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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좀 사랑할 순 없나요” … ‘지성의 권위’ 지키려고 노력
“대학을 좀 사랑할 순 없나요” … ‘지성의 권위’ 지키려고 노력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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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명예롭게 퇴임하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


오는 7월 19일자로 4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과의 인터뷰를 준비했다. 정 총장의 퇴임은 우리 대학과 지성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띤다. 외부에서 강제되는 구조개혁을 거부하고 지성의 권위를 지키면서 착실히 공약을 실천한 총장, 서울대의 교육과 연구 수준이 한 나라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세계에 우뚝 서기 위한 조건을 철저히 가늠하고 그 기초가 되는 내부의 시스템을 섬세히 설계한 소리 없는 개혁가, 국립대 총장이지만 정부에 할 말은 하고 각을 세울 건 확실히 세웠던, 학자의 자격으로 사회를 대하고 사회에서의 역할을 고민했던 지성인. ‘정운찬 보는 맛에 산다’는 한 원로학자의 말처럼, 그를 떠나보내는 대학인들의 마음은 어딘지 모를 아쉬움에 젖어 있다. 이제 서울대의 총장직에서 물러나 평범한 교육자와 학자로 9월부터 강단에 서게 될 그의 내면엔 지난 4년이 어떻게 그려지고, 또한 정리되고 있을 지 그 갈피를 하나 둘 열어보았다.

● 대담 : 이영수 발행인, 최영진 주간
● 일시·장소 : 2006년 7월 11일, 서울대 총장실
● 기록·사진 : 강성민 기자

이영수: 18대 조완규 총장 이후로 4년 임기를 마친 첫 총장이십니다. 외부의 유혹과 권유도 있었을 텐데 참 좋은 전통을 남기셨습니다. 

정운찬: 제가 서울대 60년 역사의 23대 총장인데 하버드대는 4백년 역사에 27대 총장입니다. 한국의 총장임기가 더 길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4년을 끝내고 또 4년을 연임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미국은 대학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10년, 15년도 하겠지만 한국은 대학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힘이 듭니다. 만약 처음부터 제도적으로 8년이 보장됐다면 좀더 멀리 내다보고 설계했을텐데, 4년에 맞춰 계획한 것을 다 실천했는데 다시 또 하기는 힘들다는 거죠.

이영수: 그간 밖에서 보면 어려움 속에서도 쉽게 잘 해나가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떤 소감이신지요.

정운찬: 제가 취임할 때는 학교에 갈등이 많이 있었습니다. 대학과 대학, 교수와 교수, 교수와 학생, 대학과 직원 간의 갈등이 많았는데 지난 4년간 갈등을 거의 없애버렸다고 자부를 합니다. 그게 대내적으로 보람있는 일이고, 대외적으로는 서울대가 지식창출 기관이 되기 위해 내부 구성원을 다양화하는 것이었죠. 구성원이 다양해야 사람들이 모여서 비빔밥처럼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나누고 간접경험을 늘리고, 창조적인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되죠. 그래서 학생을 다양화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중 하나가 지역균형선발제입니다. 서울 인구가 전국의 25%밖에 안 되는데, 서울대에 서울 출신이 40%이더군요. 이게 극단으로 흘러 서울학생만, 더 극단으로 모두 다 강남학생들만 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서둘러 추진했습니다. 지방이라도 거기서 1등을 하면 어딜 가도 1등할 잠재력이 있습니다. 나중에 실력을 테스트해보니 영어가 전체의 중상위권이었고 1·2학기 성적도 좋았습니다.

정부, “대학에 포괄적 자유 줘야” …다양성 높이기 위해 안팎으로 노력

그리고 해외대학과의 교류의 길을 많이 텄습니다. 제가 55개 정도 대학을 1백10개 정도로 늘렸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미국의 예일대, 프린스턴대 등과 아주 가까워진 점입니다. 예일대에는 학생들이 서머스쿨에 지금 가 있습니다. 20명씩 7주간 교육을 시키고, 프린스턴대는 해마다 2명 내지 5명씩 학생들을 보냅니다. 예일대는 3년째 하고 있고, 프린스턴대는 이번 9월부터입니다.

최영진: MOU 체결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정운찬: 절대 쉽게 안 해요. 프린스턴대와 협정 맺기까지 편지가 10번 정도 왔다갔다 했어요. ‘우리 학생이 한국어를 꼭 배워 오게 할 거다. 서울대 정규과정을 보니 15주인데, 언어교육원에서는 10주밖에 안한다. 그러면 학점을 줄 수 있느냐.’ 그래서 ‘5주는 우리가 과외를 시켜서 하겠다’ 그랬더니, 수업계획서를 정확히 요구하더군요. 미국 대학교육이 엄격하다는 걸 배웠죠.

