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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감청자와의 비교
중국 상감청자와의 비교
  • 김영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06.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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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 영향 준 塡彩 … “부드럽고 소박한 느낌”

상감기법은 철 등의 소지에 금·은 등의 금속을 박아 넣는 기법으로 중국에서는 東周시대(기원전 771∼256년)에 이미 청동기에 금·은을 상감하는 기법이 성행했다. 秦漢시기의 錯金銀 공예와 東漢시기의 入絲 공예는 남북조를 거쳐 唐代에 이르면 더욱 발전해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도자기에 상감기법을 응용한 것으로는 고려청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물론 중국의 도자기 제작법은 고려 청자 상감기법과는 효과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유사한 제작기법이 보여 주목된다.

사진은 遼代의 묘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 ‘靑瓷三魚紋大盤’이다. 북경의 개인 소장품으로 구경이 33cm이며 유색은 누른빛이 도는 청색이다. 內底에는 菊瓣紋이, 그리고 둘레에는 水波紋이 펼쳐지고 있으며 세 마리 물고기가 삼각을 이루어 劃花塡白彩(象嵌)로 장식되어 있다. 물고기는 중국에서 예로부터 ‘餘’와 음이 같아 ‘풍성함’을 상징하며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품에 많이 등장하는 소재이다. 이 大盤은 크기로 보아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가족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거나 연회 등에 쓰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1997년 渾源窯 발굴에서 이와 비슷한 靑瓷片이 발견되었는데 시기는 遼 말기에서 金 전기(12세기 전반 경)로 알려져 있다.

그림(劃), 새김(刻), 찍음(印), 박지(剔) 등의 방법으로 오려낸 문양의 오목한 부분에 채색을 넣는 것을 중국에서는 ‘塡彩’라고 부른다. 중국 도자기에 보이는 상감기법은 주로 송·요·금 시기 河南, 河北, 山西 일대의 북방 도자기에서 많이 발견된다.
靑瓷劃花塡白彩裝飾은 북송 초기에 시작되어 중기에 성숙한 단계로 발전한 白釉劃花塡白彩裝飾에서 발전된 것으로 여겨진다. 백유획화전백채장식은 土不件에 문양을 새긴 후 전체에 화장토를 입히고 화장토를 긁어내면 문양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 위에 투명유를 입혀 소성하게 된다. 河南 일대에서 시작된 이 장식 기법은 耀州窯에 전해져 청자획화전백채장식이 생겨나고 다시 山西지역으로 전파되어 사진의 ‘靑瓷三魚紋大盤’이 탄생한 것이다. 요주요의 상감기법으로 蘆雁銜枝紋이 장식된 자기는 북송 11세기에서 12세기 전반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중국 도자기에 여러 상감기법이 있다. 珍珠地劃花裝飾은 枕, 香爐, 甁 등의 바탕에 珍珠圈을 찍은 후 갈흑색 혹은 흑색의 彩料를 塡彩한 것이다. 珍珠地劃花裝飾의 上限 시기는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전반 경까지 올라가며 당대부터 송 초까지 유행한 金銀器의 魚子紋 장식에서 유래한다. 白釉剔花塡黑彩裝飾이란 것도 있는데 화장토를 입힌 기물 위에 화문을 그리고 납작한 공구로 문양 윤곽을 제외한 부분의 백색 화장토를 긁어내면 진한 胎色이 드러나고 마지막으로 透明釉를 입혀 소성한다. 胎色과 化粧土의 대비가 부드러우면서 소박한 느낌을 준다.

중국이나 고려의 도자기에 보이는 상감기법의 탄생은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金銀器 장식의 모방에서 시작된다. 중국의 상감기법은 10세기에 이미 등장하는데, 한·중 도자기술교류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고려는 중국의 상감기법인 ‘塡彩’를 배웠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고려의 상감청자는 중국의 다양한 상감기법의 정수만을 모아 발전시킨 ‘靑出於藍’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塡彩’가 호방하고 대범하다면 고려의 ‘象嵌’은 예민하며 섬세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김영미 /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필자는 북경대에서 ‘월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안선과 도자기 길’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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