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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기억 휘젓고 메시지 뒤틀다
유튜브, 기억 휘젓고 메시지 뒤틀다
  • 서영호
  • 승인 2023.03.03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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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유튜브 시대에 문화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서영호 지음 | 푸른사상 | 264쪽

‘레트로·뉴트로’의 참고 자료실 기능 넘어선 유튜브

기록 과잉의 유튜브에서 기억은 망각·왜곡

2000년대 이래 문화는 당대의 독자적 감각과 시대정신을 구축하기보다 옛 영광을 재활용하는 데에 더 치중하고 있다. 가수들은 새 곡을 내기보다 옛 곡을 새로 부르고, 방송은 자꾸 옛 노래를 재발견하겠다면서 ‘전설’의 가수를 소환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옛 시대에서 그늘은 제거해버리고 낭만 가득한 모습으로 되살리며 응답하라고 호출한다. 패션은 원래 돌고 돈다지만 근 10년간은 주로 1990년대에 꽂혀 있는 듯하다. 옛 가구, 게임, 장난감, 상표, 소품들이 ‘힙한’ 어떤 것으로 각광받는다. 문화 산업은 과거를 팔아 연명하고 있다. 그리고 추억이나 향수에 편승한 이 ‘과거 되새김질’ 문화 현상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분명 우리의 기억이다.

 

기억은 역사와 더불어 과거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역사가 거시적이고 총체적이며 이미 판정 내려진 고정된 명제의 모습이라면, 기억은 불안정하고 파편적이지만 사적이고 친밀해서 기억 주체와 더 결부된 느낌이다. 기억은 그러므로 구체적 삶의 서사이자 현존의 모습이다. 존재는 기억들로 입증되기에 기억이 바뀌면 그림자도 바뀐다. 또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가 곧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를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기억은 곧 세계 인식의 기제이다. 인류는 마땅히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려 전승하기에 기억이 곧 문화를 이룬다.

근래에 이토록 과거에 집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문화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동력을 잃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암울한 현재와 희망 없는 미래로부터의 도피인 것일까? 지나간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이 문화 현상을 떠받치고 있는 중심에는 분명 유튜브가 있다. 

유튜브는 디지털에 힘입은 기록 기술이 인터넷과 만나 만개한 지점에 있다. 이제 사소한 것이든 중요한 것이든 기록하고 싶은 모든 순간은 간편하게 촬영되거나 다른 미디어에서 재활용돼 유튜브에 올라가고, 그것은 의도적으로 삭제되지 않는 이상 영원한 존속을 보장받는다. 유튜브는 인류의 방대한 기억 창고가 되었다. 

기억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유튜브가 이미 레트로나 뉴트로를 위한 참고 자료실의 기능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유튜브의 미디어 경험은 자료의 출납과 열람 그 자체만으로도 메시지를 재맥락화한다. 나아가 인용이나 발췌의 층위를 넘어선 보다 능동적인 사용자들의 실천에 의해 과거는 착오와 착각, 윤색과 각색, 강조와 배제가 뒤엉킨 회상과 망각의 집단 회로를 거쳐 재현되고 기억은 재구성된다. 기억의 생성과 삭제가 간편한 기록 과잉의 유튜브에서 기억은 범람하고 망각되며 왜곡된다. 

이제 유튜브의 미디어 상상력은 심지어 여러 시대의 회상 오브제를 이리저리 뒤섞어 정체불명의 과거를 만들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향수’까지 불러일으킨다. 유튜브가 디지털 시대를 연 것은 아니지만, 유튜브의 등장으로 디지털 시대의 기억 양상은 가장 역동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기억의 유희, 기억 놀이터가 된 유튜브에서 일상의 문화적 실천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도록 하는가? 문제의식은 여기서 시작한다. 

‘유튜브 시대’는 변화한 기억 환경에 대한 전제이고, ‘어떻게’는 기억 양상에 대한 물음이다. ‘문화’는 기억이 곧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간섭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 책은 기억은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되는 능동적 과정이라는 것,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기억한다는 것(집단기억), 문화 그리고 문화적 실천과 집단기억(문화기억론), 기록보관소(아카이브)의 문제 등 기존의 논의들을 먼저 다룬다. 그리고 대중음악을 유튜브 문화기억의 구체적 양상을 살피는 중심 사례로 삼아 살펴본다. 

이 책의 이론적 토대는 모리스 알박스(1877~1945)의 집단기억론과 그로부터 전개된 얀 아스만(1938~)의 문화기억론으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변화한 기억 환경에서 유튜브의 기억 탐구를 위해서는 동시에 아스만 문화기억론의 응용과 확장이 필요했다. 다행히 ‘디지털 기억’에서 기억 패러다임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비교적 최근 연구 성과들의 도움을 받아 유튜브의 기억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필요한 전제들을 구상할 수 있었다.

 

 

 

서영호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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