최영진: 눈에 보이는 성과도 많지만 외부에서는 교육부나 정부에 대해 할 말을 하는 총장으로서 평가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정운찬: 과거의 서울대 총장이나 교수들이 사회에서 부르면 금방금방 그 자리에서 가는 것도 많이 봤고, 그것 때문인지 서울대가 너무 사회에 휘둘리는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공약을 지성의 권위 확립이라 했죠. 지난 4년 서울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적극적·의도적으로 청와대와 대립한 적은 별로 없고요, 단지 매스컴 등에서 이것저것 물어볼 때 평소 믿는 것을 대답했을 뿐입니다.

이영수: 혹시 그간의 경험을 통해 정부나 교육부 등에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으신지요.

정운찬: 대학은 투자를 토양으로, 자유를 공기로 성장하는 곳입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되, 좀 한가한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에이, 대학 교수는 좀 유한계급일지도 모른다. 지원하고 결과가 나오면 좋고 안 나오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을 하면 중장기적으로 커다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정부가 궁극적으로는 대학에 손을 떼고 단기적으로는 포괄적 자유를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영수: 그게 실질적으로 가능할까요.

정운찬: 대통령이 대학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대학을 잘 모르는데, 사랑이 가능하겠습니까. 이해가 좀 생기면 사랑한다는 게 뭐 그렇게 어렵지도 않습니다.

최영진: 지난 4년이 성공적이라고 평가를 하지만, 남모르는 어려운 점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운찬: 이미 말씀드렸지만, 교수들은 전부 총장입니다.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왜 안가냐고 하는 식이고, 학생들은 너무 단기적인 것만 바라보고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직원들은 정말 좋은 대학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전문지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제가 법인화를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원입니다. 우선 직원 수가 너무 적어요. 지금 교육부 월급 받는 사람이 7백명이고 기성회 월급 받는 사람이 2백명인데, 일류대학은 교수가 1천8백명이면 직원은 3천5백명은 있어야 해요. 지금은 자체적으로 직원을 뽑아서 비율이 거의 1:1이 됐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과 실험실 셋업을 대학원생이 한두 번 하는 것은 그 학생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매시간 대학원생이 해서는 안되고 테크니션이 있어야 합니다. 문과도 교수 4~5명에 한명씩 비서를 둬야 해요. 교수가 1천8백명이면 5백명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학진에 연구비 신청할 때 보세요. 교수들이 어디 가서 합숙하고 밤새잖아요. 어떤 곳은 색깔도 넣고 리본도 달고, 이런 일들 때문에 교수들이 밤새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영수: 그렇다면 만약에 서울대가 법인화를 했을 때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정운찬: 저는 서울대의 경우는 낙관하고 있습니다. 단지 한 10년은 지금 정도(2천억원)의 국고보조를 받는 조정기간이 필요하긴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우선 수익사업을 해야죠. 특허료만도 상당히 많이 들어올 겁니다. 작년에 10억 들어왔고 계속 늘어날 전망입니다. 또 과거엔 모금을 할라 치면 ‘국립대학인데 정부가 주지 뭐’ 하며 잘 안하는데, 법인화하면 훨씬 더 얘기하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서울대 예산에 낭비적 요소가 있거든요. 낭비적 요소를 줄일 거구요, 제일 큰 수입은 연구비에서 간접비를 떼는 겁니다. 지금 1년에 많이 잡으면 4천억까지는 연구비가 들어올 거예요. 간접비를 올려나가면 굉장한 수익이 될 겁니다.

직원 때문에 '법인화' 생각했다 …“중심대학이란 말 없애야 합니다”

이영수: 서울대는 더 잘될 지 모르지만, 지금 지방에 있는 국립대는 굉장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거든요.

정운찬: 강제로 하는 것은 반대예요. 법인화한다고 특혜를 준다면, 하지 않는 대학들한테는 패널티나 마찬가지이니 특혜나 패널티 모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영진: 요즘 대학들이 많은 변화를 꾀하지만, 특히 교수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습니다. 서울대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불만 중의 하나가 천재를 모아다가 둔재를 만드는 게 아니냐는 것인데요, 그동안 애 많이 쓰셨지만 교육에 관심이 더 필요한 것 같은데요.

정운찬: 대학은 연구기관이기에 앞서서 교육기관입니다. 그래서 교수들은 당연히 교육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강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복도에서 학생이 교수를 만나면 얼마나 좋습니까. 저도 어릴 때 복도에서 변형윤 선생님 만나면 나도 변형윤처럼 돼야지. 조순 선생님 만나면 나도 조순처럼 돼야지, 여러 번 그래봤는데, 그게 다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실 e-러닝이라고 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대는 지난 10년 그 이상 연구 안하면 논문을 못내면 학교를 떠나야한다는 생각이 풍미하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제가 상 제도를 좋아하지 않은데, 오죽하면 ‘서울대학 교육대상’을 만들었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상 제도에 대해서 반대이지만, 교육에 역점을 둔다는 하나의 제스춰 차원에서 만들었습니다.

