란 잡지의 편집자인 Cheng Chung-ying은 현대의 해석학적 전통, 하이데거, 화이트헤드를 원용하면서 주역을 중심으로 하는 존재-해석학을 창출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주역의 ‘觀’ 괘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그의 저작이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모종삼의 칸트연구가 일면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칸트, 볼프, 라이프니츠의 계몽주의 철학전통이 실제적으로 주자학과 대화했고 그 영향이 어떻게 칸트 철학에 나타나고 있는지를 모종삼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장 연구원은 이런 주요한 흐름들을 요령껏 요약해 보여주면서,  아시아에서 발원한 유교가 현대에 들어 서양 국가에 퍼져 나가면서 그들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동시에 유교가 어떻게 다양한 형태로 토착화되어 그들의 내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는가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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