이영수: 총장님께서는 기초교육을 굉장히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연구중심대학이라고  하면 교육은 소홀히 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정운찬: 이건 확실히 해둬야 하는데 ‘중심대학’이란 말을 없애야 합니다. 연구중심대학은 Research Uuniversity이지, Research Oriented Uuniversity가 아닙니다. 그것은 1년에 박사를 50~1백명을 길러내는 학교 바로 그거예요. 그걸 갖다가 연구중심대학, 대학원중심대학 하는데 그건 옳지 않습니다. 하버드대가 1만7천 학생에 7천명이 학부생이고 1만명이 대학원생입니다. 그걸 보고 하버드는 대학원중심대학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하버드는 학부 중심대학입니다. 일류대학은 학부교육에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도 학부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영수: 이제는 서울대에서 석사, 박사를 충분히 길러낼 역량이 있다고 보는데요. 그런데도 자꾸 유학을 많이 보내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정운찬: 그게 잘 안돼요. 교수들이 가서 공부해본 적은 있지만 가르쳐본 적은 없거든요.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박사지도를 잘하고 있나 불안해했거든요. 또 하나는 정말 바빠서 대학원생 지도하기가 벅찬 것도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이라는 게 있어요. 지금은 변변치 못하지만 커질 수 있는 상품에 단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인데, 대학교수 시장에서도 유치산업보호론이 필요합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한국학자를 뽑아야 하죠. 서울대에서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요. 이번에 물리학과에서 특채한 사람도 여기 박사입니다. 그러려면 교수님들이 대학원생을 좀더 열심히 가르쳐야 하고 교수로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것들을 일일이 다 할 수 없으니까 적어도 대학에는 돈 고민 없이 오게 하자고 학생 절반에게 등록금 플러스 60~70만원씩 주기 시작했죠. 이제 곧 80~90만원이 되는데 여기 돈 많이 들어갑니다. 2백50억 정도 들어가요. 아무튼 그 후에 미달 학과는 없어졌습니다.

최영진: 대학원생들은 그 부분을 정 총장님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가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서울대 박사가 외국대학에 패컬티로 임용되는 일이 늘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운찬: 그렇죠. 궁극적으로는 서울대 박사가 세계 일류대학 교수가 되어야죠. 하지만 내수시장에서 성공해야 수출시장에서 성공한다고 초기 단계에서는 국내대학에서 박사 받은 사람을 국내 대학이 써주고, 그런 후에 수출해야 합니다. 문제는 아직까지 한국 대학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차차 좋아질 겁니다.

이영수: 아까 교수들이 많이 바쁘다고 하셨는데, 교수들이 정부 위원회나 사외이사 등 굉장히 관여하는 게 많습니다. 교수들의 사회참여를 어떻게 보십니까.

정운찬: 공부한 것을 사회에 나가 응용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권에 들어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브레진스키가 콜럼비아대를 다시 못 갔고 키신저가 하버드대를 못 갔습니다. 교수들이 반대해서 못갔죠. 지금 서울대를 베이스캠프로 해서 여의도를 갔다가 왔다가 다시 가고, 청와대 갔다가 왔다가 하는데 그러면 안돼요.

유치산업 보호론처럼 국내박사 보호해야… 학부대학 못한 것 “아쉽다”


이영수: 꼭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정운찬: ‘학부대학’입니다. 한 3천명 뽑아서 아무 데나 가서 공부해라. 그리고 아무 때나 과를 정해라. 졸업할 때도 좋고. 그러면 사람 참 커지거든요. 그런데 그게 안돼요. 교수들은 자기 과에 학생 몇 명을 확보해야 그 과가 유지되고 세력이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튼 그게 안타까워요. 그 전 단계로 자유전공제도 하고 싶었는데 못했고 겨우 기초교육원을 만들어서 기초교육을 강화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최영진: 아까 처음에 준비없이 총장을 맡게 되어서 당황했다는 말씀하셨는데, 서울대 총장에게 필요한 특정한 자질과 능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운찬: 학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총장을 해야 합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이 해야죠. 물론 현재 대학은 총장이 완전히 상아탑의 파수꾼으로 남아있기 어려운지라 훌륭한 인적·물적 자원을 외부에서 좀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죠. 

이영수: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시는지요.

정운찬: 저는 지성의 권위를 지킨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전문지식이 있어서 경제상황에 대해서 시의적절한 평도 할 줄 알았고 총장으로서는 바깥에 할 말은 하면서 지성의 권위를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정도면 좋겠습니다.

최영진: 임기 끝난 후 다른 데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총장 일을 더 잘하셨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사회봉사의 측면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요.

정운찬: 1998년에 어떤 학생이 묻더군요. 대학 그만두신 다음에 65세 쯤 되어서 뭘 하고 싶으십니까 하고 말이죠. 꼭 대답하라고 해서 난 전공이 화폐금융론이니까 금융통화위원 한번 하고 싶다고 했죠.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이 한국은행 총재예요. 그런 것 정도는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이영수: 이거 꿈이 너무 소박하신 거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오늘 너무 많은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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